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판 드구, 라파엘 피숑, 피그말리온 <Mein Traum>
나는 숲으로 나갔다. 나의 고독을 잊고 싶었지만, 나는 완전히 홀로였다.
아무도 만나지 못했고, 마치 모든 것이 죽은 것처럼 느껴졌다.
-슈베르트의 'Mein Traum(나의 꿈)' 중
슈베르트와 흐린 날은 떼어놓기 힘들다. 그의 음악 표현과 정서의 깊이가 흐린 날의 분위기를 그대로 닮아 있기 때문이다. 1822년에 슈베르트는 'Mein Traum(나의 꿈)'이라는 글을 남겼다. 이 글은 몽환적인 분위기와 철학적인 내용으로 가득 차 있으며, 그의 내면세계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기록이다. 1822년의 슈베르트는 창작의 열정과 깊은 고통이 교차하던 시기에 있었다. 이 해는 '미완성 교향곡'이 탄생한 해이기도 하다. 그는 자신의 질병과 고독 속에서도 끊임없이 놀라운 음악을 탄생시켰다. 슈베르트는 짧은 생애(31세) 동안 약 1,500곡의 작품을 남겼다. 이 중 가곡(Lied) 약 600여 곡은 '예술가곡'이라는 장르의 기준을 세웠다.
낭만시대를 활짝 연 천재작곡가. 슈베르트는 친구들과의 예술적 교류를 통해 영감을 얻었지만, 그의 개인적 삶은 외롭고 불안정했다. 그는 평생 경제적 안정을 이루지 못했고, 사랑에서도 번번이 실패했다. 이러한 고독감은 'Mein Traum'에서 뚜렷하게 드러난다. 슈베르트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의 꿈은 무엇이었을까? 작곡가들은 어떤 외로움과 고독을 겪었을까? 이 음반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아간다. 바리톤 스테판 드구(Stéphane Degout)와 지휘자 라파엘 피숑(Raphaël Pichon)은 함께 힘을 모아 슈베르트, 베버, 슈만의 곡들로 특별한 감정의 여정을 떠난다. 이 음반을 통해 드구와 피숑이 얼마나 감정 표현의 대가들인지 깨닫게 된다. 시대악기 연주 단체인 피그말리온은 탁월한 연주력을 바탕으로 섬세하고 독창적인 사운드를 선사한다. 여기에 소프라노 사빈 드비엘(Sabine Devieilhe)과 유디트 파(Judith Fa)의 천상의 목소리를 더해지고, 최고 수준의 합창 또한 눈부신 활약을 펼친다.
음반을 기획하는 입장에서 보면 대규모 교향곡이나 합창곡을 녹음하는 것이 훨씬 수월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음반은 아주 특별한 음악 조각들을 치밀하게 계획해서 배치했다. 전혀 다른 곡들을 앞뒤로 연결시킨 것 같지만, 음악 안에 들어있는 감정과 감정이 묘하게 연결된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슬픔과 절망 심지어 공포까지 느껴지는 슈베르트/리스트의 가곡 '도플갱어(Der Doppelgänger)'가 나온 뒤, 외롭고 불안한 감정으로 가득한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 1악장이 나온다. 다음 곡으로는 오베론 왕이 자연의 아름다움을 찬미하는 작곡가 베버의 아리아가 등장하고, 이는 우아한 선율과 감정의 수직적 깊이가 극에 달하는 미완성 교향곡의 2악장으로 연결된다. 꽤 많은 버전의 미완성 교향곡을 들어보았지만, 피숑과 피그말리온은 다른 차원의 깊이와 음색을 선사한다. 듣는 내내 신선하고 즐겁다.
익숙한 곡보다는 새로운 음악을 접하는 즐거움이 크다. 첫 곡 'Wo bin ich… O könnt' ich(나는 어디에 있는가?)'에서는 라자로가 부활 이후 깨어나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혼란스러워하며, 생명과 영혼의 갈등을 드라마틱하게 노래하는 부분이다. 슈베르트의 미완성 오라토리오 <Lazarus, D. 689> 중 일부이다. 같은 작품의 또 다른 일부인 합창곡 'Sanft und Still(부드럽고 고요히)'도 13번 트랙에 담겨 있다. 슈만의 여자 보컬을 위한 6개의 로망스 5번 'Meerfey(바다의 요정)'도 처음 들어보는 곡이었는데, 신비로움이 가득한 특별한 작품이다. 중간에 등장하는 두 개의 소프라노 곡도 놓칠 수 없다. 소프라노 유디트 파는 베버의 오페라 <오베론> 중에 가장 매혹적인 장면 "O wie wogt es so schön auf der Flut(아, 얼마나 아름답게 파도가 넘실거리는가!)"를 들려주는데, 바다의 풍경을 생생하게 묘사하며 그녀의 희망과 두려움이 섞여 있는 심정을 담고 있다. 세계 최고의 소프라노로 주목받고 있는 사빈 드비엘은 슈베르트의 아베 마리아를 하프 단 한대에 의지해 부른다. 가사에 따라 달라지는 목소리 표정은 감탄을 자아낸다. 스테판 드구는 깊고 진한 목소리와 놀라운 표현력으로 음반 전체를 이끈다.
Essentiol Track | 14번 트랙
Szenen aus Goethes Faust, WoO 3, Part III Scene V: Aria "Hier ist die Aussicht frei"
슈만은 괴테의 <파우스트>를 바탕으로 한 <괴테의 파우스트의 장면들>이라는 작품을 작곡했다. 칸타타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1844년부터 1853년까지 오랜 기간에 걸쳐 작곡했다. "Hier ist die Aussicht frei(여기는 전망이 자유롭네)"는 구원의 고양감을 담고 있으며, 파우스트가 자신의 영혼을 해방시키며 더 높은 경지로 도달하는 모습을 묘사한다. 이 장면은 특히 괴테 원작의 마지막 부분에서 '파우스트의 천상승천'에 해당한다. 스테판 드구의 감정묘사와 이를 뒷받침하는 악기들의 섬세한 연주가 일품이다.
https://youtu.be/hLZfEGjED3A?si=Ez8VN2kSumdXQKPs
글 안일구, 사진 김신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