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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할 이유: 브람스 교향곡 전집

틸레만,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브람스 교향곡 전집>

by 안일구
Brahms: Symphonies / Overtures | Deutsche Grammophon, 2014

클래식 음악은 반복의 예술이다. 음악 안에서 반복은 단순히 똑같은 선율이나 리듬을 되풀이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반복을 통해 음악의 발전, 감정의 깊이, 구조적 통일성을 이끌어낼 수 있으며, 이는 음악을 더 풍성하고 의미 있게 만든 다. 그리고 훌륭한 연주자는 지독한 반복 연습으로 하루를 꼬박 보내고, 애호가들은 음악을 반복해서 듣는다. 특히 클래식 음악은 매번 다시 들을 때마다 다른 각도로 볼 수 있는 시야를 갖게 한다. 나에게 평생 반복해서 들어야 할 음악, 그리고 집 한켠에 꼭 소장할 음악을 꼽으라면, 첫 번째는 브람스가 남긴 4개의 교향곡이 될 것이다.


10대 때부터 클래식 음악을 전공하면서도 '클래식 애호가'라고 말할 수 있을 때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전공을 시작하자마자 해내야 할 어려운 과제들에 이리저리 치이며, 음악을 순수하게 즐길 수 없는 상황에 놓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무 살 무렵 브람스의 교향곡을 접한 이후, 그 경험은 내 음악생활에 큰 변화를 만들었다. 나는 그제서야 따로 시간을 내어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 당시에 1번 교향곡을 집중해서 감상했는데, 들어도 들어도 질리지가 않았다. 세묜 비치코프와 쾰른 서독일 방송교향악단(WDR Sinfonieorchester)의 버전으로 처음 접한 후 내가 구할 수 있는 모든 버전을 들어나갔다. 1번 다음은 4번, 3번, 2번 교향곡 순으로 점점 브람스의 관현악 음악 세계에 빠져들었다. 하이든, 모차르트를 제외하더라도 베토벤, 브루크너, 말러, 쇼스타코비치 등의 대표적인 교향곡 작곡가들은 9개 이상의 교향곡을 남겼다. 그에 비해 브람스의 교향곡의 개수는 적은 편이지만, 그 안에서 느낄 수 있는 시간의 무게와 감정의 깊이는 무한하다.


브람스의 교향곡은 우선 인간의 감정이 얼마나 복잡한지 음악으로 말해준다. 그 복잡함은 누구에게나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듯 음악은 흐른다. 각 곡들은 듣는 이로 하여금 음악 안에서 자기 자신과 마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데, 이는 이 곡들이 브람스가 겪은 인생의 여러 순간을 대변하는 감정적인 여정이기 때문이다. 브람스의 교향곡은 어떤 시대의 누구라도 위로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음악적으로 볼 때도 과거부터 이어져온 형식미와 고전적인 아름다움을 놓지 않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충분히 현대적이고 혁신적이다. 그 밖에도 그의 내성적인 성격, 음악적 비전, 완벽주의 성향 등이 4개의 교향곡, 총 16개의 악장에 녹아있다.



브람스의 교향곡과 가까이 지내온 20여 년의 시간 동안 가장 인상 깊었던 경험은 단연 크리스티안 틸레만이 이끄는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의 음반이었다. 누군가는 이 음반에 대해 '독일 정통 해석'이라는 말로 퉁쳐버리기도 하지만, 틸레만의 해석은 전에 없던 가장 혁신적이고 독창적인 해석이다. 2014년에 이 음반을 접한 후, 2022년에는 틸레만이 현재 음악감독으로 재직 중인 베를린 슈타츠카펠레의 내한공연에서 브람스 교향곡 전곡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음반에서 궁금했던 많은 부분들이 이 공연을 통해 해소되었고, 많은 관객들에게 충격적인 경험을 선사했다. 실제 연주에서 이러한 해석을 소리로 구현한다는 점이 대단하고 놀라웠다. 다만 개별적인 연주력 측면에서는 음반에 담긴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의 소리가 더 황홀하게 다가왔다.


틸레만은 예술적 측면에서 현재 세계 최고의 지휘자이다. 그가 만들어내는 브람스 교향곡은 마치 거대한 오페라와 같으며, 각 악장은 극적인 장면들을 다루는 듯하다. 다이내믹과 음색의 폭을 극대화하고, 루바토(자유로운 템포 변화)를 적극적으로 사용하여 음악의 구조를 만든다. '왜 이 부분을 이렇게 하지?'라는 의구심은 언제나 곡의 후반부에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음악을 듣다 보면 마치 활시위를 힘껏 당기며 과녁을 조준하는 듯한 느낌, 높은 도약을 위해 웅크린 자세, 그리고 외줄타기의 고수가 부채를 펼쳐 균형을 잡는 듯한 감각을 느낄 수 있다. 이런 감각들은 결국 음악이 클라이맥스에 다다를 때, 그 효과와 전달력을 극대화시킨다.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오케스트라의 연주는 그 자체로 놀라움의 연속이다. 틸레만의 브람스 해석은 연주하기 매우 까다롭고 어려울 수밖에 없다. 소리를 아주 작게 내는 능력, 템포를 갑작스럽게 이동시키는 능력, 그리고 매번 다른 음색을 만들어내는 능력을 모두 겸비해야 한다. 이 악단은 그들의 음향 전통을 그대로 간직한 채 틸레만의 독창적인 해석을 완벽하게 구현한다.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와 틸레만의 조합은 그동안 최고의 결과물과 가슴 벅찬 공연을 많이 만들어냈다. 이 조합이 2024년 7월 끝을 맞이한 것은 개인적으로 아쉬운 마음이 든다.


Essential Track | 13번 트랙 (Symphony No. 3 in F, Op. 90: 3. Poco allegretto)

따로 떼어서 듣기 좋아하는 악장들이 유독 많다(교향곡 1번의 4악장, 2번의 2악장, 3번의 3악장, 4번의 1악장과 4악장) 딱 한 악장만 들어야 한다면 역시 교향곡 3번의 3악장을 추천하고 싶다. 첼로로 시작해서 목관으로 이어지고, 또 전체로 퍼져나가는 선율은 브람스 교향곡의 정수를 느끼게 해준다. 유난히 선율의 반복이 많은 곡인데 워낙 변화가 많아서 조금의 지루함도 없다. 루바토와 갑작스러운 악상 변화를 자주 사용하는 틸레만 해석의 특징도 모두 느껴볼 수 있다. 게다가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각 파트와 솔로악기의 음색은 그야말로 천상의 소리를 들려준다.

https://youtu.be/E0L4HYPykik?si=X0OiCShfyObXO9hN


글 안일구, 사진 김신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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