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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룩 Jun 24. 2020

한 개인을 존중하기

뒤늦게 레이디 가가를 존중하게 된 어느 부족한 팬의 기록

시험 기간이 되면 수험생 시절 버릇이 튀어나온다. 오늘도 헤드셋을 끼고 음악을 틀었다. 오늘은 레이디 가가였다. 처음 나올 때부터 좋아했고 지금은 그때보다도  좋아하는 가가.

최근에 시아의 노래도 자주 틀었지만, 명절 귀갓길 우리 가족의 선곡은 단연 가가의 <The Fame Monster>(2009). ‘Bad Romance’부터 가리는  없이  따라간다. 그럴 만큼 레이디 가가는 우리 가족의 유서 깊은(!) 취향이다.

나는 평소에도 가가의 음악을 즐겨 들었지만, 돌이켜볼수록  취향은 아주 좁고 확고했다. 그가 정규앨범을 오랫동안  내기도 했지만, 나는 <Born This Way>(2011) 이후로 나온 앨범은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다.

사실 가가의 컴백 소식에 바로 유튜브로 달려갔었지만, 나는 뮤직비디오를 도중에 껐다. 내가 원한  도전적이고 저항적인, 어쩌면 퀴어 아이콘과 같은 ‘Mother Monster’ 레이디 가가였다. 그러나 마치  놀리는 듯한 제목의 “Perfect Illusion” 나의 기대를 완전히 벗어났다.

같은 이유에서 영화 <스타 이즈 >(2018) 좋아하지 않았다. 별로 맘에  드는,  막무가내에 폭력적인 남자 주인공 때문에 힘들어하고 영원한 사랑을 노래하는 주인공으로 분한 레이디 가가의 모습이 나에게는 너무나 생경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넷플릭스에서 레이디 가가의 다큐멘터리 <레이디 가가: 155cm 도발>(2017) 보게 되었다. 여기에는 “Perfect Illusion”으로 컴백하는 과정과 고민, 그리고 영화 출연 준비 이야기가 나온다. 다큐멘터리는 섬유근육통 증상을 겪어내고 이별에 아파하는 레이디 가가의 인간적인 고민과 고통을 깊이 다루었다.

그걸  후에도 나는 여전히, ‘레이디 가가 원했다. 기상천외한 복장과 퍼포먼스, 거침없는 가사로 세상을 흔들었던 그를 원했다. 나의 편협함이 얼마나 강했는지, 당시 나는 그의 컴백 앨범 제목이 그의 본명인 <Joanne>(2016)이라는  읽지도 못했다. 기사를 찾고, 뮤직비디오를 보고, 음악을 듣고, 다큐에 영화까지 보면서도 나는 그저 ‘아이콘레이디 가가만을 원했다.

그러다가 이번 시험기간에,  생각 없이 그때 듣다가  “Perfect Illusion” 다시 틀었다. ‘레이디 가가 대한 나의 집착을 놓자,  노래의 멜로디가 감미로웠다. 그리고 가사는 나에게 절규하고 있었다. “Mistaken for love, it wasn’t love, it was a perfect illusion.”

편견, 규범보다 사람을 먼저 보아야 한다고 매일같이 주장하던 나는 정작 내가 좋아한다는 아티스트에게  인상만을 강요하고 있었다. 가가는 대체 불가능한 최고라고, 가가를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그가  이러한 음악을 들고 컴백했는지 고민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의 다큐와 영화를  보고서도.

갑자기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 이래서 앨범 제목을 Joanne이라고 지었구나,  같은 사람들 때문에. 그가 다큐에서 털어놓은 고민들이 떠올랐다. 저항, 전복, 기괴함과 같은 성과들이 그를 어떻게 옭아매었는지.

내가 정말 가가를 사랑했다면 나는 그가  <스타 이즈 > 출연하여 그런 역할을 맡았고, <Joanne>으로 컴백했었는지 고민해야 했다. 나의 존경하는 아이콘 ‘레이디 가가 모습 그대로가 아니더라도, 그는 여전히 내가 사랑한  아티스트였으니까.

한참이 지난 어느 시험기간에 문득 레이디 가가를 향한 나의 태도를 돌아본다. 이제야 나를 가가의 팬이라고 부를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비단 가가뿐 아니라, 한국 안의 유명인들에게도 나는 비슷한 태도를 취해 왔던  같다. 겉으로 드러내지 않더라도 안에는 항상 ‘아이콘 대한 욕구가 있었다. 어쩌면 주변인들에게도. 그러나 사랑이나 동경이라 착각한  요구가 얼마나 납작한 폭력일  있는지.

규범보다 사람을 먼저 보자는 말을 말로만 하지 말아야겠다. 규범을 깨자면서 누군가에게 저항만을 요구하지 말고, 그의 가치를 저항으로 환원하지 말아야겠다. 이제야 나는 레이디 가가를  명의 사람으로   있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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