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 벙 프랑세 <Music for Winds>
유독 아끼는 음반이다. 시간이 지나도 음반에 담긴 매혹적인 분위기와 색채는 여전히 놀랍고 매력적이다. 레 벙 프랑세(Les Vents Français)는 세계 최정상의 목관 연주자들로 구성된 앙상블로, 프랑스 음악을 중심으로 다양한 작품을 연주하며 국제적인 명성을 쌓아왔다. 목관 5중주는 플루트, 오보에, 클라리넷, 바순, 호른으로 이루어진 실내악 편성이다. 이 다섯 악기는 각각 고유한 음색과 질감을 지닌 악기들로, 함께 연주하면 오케스트라의 축소판처럼 풍성한 음향 스펙트럼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음색의 조화와 대비는 목관 5중주 연주해서만 누릴 수 있는 독특한 매력을 선사한다. 고전, 낭만, 현대 음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대와 스타일의 곡들이 존재하며, 특히 20세기 이후 작곡가들이 이 편성을 위한 작품을 많이 작곡했다.
장점이 많은 실내악 편성이지만 연주하기에는 까다로운 측면이 많다. 우선 각 악기의 음량과 음색이 매우 달라 섬세한 균형 조절이 필요하다. 또한 악기마다 고유한 기술적 한계가 존재하며, 이를 완벽히 극복하고 앙상블을 유지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레퍼토리 역시 피아노를 포함한 실내악이나 현악 4중주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레 벙 프랑세는 장점을 극대화하고 단점은 독보적인 실력으로 커버하며 전 세계의 무대에서 목관 5중주의 매력을 널리 알리고 있다.
레 벙 프랑세는 플루티스트 엠마누엘 파위(Emmanuel Pahud), 오보이스트 프랑수아 를뢰(François Leleux), 클라리네티스트 폴 메이어(Paul Meyer), 바수니스트 질베르 오뎅(Gilbert Audin), 호르니스트 라도반 블라트코비치(Radovan Vlatković)에 피아니스트 에릭 르 사쥬(Éric Le Sage)까지 합류해 팀을 이루고 있다. 이름만 들어도 목관악기 연주자라면 이들이 바로 이 분야의 어벤저스임을 알 수 있다. 멤버 모두가 각 악기의 최고 대가라는 사실은 이 앙상블에 많은 이점을 제공한다. 이들은 녹음하거나 연주할 작품을 직접 선정하고, 탁월한 실력을 바탕으로 유연하고 즐겁게 음악을 풀어낸다.
피아니스트 에릭 르 사쥬와 함께한 6중주 음반도 물론 환상적이지만, 이 2CD로 구성된 음반은 오직 5개의 악기로 연주한 곡들이 수록되어 있다. 대부분 20세기 작품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 시대 특유의 음악 언어를 잘 느낄 수 있다. 첫 번째 CD에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작곡가들인 이베르, 라벨, 졸리베, 미요, 타파넬의 음악을 들어볼 수 있다. 목관 악기는 상대적으로 부드럽고 풍부한 색채감 덕분에, 프랑스 음악에서 그 역할이 크게 강조되었다. 미요의 <르네왕의 벽난로>를 들어보자. 따뜻하고 아늑한 분위기 속에서 목관 악기의 다양한 음색이 수채화처럼 펼쳐진다. 미요는 이 곡을 통해 단순히 따뜻함을 넘어 감정의 변화를 교차시키며, 때로는 긴장과 해소를 반복하는 패턴을 통해 음악의 감동을 극대화한다. 파위의 따뜻한 플루트 음색이 돋보인다. 라벨의 피아노곡 <쿠프랭의 무덤>을 목관 5중주로 듣는 경험도 특별하다. 여기서는 특히 를뢰의 오보에 선율이 음악 전체에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폴 타파넬 작품의 2악장 도입부에서는 블라트코비치의 호른 연주가 일품이다. 고즈넉한 호른 음색을 시작으로 4개의 악기가 차례로 등장하며 풍성함을 더한다.
프랑스 음악과 함께 목관악기 음색에 적응이 되었다면, 이제 더 다양한 스타일의 곡들로 넘어가 보자. 리게티, 쳄린스키, 바버, 베레스, 힌데미트까지 다양한 나라의 음악 언어가 목관 악기의 음색을 통해 펼쳐진다. 특히 리게티의 음악은 예측이 불가능하고 다른 음악으로 대체할 수 없는 명곡이다. 역시 다양한 화성과 신비로운 음향을 만날 수 있으며, 파위가 연주하는 피콜로(플루트보다 한 옥타브 높은 작은 악기) 소리도 들어볼 수 있다. 바르톡을 추모하는 5악장에서는 바순이 전체 음악을 이끌고, 다른 악기들이 이루는 독특한 음정 관계가 장엄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작은 실내악(Kleine Kammermusik)>은 힌데미트의 작곡 기법이 잘 드러나는 작품으로, 목관 5중주를 위한 실험적이고 독창적인 접근을 보여준다. 이 작품은 리듬의 변화와 음향적 색채를 통해 20세기 초 음악의 혁신적인 특징을 잘 담고 있으며, 현대 실내악 작품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다섯 명의 연주자들은 합주와 독주를 오가며 최고의 기량을 발휘한다.
언제 들어도 놀라운 연주자들이다. 처음 감상할 때는 전체 음악의 흐름을 온전히 느껴보는 것도 좋지만, 두 번째부터는 하나의 악기에만 집중해 들어보면 새로운 즐거움을 발견할 수 있다. 어떤 악기에 주목하든 황홀한 경험이 이어진다. 어려운 곡을 아무렇지도 않게 연주하는 이 대가들의 연주 속에는 끝없이 흐르는 즐거움과 열정이 가득하다. 목관 5중주는 긴 전통을 가지고 있고, 이들이 이 음악 장르의 창시자는 아니다. 하지만 레 벙 프랑세는 분명히 목관 5중주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이 소중한 음반은 각 악기가 보여줄 수 있는 최상의 기교와 음색, 그리고 다섯 연주자의 완벽한 조화를 담아낸 결정판이다. 이 음반을 들을 때마다 그들의 예술에 대한 깊은 존경과 음악의 감동이 마음 속에 자리한다.
Essentiol Track | 28번 트랙(사무엘 바버: 여름 음악, Op. 31)
내게 가장 고마운 발견이었다. 사무엘 바버의 음악이라고는 <현을 위한 아디지오>밖에 알지 못했다. <여름 음악>은 사무엘 바버가 목관 5중주를 위해 작곡한 서정적이고 매력적인 곡이다. 목관 악기의 다채로운 음색으로 나른하고 경쾌하며, 유머러스한 여름의 풍경이 묘사된다. 장면이 전환될 때마다 각 악기가 번갈아 활약하며, 다섯 악기의 고유한 매력을 차례로 느낄 수 있는 곡이다.
https://youtu.be/6FykrybgFf8?si=aj8DKc4VfuqRl7u
글 안일구, 사진 김신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