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레이디 가가를 존중하게 된 어느 부족한 팬의 기록
시험 기간이 되면 수험생 시절 버릇이 튀어나온다. 오늘도 헤드셋을 끼고 음악을 틀었다. 오늘은 레이디 가가였다. 처음 나올 때부터 좋아했고 지금은 그때보다도 더 좋아하는 가가.
최근에 시아의 노래도 자주 틀었지만, 명절 귀갓길 우리 가족의 선곡은 단연 가가의 <The Fame Monster>(2009)다. ‘Bad Romance’부터 가리는 곡 없이 쭉 따라간다. 그럴 만큼 레이디 가가는 우리 가족의 유서 깊은(!) 취향이다.
나는 평소에도 가가의 음악을 즐겨 들었지만, 돌이켜볼수록 내 취향은 아주 좁고 확고했다. 그가 정규앨범을 오랫동안 안 내기도 했지만, 나는 <Born This Way>(2011) 이후로 나온 앨범은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다.
사실 가가의 컴백 소식에 바로 유튜브로 달려갔었지만, 나는 뮤직비디오를 도중에 껐다. 내가 원한 건 도전적이고 저항적인, 어쩌면 퀴어 아이콘과 같은 ‘Mother Monster’ 레이디 가가였다. 그러나 마치 날 놀리는 듯한 제목의 “Perfect Illusion”은 나의 기대를 완전히 벗어났다.
같은 이유에서 영화 <스타 이즈 본>(2018)도 좋아하지 않았다. 별로 맘에 안 드는, 꽤 막무가내에 폭력적인 남자 주인공 때문에 힘들어하고 영원한 사랑을 노래하는 주인공으로 분한 레이디 가가의 모습이 나에게는 너무나 생경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넷플릭스에서 레이디 가가의 다큐멘터리 <레이디 가가: 155cm의 도발>(2017)을 보게 되었다. 여기에는 “Perfect Illusion”으로 컴백하는 과정과 고민, 그리고 영화 출연 준비 이야기가 나온다. 다큐멘터리는 섬유근육통 증상을 겪어내고 이별에 아파하는 레이디 가가의 인간적인 고민과 고통을 깊이 다루었다.
그걸 본 후에도 나는 여전히, ‘레이디 가가’를 원했다. 기상천외한 복장과 퍼포먼스, 거침없는 가사로 세상을 흔들었던 그를 원했다. 나의 편협함이 얼마나 강했는지, 당시 나는 그의 컴백 앨범 제목이 그의 본명인 <Joanne>(2016)이라는 건 읽지도 못했다. 기사를 찾고, 뮤직비디오를 보고, 음악을 듣고, 다큐에 영화까지 보면서도 나는 그저 ‘아이콘’ 레이디 가가만을 원했다.
그러다가 이번 시험기간에, 별 생각 없이 그때 듣다가 끈 “Perfect Illusion”을 다시 틀었다. ‘레이디 가가’에 대한 나의 집착을 놓자, 그 노래의 멜로디가 감미로웠다. 그리고 가사는 나에게 절규하고 있었다. “Mistaken for love, it wasn’t love, it was a perfect illusion.”
편견, 규범보다 사람을 먼저 보아야 한다고 매일같이 주장하던 나는 정작 내가 좋아한다는 아티스트에게 첫 인상만을 강요하고 있었다. 가가는 대체 불가능한 최고라고, 가가를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그가 왜 이러한 음악을 들고 컴백했는지 고민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의 다큐와 영화를 다 보고서도.
갑자기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아, 이래서 앨범 제목을 Joanne이라고 지었구나, 나 같은 사람들 때문에. 그가 다큐에서 털어놓은 고민들이 떠올랐다. 저항, 전복, 기괴함과 같은 성과들이 그를 어떻게 옭아매었는지.
내가 정말 가가를 사랑했다면 나는 그가 왜 <스타 이즈 본>에 출연하여 그런 역할을 맡았고, <Joanne>으로 컴백했었는지 고민해야 했다. 나의 존경하는 아이콘 ‘레이디 가가’의 모습 그대로가 아니더라도, 그는 여전히 내가 사랑한 그 아티스트였으니까.
한참이 지난 어느 시험기간에 문득 레이디 가가를 향한 나의 태도를 돌아본다. 이제야 나를 가가의 팬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비단 가가뿐 아니라, 한국 안의 유명인들에게도 나는 비슷한 태도를 취해 왔던 것 같다. 겉으로 드러내지 않더라도 안에는 항상 ‘아이콘’에 대한 욕구가 있었다. 어쩌면 주변인들에게도. 그러나 사랑이나 동경이라 착각한 그 요구가 얼마나 납작한 폭력일 수 있는지.
규범보다 사람을 먼저 보자는 말을 말로만 하지 말아야겠다. 규범을 깨자면서 누군가에게 저항만을 요구하지 말고, 그의 가치를 저항으로 환원하지 말아야겠다. 이제야 나는 레이디 가가를 한 명의 사람으로 볼 수 있게 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