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신비를 알린 과학자들
대학 신입생 때 생물학 교재 표지에 호랑이 사진이 있어서 호랑이 생물학이라고 불렀던 기억이 납니다. 훌륭하신 교수님께서 가르쳐 주셨지만 공부를 열심히 안해서 성적도 안좋고 쌓인 지식도 얼마 없지만, 한가지 기억에 나는 구절... '동물의 세포는 수명이란게 있지만 나무(여러해살이 풀) 세포는 분열조직(meristem 또는 cambium)을 통해서 계속 새로운 세포를 생성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서 소위 무한생장(indeterminate growth)을 할 수 있다는 설명과 함께 나무 사진이 있었습니다. 5000년 가까이 살고 있다는 설명과 함께요.
시간이 흘러 저는 대학을 졸업했고,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아이가 태어나 학교갈 나이가 되었는데 유난히 학교가기를 힘들어했던 아이들에게 이십 여 년 전 생물학 교과서에서 봤던 그 나무를 보여주고 이야기해주고 싶었습니다. 나무가 가르쳐 줄 수 있는 교훈이 있을거라고 생각했지요. 아이들에게 이야기해 준 내용을 편지로 옮겼습니다. 지금은 이해 못한 것도, 조금 더 커서 다시 읽으면 아빠의 마음을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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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내 아기들에게,
낯선 나라에 와서 새 학교와 새 친구, 새 선생님 적응하느라 힘들지? 얼마나 힘들었으면 학교 가기 싫다고, 심지어 머리가 아파서 못가겠다고 우는 모습에 아빠가 마음이 편치는 않구나.
세상 사는 게 쉬운 일 하나 없지만, 어렵기 때문에 살고 난 다음에 더 가치 있는 것이 인생인 것도 같단다. 아빠가 지난 토요일에 왕복 10시간이 넘는 자동차 여행을 하자고 한 이유는 어렵고 힘든 상황을 이겨낸 위대한 나무와 그 나무에 얽힌 사람들의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서 였단다. 새벽 5시에 출발한다고 전 날 저녁에 이야기했더니 다음날 새벽 어김없이 5시에 일어난 우리 아기들에게 아빠는 감동했었어. 그래서 이 이야기를 해주어야 겠다고 결심하게 되었다.
우리가 집에서 쉬지않고 5시간 운전을 해서 도착한 곳은 네바다와 캘리포니아 사이의 인요 국유림에 있는 슐만 기념 숲이란다. 긴 시간 차를 타고 가서 무엇을 보려했는지 이야기하기 전에 슐만 할아버지에 대해서 이야기해야겠구나.
슐만 할아버지는 1908년에 뉴욕이라는 곳에서 태어났단다. 우리 집에서 동쪽으로 4,100킬로미터를 가야 있는 먼 곳이 고향인 할아버지야. 몇 년 전 돌아가신 왕할아버지가 1912년에 태어나셨으니 슐만 할아버지가 살아계셨다면 왕할아버지보다 4살이 더 많은 셈이겠구나. 뉴욕에서 학교를 마친 슐만은 서쪽으로 멀리 아리조나의 더글라스 박사님 밑에서 공부를 하게 된단다. 당시 슐만이 했던 공부는 나무의 나이테를 이용해서 아주 오래된 옛날의 날씨를 알아내는 것이었어. 나무는 여름과 겨울에 자라는 속도가 달라서 나이테가 만들어진다는 건 알고 있지? 그런데 그 해 비가 얼마나 내렸는지, 여름에 얼마나 덥고, 겨울에 얼마나 추웠는지에 따라서 나이테의 두께와 간격이 달라지는 사실을 이용해서 옛날의 날씨를 알아내고 나아가 미래의 날씨를 예측하려 한 것이란다. 더글라스 박사님이 있던 아리조나 대학교에는 나무의 나이테를 연구하는 '나이테 연구소'가 있었거든.
슐만 할아버지는 당시 가장 크고 곧게 자라는 세퀘이아 나무의 나이테를 연구하기 시작했어. 세퀘이아 나무는 지금 우리가 볼 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큰 나무인데, 나무는 계속 자라니까 가장 큰 나무가 가장 나이 많은 나무일거라고 생각했던거지. 슐만 할아버지는 비도 안와서 건조하고, 매우 춥고, 더워서 나무가 살기 어려운 곳에는 나이 많은 나무가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나무가 살기 좋은 평야의 나무들을 조사했단다.
캘리포니아와 네바다 주 사이에 있는 숲의 산림감시원이었던 앨빈 노렌은 숲에서 신기한 나무를 발견해. 키는 크지 않은데, 구불구불하고, 가지가 신기하게 나온 소나무가 그것이지. 너무나 아름다운 그 모습에 노렌은 그 나무를 '대주교'라고 이름지었어. 그리고는 그 나무의 표본을 캘리포니아 대학에 보내지.
