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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일구 Dec 10. 2024

임윤찬의 쇼팽, 감정으로 빛나는

임윤찬 <Chopin: Etudes>

Chopin Etudes | Yunchan Lim | Decca, 2024

임윤찬. 그는 데카에서의 첫 앨범으로 쇼팽(Chopin) '연습곡' 전곡을 선보였다. 이 음반은 국내 팬들은 물론, 곧 전 세계 음악 애호가들을 매료시켰다. 이는 주요 음반상 수상으로 이어졌고, 영국의 그라모폰상과 프랑스의 디아파종상을 수상했다. 최근에는 '애플 뮤직 클래시컬' 올해의 최고 인기 음반으로 선정되며 다시 한번 주목을 받았다. 사람들은 무엇 때문에 이 음반에 열광할까? 나는 임윤찬이 남긴 짧은 한 마디에서 힌트를 얻었다.


"모든 음표는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같고, 아름다운 자연 그 자체라고 생각해요." -임윤찬-


흐린 날에 들을 쇼팽의 음악을 떠올리면, 녹턴이나 프렐류드 같은 서정적인 작품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또는 짙은 감성을 드러내는 발라드나 바르카롤을 선택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는 지금 쇼팽의 에튀드를 추천하고 있다. 이 음반은 내가 쇼팽 에튀드를 듣던 관점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테크닉이 너무 완벽해 오히려 그 존재가 느껴지지 않는다. 대신 감정이 느껴지고 풍경이 보인다. 쇼팽의 에튀드는 단순한 기술적 연습곡이 아니었다. 짧은 각 곡은 고유의 감정과 이미지를 불러일으킨다. 이것이 쇼팽의 에튀드가 걸작인 이유다. 스무 살의 피아니스트가 이 점을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임윤찬은 첫 음을 누르는 순간부터 이미 드라마를 만들어낸다.


몇 가지 인상적인 작품을 짚어보자. 작품 10의 1번, 첫 번째 트랙인 "Waterfall". 음악이 시작되자마자 폭포수가 우리의 눈앞에 펼쳐진다. 시원하고 역동적이며 광활하다. 3번 트랙 "Tristesse"에서는 행복과 슬픔이 교차하며 느껴진다. 시작부터 듣는 사람의 마음을 부드럽게 음악의 흐름 위에 올려놓는다. 6번 트랙 "Lament"의 경우는 슬픔이 조금 더 강조된다. 사랑하는 이를 잃은 듯한 상실과 애도의 감정이 피아노 선율 속에서 서서히 피어오른다. 작품 25의 5번과 6번도 마찬가지다. "Wrong Note"나 "Thirds"처럼 음의 진행이나 기교적인 측면을 떠올리는 제목을 가지고 있지만, 음악에서는 그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5번에서는 낙엽이 흩날리는 쓸쓸한 가을이 떠오르고, 6번에서는 안개 자욱한 숲 속을 거니는 듯한 느낌을 준다. 고요하면서도 긴장감이 넘친다. 작품 25의 1번 "Aeolian Harp"와 마지막 12번 "Ocean"도 마찬가지다. 1번은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과 갈대의 살랑거림을 떠올리게 하고, 12번은 끝없이 몰아치는 파도의 웅장함을 그려낸다. 가까이서 보면 거칠지만, 멀리서 보면 넓고 끝을 알 수 없는 바다의 모습이 감동적으로 그려진다.



기교와 음악. 두 가지 측면을 함께 보면 더욱 경이롭다. 피아니스트를 지독히 괴롭히는 기교들로 가득한 것이 쇼팽 에튀드다. 모든 작품을 완벽히 소화하기 위해 피아니스트는 손과 손가락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데 능숙해야 한다. 정확한 리듬과 음정을 위해 속도와 강약을 정교하게 조절하는 능력이 필수적이다. 양손은 조화롭게 연주하다가도 완벽히 독립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터치는 솜털처럼 부드럽다가도, 때로는 망치로 건반을 내려치듯 강렬해야 한다. 손가락의 움직임은 속도의 한계에 도달하면서도 정교함을 유지해야 한다. 또한, 적절한 페달링으로 세밀한 음색 변화, 복잡한 음의 조화, 그리고 원하는 프레이즈를 완벽히 뒷받침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이 이루어진 후에야 비로소 음표 뒤에 숨겨진 진짜 음악이 보이고, 감정이 느껴진다. 경이롭다고 표현하는 이유다. 이처럼 완벽한 기교 위에 자신의 음악성을 도도하게 쌓아 올리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과거의 어떤 공연이나 음반보다 제 의지에 가장 큰 영향을 받았어요. 꼭 이 산을 넘고, 저 너머 또 다른 산을 마주하고 싶다는 저의 의지요." -임윤찬


이 어려운 과제를 넘어서고 있는 피아니스트가 바로 스무 살의 임윤찬이다. 이미 임윤찬은 다음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새로운 산을 마주하며, 스스로를 단련하고 또 다른 음악을 빚어가고 있을 것이다. 그가 직접 말했듯, 음악에 대한 의지가 강한 연주자다. 그 순수한 의지가 찬란하게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어내고 있으니 고마울 따름이다. 음악가는 음악으로 말한다. 공연장 안에서 무대 위의 임윤찬은 연주의 강렬함과 음악에 대한 겸손함이 공존하는 연주자였다. 음악을 전달하기 위해서 자신을 하얗게 불태우고, 터덜터덜 걸어 무대를 빠져나가는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음악이 무엇이기에, 이 젊은 피아니스트가 이토록 헌신하며 사랑하게 만드는 것일까? 앞으로 임윤찬이 읽어내는 다른 음악은 또 어떤 모습일까?


Essentiol Track | 19번 트랙 "Cello" (Op. 25: No. 7 in C-Sharp Minor)

가장 쇼팽답기도 하면서, 임윤찬이 가장 잘 연주할 수 있는 곡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곡에서는 오른손과 왼손의 역할이 바뀌어 있다. 피아노 곡이지만, 첼로의 솔로 연주나 바리톤 성악가의 아리아가 연상된다. 오른손은 비교적 간결하게, 낮은 밀도로 움직이며, 왼손은 고조된 밀도로 감정의 깊이를 노래한다. 슬픈 단조와 아름다운 장조가 모두 드라마 속에서 찬란하게 어우러진다.

https://youtu.be/b8PEOj8b-b8?si=I5ABnst0xVDEl9q7


글 안일구, 사진 김신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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