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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일구 Dec 03. 2024

젊은 아바도의 말러

아바도 <Mahler: Symphonies Nos. 2 & 4>

Mahler Symphnies: Nos. 2 & 4 | Claudio Abbado, CSO, Wiener Philharmoniker, Deutsche Grammophon 1996

음악을 듣기 시작한 이후 줄곧 가장 좋아하는 지휘자는 클라우디오 아바도(Claudio Abbado, 1933-2014)였다. 그가 선사하는 여러 음악들과 함께 클래식의 세계에 천천히 발을 들여놓을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그의 말러 교향곡은 특별하다. 아바도는 말러의 음악이 대중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던 시기에도 그의 작품을 적극적으로 연주하고 녹음했다. 아바도는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등 세계적인 악단들과 말러의 교향곡 전곡을 여러 차례 녹음하거나 연주했다. 이러한 기록들은 지금도 말러 음악의 대표적인 해석으로 꼽히며, 말러 애호가들에게 필청으로 여겨진다. 오늘 소개하는 이 음반은 아바도의 말러 녹음 중에서 상대적으로 덜 유명한 초기의 녹음이다. 그런데 나는 이상하게 이 음반을 가장 좋아한다. 젊은 아바도가 바라보는 말러의 교향곡은 어떤 것일까? 말러 교향곡 2번은 빈 필하모닉, 교향곡 4번은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연주를 맡았다.


교향곡 4번은 나의 말러 입문작이다. 말러라는 사람에 대해 이름만 들어본 상태에서 우연히 독일의 청소년 오케스트라에서 한 파트를 맡아 연주를 하게 되었다. 나는 세 번째 플루트와 첫 번째 피콜로 주자(보통 말러의 교향곡에서는 이렇게 악기를 바꿔가면서 연주)를 맡았다. 오케스트라 안에서 경험한 말러 교향곡 4번은 나에게 엄청난 음향적 충격이었다. '와, 세상에 이런 음악이 있구나' 내가 연주를 할 때도 연주를 하지 않을 때도 좋았다. 공부를 위해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서 당시에 들었던 것이 아바도와 빈 필하모닉의 녹음이었다. 빈 필하모닉의 연주와 아바도의 해석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세계처럼 느껴졌다. 특히 3악장에서 노래하는 감동적인 현악기들, 4악장에서의 프레데리카 폰 슈타데(Frederica von Stade)의 아름다운 목소리에 넋이 나갔다. 안타깝게도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지속된 아바도와 빈 필하모닉의 관계는 예술적인 방향성과 견해의 차이로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그래서 더 귀한 녹음이다. 2000년대 들어서는 거의 들어볼 수 없었던  아바도와 빈 필하모닉의 조합을 이 음반을 통해서 들어볼 수 있다.



가장 초창기 아바도의 말러 교향곡 2번을 들어볼 수 있는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와의 연주도 함께 수록되어 있다. 1970년대의 아바도는 본격적으로 세계적인 무대에서 활동을 펼쳐나가고 있었다. 그는 이 시기부터 이미 권위주의적 지휘자상에 반대했고, 오케스트라 단원들에게 자율성을 부여하면서 함께 음악을 만들어갔다. 당시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는 최고의 연주력과 금관 사운드를 자랑했다. 여기에 젊고 점잖고 예리한 해석의 아바도가 만들어낸 이 말러 교향곡 2번은 언제 들어도 황홀하다. 아바도의 음악은 결코 넘치지 않고, 절대 부족하지 않다. 이런 균형감각이 말러의 대규모 교향곡에서도 완벽하게 유지되는 모습은 매 순간 놀랍다. 지나치게 거칠지 않은 1악장, 섬세한 연주와 유려한 현악기 사운드가 돋보이는 2악장, 고풍스러운 스케르초의 표본을 보여주는 듯한 3악장을 지나면 근원의 빛(Urlicht)을 노래하는 4악장에 도달한다. 풍부하고 드라마틱한 톤과 놀라운 음역을 지닌 메조소프라노 마릴린 혼의 목소리를 들어볼 수 있다. 평생 들어도 이해하기 어려울 것 같은 5악장에서 아바도의 차분한 해석이 특히 돋보인다. 이 음반에서는 트랙이 세부적으로 나누어져 있어서 짚어가며 들어보기에도 좋다. 여러 파트의 균형을 유지한 채 마지막에 다다른 음악이 금관악기와 합창과 함께 터져 나올 때는, 다른 음반에서는 경험하지 못하는 진한 감동이 있다.


Essentiol Track | 3번 트랙(Symphony No. 4 in G: III. Ruhevoll (Poco Adagio)

템포만 들어보아도 호불호가 많이 갈릴 수 있는 해석이다. 아주 느린 템포로 진행되지만, 아바도와 빈 필하모닉은 진한 감정과 따뜻한 음색으로 음과 음 사이를 꽉 채운다. 악장 초반은 현악기들이 흐름을 주도하고 5분 이후에 관악기들이 차례로 나오며 합쳐진다. 시종일관 느리게 진행되는 4악장의 무게감은 5악장에서 비로소 해소된다.

https://youtu.be/28DtcBlCfU4?si=4h5XzlHeLnLQzYjL


글 안일구, 사진 김신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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