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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일구 Nov 12. 2024

세대의 허물어짐

스와르트, 크리스티 <"Générations">

Christie, Swarte | Generations | harmonia mundi, 2019

독일의 작은 교회에서 르클레어(Jean-Marie Leclair, 1697-1764)의 소나타를 연주할 기회가 있었다. 플루트를 위한 소나타 Op.9 No.7이었는데, 바흐와 헨델 소나타에 익숙해져 있는 나에게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꽉 짜인 구조라기보다는 어딘지 모르게 살짝 풀어진 형태였는데, 그래서인지 연주자에게 많은 자유를 준다고 느꼈다. 만들어가는 재미가 있달까. 음악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지 매번 연주할 때마다 음악의 가치를 다시금 일깨워 주었다.


윌리엄 크리스티와 테오팀 랑글루아 드 스와르트. 나이 차이가 50세에 이르는 두 연주자가 함께 르클레어와 세나이예(Jean Baptiste Senaillé, 1687-1730)의 음악을 연주한다. 음악을 만들어가는 데 있어 세대 차이는 느껴지지 않는다. 350여 년 전 프랑스에서 활동했던 두 작곡가의 작품 앞에서 두 연주자의 나이 차는 무의미해진다. 이 음반을 우리는 '듀오'음반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콰르텟'이다. 두 작곡가와 두 연주자. 평생을 음악에 헌신한 네 사람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이 음반 안에서 펼쳐진다. 


우리는 흔히 음악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독일 출신의 바흐와 헨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 이전에는 이탈리아와 프랑스가 중요한 음악적 유산을 쌓아왔다. 이 음반에 등장하는 두 작곡가, 르클레르와 세나이는 그 당시 프랑스의 파가니니와 같은 존재였다. 훌륭한 연주 실력을 탑재한 이들은 작곡에도 능했다. 두 사람이 만들어낸 소나타는 프랑스 춤곡의 리듬과 분위기를 충분히 머금고, 화려한 기교와 감동적인 선율을 자랑한다. 이렇게 잘 알려지지 않은 훌륭한 작품들이 더 널리 알려지기 위해서는 우리 시대의 탁월한 연주자들이 필요하다.


윌리엄 크리스티(William Christie, 1944*)는 하프시코드 연주자다. 1979년에 창단한 앙상블 '아르 플로리상(Arts Florissants)'의 지휘자이기도 하다. 주로 프랑스의 위대한 바로크 음악 작곡가들의 음악을 연주하며 무려 100장이 넘는 음반을 발매했다. 바이올리니스트 테오팀 랑글로와 스와르트(Théotime Langlois de Swarte, 1995*)는 최근 바로크 음악업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연주자다. 일찍이 저스틴 테일러와 함께 창단한 앙상블 '르 콩소르(Le Consort)', 그리고 뛰어난 류트 연주자 토마스 던포드와의 협업을 통해 주옥같은 작품들을 쏟아냈다. 처음 연주를 접하고 매료되어, 이제는 스와르트가 연주하면 그냥 믿고 듣는다. 음반을 낼 때마다 음악계에서 주목을 받는 두 사람의 듀오 음반이라는 것만으로도 참 소중하다. 


바로크 음악에서는 각 조표마다 고유한 성격이나 "캐릭터"가 있다고 여겼다. G-Minor는 비극적이고 심오한 감정, 종종 비통함이나 절망을 표현하는 데 사용되었다. 6-9번 트랙에 담긴 세나이예의 G단조 소나타를 들어보자. 4개의 작은 악장을 통해 슬픈 음악이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를 증명한다. 르클레어의 음악은 오히려 장조 곡에서 빛을 발한다. 가장 마지막 22-25번 트랙에 위치한 F장조 소나타는 세련미가 돋보인다. 편안하고 고요하며 자연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F단조의 특성을 직관적이면서도 매력적으로 담아낸다.



Essentiol Track (1번 트랙)

잊혀져 가는 음악에 새로운 숨을 불어넣는 듯한 감동적인 연주다. 프랑스에서 유래한 가보트는 보통 경쾌한 춤곡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 연주는 가보트가 얼마나 우아하게 펼쳐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단순한 구성과 형태를 가진 곡이지만, 연주를 통해 느껴지는 감정은 끝이 없다. 하나의 예술 작품처럼 아름다운 영상과 함께 이 곡을 감상해 보자.

https://youtu.be/omepRsrRMw4?si=0asnRS36ggwzzULE


글 안일구, 사진 김신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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