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개수업의 날, 난 9살 딸아이의 교실에 들어섰다. 직업이 직업( 내 직업은 초등학교 교사이다.)인지라 학교라는 공간은 내게 그리 낯설지 않았다. 학교 구조는 시대를 막론하고 크게 다르지 않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딸의 공개 수업이라는 특별한 목적이 나를 그곳으로 이끌었다. 목적이 달라서 인가? 학교의 모든 공간이 딸아이의 시선에 맞추어져 보이는 기이한 경험이었다. 높은 계단, 높은 세면대, 모든 것이 갑자기 딸아이의 눈으로 새롭게 다가왔다.
그렇게 수업이 시작되고, 나는 조용히 뒷자리에 서서 딸아이를 지켜보았다. 집에서 날마다 활기차게 날 괴롭히던 해적은 사라지고, 조선집 규수처럼 차분한 아이가 그곳에 있었다. 물론 가끔 하품을 하긴 했지만, 그것마저도 조용했다. 시간이 흘러 모든 아이들이 반드시 해야 하는 발표 시간이 돌아왔고, 나 역시 긴장감을 느꼈다. 그런데 딸아이는 예상보다 무심하게, 그러나 자신 있게 발표를 마쳤다. 그리고 다시 조용히 자기 자리로 돌아가는 모습은 당당하기 그지 없었다.
딸아이의 새로운 모습을 보며 나는 묘한 감정에 빠졌다. 어리다고만 생각했던 딸이 장소와 상황에 맞게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는 모습을 보며, 사회가 유지되는 것이 바로 이런 작은 역할들의 모임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문득 이 딱딱한 세상에서 내가 딸아이의 숨 쉴 공간이 되어주고 싶다는 마음이 솟아났다.
이 마음은 나의 학생들에게도 확장되었다. 우리 반 아이들 역시 때때로 가면을 벗고 신나게 놀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오늘은 체육시간을 특별히 길게 잡기로 했다. 아이들이 지쳐 쓰러질 때까지, 마음껏 뛰놀 수 있도록. 사회라는 무대에서 각자의 역할을 다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끔은 그 역할에서 벗어나 진짜 자신을 찾아가는 시간도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그리고 그 깨달음을 실천하는 첫 걸음이 바로 오늘의 체육시간이었다.
그래서 난 오늘 체육을 두 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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