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 도로 공사로 휴업을 앞둔 단골 분재원에서 반값에 데려온 왜철쭉이 봄을 맞아 꽃을 피웠다. 예전에 길렀던 왜철쭉은 하얀 꽃과 분홍색 꽃이 모두 났는데, 이번에는 모두 새하얀 꽃이었다. 작은 나무에 꽃이 가득 펴서, 위에서 보면 이파리가 거의 안 보일 지경이다. 하얀 꽃을 보다가, 문득 사라진 벚나무들이 떠올랐다.
몇 년 전, 집 근처에는 큰 상가가 생겼다. 주차장이 세 층에 총 6층짜리 건물로, 지금도 동네에서 가장 큰 상가다. 주차장이 세 층이나 있으니 딱히 주차 문제도 없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난데없이 2, 3층 주차장 입구가 막혔다. 아마 건물주와 주차장 관리 업체, 경비 업체, 그리고 입주 상가들 사이에서 어떤 문제가 생겼을 것이다.
이런 문제의 영향은 건물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 건물에 차를 대는 사람들에게만 미친 것이 아니다. 비슷한 시기에 건물 측면의 담장이 허물어졌고, 그곳에 오랫동안 뿌리 내리고 있던 벚나무들이 잘려 나갔다. 처음엔 가지들이 잘렸고, 며칠 뒤에는 줄기가 잘려 밑동만 남았고, 그 다음에는 땅이 파헤쳐졌다. 한동안 그곳의 땅은 울퉁불퉁하게 파여 있었다.
상가 옆 벚나무의 땅을 완전히 갈아엎고, 평평하게 다듬어 작은 주차장으로 만들기까지 걸린 시간은 기껏해야 한 달 내외였다. 상가 방문자의 차량뿐 아니라, 상가 근처의 교회와 어린이집 방문 차량도 그곳을 이용하는 듯하다. 이 동네에 주차 공간이 충분하지 않은 것은 10년 넘게 살며 잘 알고 있지만, 내게는 계속 벚나무와의 추억이 떠올랐다.
집에서 나오면 가파르고 긴 계단이 있다. 계단을 내려가 버스를 타러 가다 보면 그 상가를 거쳐 갈 수밖에 없다. 그때마다 나는 벚나무를 봤다. 몇 그루였을까, 세어 본 적은 없었다. 벚나무들은 개별적인 나무가 아니라, 언제나 하나의 풍경으로 나에게 다가왔으니까. 적어도 봄에는 모두가 사랑하는 것만 같은 벚꽃의 풍경. 어쩌면 마침 겨울이라서 나무들이 바로 베어진 것일지도 모르겠다.
봄마다 상가 주변은 벚꽃으로 화사했다. 아주 옅게 분홍색이 스며들어 있는 작고 둥근 흰색 꽃잎들이 날렸다. 때로 그것이 앞에 가는 사람의 옷이나 머리에 올라간 것을 보면, 내 머리에도 꽃잎이 몇 번쯤 떨어져 있었을 테다. 그래서인지 나는 봄에도 벚꽃 구경을 따로 가 본 적이 없다. 학교나 마트를 오가는 길목에 벚꽃이 만개했으니까. 이런 풍경은 우리 동네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 중 하나였다.
이제 그곳에는 승용차 두어 대가 상가 옆에 세워져 있을 뿐이다. 그곳을 기껏해야 서너 대 정도면 꽉 차는 임시주차장으로 만들어도 당연히 주차난은 해결되지 않았다. 오히려 상가 앞에는 더 많은 차가 세워졌다. 마치 이 근처에는 주차해도 된다는 암묵적인 합의라도 생긴 것처럼. 괘씸했다. 안 그래도 좁은 거리를 더 다니기 불편하게 만들어서도 괘씸했지만, 고작 차 서너 대 대자고 그 많던 나무들을 자르고 뽑았다는 게 가장 괘씸했다.
인간은 제멋대로 나무를 심었다가 뽑고 그 흔적조차 없애버린다. 하지만 추억만큼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이런 추억이 도시를 바꿀 희망이 되기를 바란다. 도시가 소비자와 자동차만의 도시가 아니라, 동네나무와 그 옆을 거니는 이들의 도시일 수 있도록. 나는 이제 버스에서 나무들을 센다. 나무는 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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