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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시 노먼의 슈트라우스

제시 노먼 <4개의 마지막 노래, 6개의 관현악 가곡>

by 안일구
R. Strauss : Four Last Songs, 6 Orchestral Songs | Norman, Masur, Gewandhausorchester | Decca, 1983
"소리의 대저택을 거니는 듯하다. 그는 새로운 차원의 기이한 공간을 노래로 창출해 낸다"

-1992년 뉴욕타임스가 제시 노먼의 무대에 대해.


정말 그렇다. '소리'하면 나는 이 분의 목소리를 떠올린다. 따뜻하고 깊고 넓은데 황금빛으로 빛나기까지 한다. 이토록 황홀한 소리를 가진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한 사람의 목소리가 가진 가능성은 슈트라우스의 음악과 합쳐지며 무한대가 된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사랑에 빠지게 될 녹음이다. 제시 노먼(Jessye Norman, 1945–2019)은 풍부한 성량과 폭넓은 표현력으로 사랑받은 미국의 소프라노이다. 내가 그녀의 목소리를 처음 접한 음반이 바로 이 음반이었다. 이후 수많은 음반을 들었지만, 결국 다시 그녀가 부른 슈트라우스의 <4개의 마지막 노래>를 듣기 위해 이 음반을 찾는다. 노먼은 특히 오페라와 가곡, 그리고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작품에서 탁월한 해석을 선보였다. 거대한 오케스트라에 전혀 밀리지 않는 음량과 소리의 스펙트럼은 언제 들어도 가슴 깊이 울림을 준다.


'알프스 교향곡', 오페라 '장미의 기사', '살로메', 교향시 '영웅의 생애',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등. 독일의 작곡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누구와도 비견될 수 없는 예술 작품을 쏟아낸 인물이다. 그는 창의적인 관현악법과 감정의 극한을 탐구하며 인간의 내면과 철학적 주제를 음악으로 표현했다. ‘4개의 마지막 노래’는 그중에서도 특별하다. 자연, 삶의 황혼, 죽음을 주제로 한 이 작품은 슈트라우스 음악 세계의 정수로, 낭만적인 아름다움과 인생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다. 자신의 삶의 여정을 이렇게 아름다운 음악으로 마무리할 수 있다니. 위대한 작곡가는 마지막 순간마저도 특별하다.


노먼의 목소리는 이 곡들과 완벽히 어울린다. 테시투라(Tessitura)는 음악에서 가수나 악기의 주된 음역을 나타내는 용어로, 가장 빈번하게 사용되는 음역을 뜻한다. 이 곡의 테시투라는 제시 노먼의 음역과 완벽히 조화를 이루며, 그녀의 강점을 한층 돋보이게 한다. 지나치게 높지 않으며, 거의 모든 프레이즈가 그녀의 따뜻하고 화려한 중음역에 자연스럽게 담겨 있다. 노먼은 극도로 정제되고 섬세한 목소리로 단어 하나하나를 이미지로 형상화한다. 특히 네 번째 곡 '저녁노을(Abendrot)'에서 제시 노먼의 목소리가 오케스트라 위로 비상하며 긴 호흡으로 장엄하게 뽑아내는 모습은 눈앞에 대자연의 장관이 펼쳐지는 듯하다.



이 음반에는 6개의 각기 다른 매력을 가진 오케스트라 가곡도 포함되어 있다. '내일(Morgen)'은 슈트라우스의 가곡 중 가장 유명한 작품이자, 놓칠 수 없는 걸작이다. 노래의 첫 소절이 나오는 순간 음악 속으로 빠져드는 경험과, 마지막 소절에서 빠져나오는 여운은 천천히 쌓이고 흩어지는 구름을 연상케 한다. 7번 '자장가(Wiegenlied)'와 9번 '내 아이에게(Meinem Kinde)'에서는 부드럽고 따뜻한 음색으로 부모가 자녀에게 보내는 사랑을 온전히 전달한다. 슈트라우스의 초기 작품 중에서도 특히 감동적인 마지막 곡 '헌정(Zueignung)'에서는 순수한 사랑을 기쁨 가득한 목소리로 고백한다.


1983년 녹음으로 꽤 오래된 음반이지만 지휘자 쿠르트 마주어와 게반트하우스가 만들어내는 오케스트라 음향을 즐기기에 부족함이 없다. 음악을 꿰뚫고 있는 듯한 쿠르트 마주어의 리드와 진한 나무색을 연상시키는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의 현악기 소리를 감상하기에도 좋은 음반이다. 이 놀라운 해석과 음향은 제시 노먼의 목소리와 합쳐질 때마다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이들이 만들어낸 음악의 가치는 세월이 흐를수록 오히려 더 깊어진다. "아름다움과 진리를 추구하는 데 있어 두려움 없이 나아가야 합니다." 제시 노먼은 스스로 남긴 이 말을 음악으로 증명하고 있다. 다행히도 우리는 그녀가 남긴 음악 유산을 언제든 꺼내 들을 수 있다.


Essential Track | 4번 트랙(Vier letzte Lieder: IV. Im Abendrot)

곡의 시작부터 현악기의 진한 음색이 귀를 사로잡는다. 이는 넓은 평원 위로 저녁 노을이 붉게 물드는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저녁노을'은 하루의 끝을 상징하며, 음악은 자연이 잠드는 듯이 고요한 평온함을 그려낸다. 마지막 가사는 이렇게 묻는다. "Ist dies etwa der Tod? (이것이 바로 죽음일까?)". 질문을 던지고 있지만, 슈트라우스는 이미 알고 있는 듯하다. 죽음이 자연의 법칙임을.

https://youtu.be/2lXcEs0e7rg?si=1XrLmj9FTsnajMO4


글 안일구, 사진 김신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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