이 소식을 들은 슐만 할아버지는 가슴이 뛰었어. 어쩌면 그동안 생각해왔던 것보다 더 오래된 나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거야. 당시 사람들은 나무가 아무리 오래 살아도 예수님이 태어났던 해보다 오래되지는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어. 슐만 할아버지는 그 나무가 1500살에서 2000살이 아닐까 생각했고 빨리 그 나무를 확인하고 싶었어. 1953년, '대주교'나무가 있는 숲으로 간 슐만 할아버지는 그 후 우리가 '강털소나무(bristlecone pine tree)'라고 부르게 되는 나무를 조사하기 시작하지. 거기서 슐만 할아버지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해. 그 전까지 사람들이 나무의 최대 수명이라고 생각했던 2000살보다 더 오래된 4000살이 넘는 나무들 수십 그루를 발견한거야. 왜 놀랍냐 하면, 강털소나무가 자라는 숲은 해발고도 3000미터의 영양분도 없는 땅에, 비도 거의 안와서 여름엔 덥고 건조한데, 겨울엔 매우 추운 곳이라 나무가 자라기에 좋은 곳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거든.
더 놀라운 사실은 같은 땅에 사는 같은 종류 나무 중에서도 더 혹독한 환경속에서 사는 나무가 가장 오래 산다는 거야. 바로 이 혹독한 환경이 강털소나무의 장수와 관련이 있었단다. 환경이 너무 건조하기 때문에 나무를 병들게 하는 바이러스나 박테리아조차도 살아남기가 어렵고, 이런 환경에서 천천히 자란 나무는 매우 치밀하게 자라서 해충이 뚫고 들어갈 수 없어서 병이 생기지 않았단다. 100년에 25밀리미터 자란다고 하니, 1년에도 그정도 자라는 우리 아기들 눈에는 거의 안자라는 것처럼 보이겠지? 척박한 환경에서 자라는 나무는 강털소나무 밖에 없어서 강털소나무 숲에는 다른 나무가 없고, 강털소나무들 사이는 충분히 떨어져 있어서 번개로 인해 나무에 불이 붙더라도 산불이 날 정도로 크게 번지지 않았다고 하는구나. 그래서 그런지 토요일에 우리가 봤던 강털소나무들은 불에 그을린 자국들이 있었지만 여전히 잎을 피우면서 살고 있었던 게 기억나는구나.
우리가 걸어갔던 산속 오솔길에 강털소나무 중 가장 오래 산 '므두셀라'라는 나무가 있었다고 한다. 4600살 정도 되었다고 하니까 역사책 속의 아주 오래된 사건들과 함께 했던 나무인 셈이지. '므두셀라'와 4000살 넘은 다른 20여 그루의 나무들을 발견한 사실은 1958년 3월에 '내셔널지오그래픽'이라는 잡지에 실리게 된단다.
이걸로 끝이었다면... 사람들이 많이 찾아가서 숲을 파헤치고, 나무를 뽑아오고 했다면 지난 토요일에 우리가 세상에서 제일 나이 먹은 나무를 볼 수는 없었겠지. 처음 강털소나무를 알린 산림감시원 노렌은 발견하자마자 이 숲을 보호구역으로 지정해야 한다고 끈질기게 주장했고, 1953년 11월 지정되게 된단다.
강털소나무가 오래 산다고 하지만 영원히 사는 것은 아니란다. '므두셀라' 보다 더 나이가 오래된 '프로메테우스'라는 나무가 있었지만 1964년 뿌리채 뽑혀 죽었다. 흙이 씻겨 내려가서 뿌리가 드러나고, 강한 바람이 불면 그렇게 오래 풍파를 견디며 살았던 나무도 쓰러져 죽게 되는 거지. 그래서 우리 아기들이 귀중한 자연을 지키기 위해서 정해진 숲길 바깥으로는 들어가지 않고, 숲에서 쓰레기 이외 다른 것은 아무것도 가져오지 않겠다는 쥬니어 레인져 선서를 하고 숲 속 오솔길로 들어갔다는 사실을 나중에도 기억하면 좋겠구나.
슐만 할아버지는 1958년 '내셔널지오그래픽'에 자신의 기사가 실리기 두 달 전, 49살에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단다. 그가 발견했던 나무들의 100분의 1도 못살고 간거지. 하지만 슐만 할아버지는 그것보다 더 큰 것-'역경을 견뎌내야 더 큰 것을 이룬다'는 사실, 나이가 들면서 깨달아야 할 '지혜' 외에도 지구의 기후와 역사를 알 수 있는 방법 등-을 우리에게 주고 가셨단다.
아빠는 우리 아기들이 지금 잠깐 힘든 것을 이겨내는 끈기와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면 좋겠다. 그리고 지난 토요일에 함께 걸었던 강털소나무 오솔길을 떠올리면서 이 소나무를 알리고 지키기 위해 노력했던 슐만 할아버지와 산림감시원 노렌을 기억하고 고대의 역사를 느낀다면 10시간 동안 자동차를 타며 지루했던 시간이 값지게 느껴지지 않을까?
참고문헌
Biographical Portrait. Edmund P. Schulman (1908-1958) By Thomas J. Straka. 출처: https://foresthistory.org/wp-content/uploads/2016/12/2008-Spring_Bio-Schulman.pdf.
강털소나무(Bristlecone Pine Tr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