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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일구 Nov 05. 2024

베르사유로의 시간여행

알렉상드르 타로, <베르사유 Versailles>

Versailles | Allesxandre Tharaud | Erato, 2019
"첫 화음부터 나는 가면을 쓰지 않고 당신들을 내 집으로 초대한다. 단순하게 합시다."  

_알렉상드르 타로 <이제 당신의 손을 보여줘요> 중


소개하고 싶은 음반은 수 백개가 넘지만, 이 프로젝트의 첫 번째 음반으로는 단 하나, 알렉상드르 타로(Alexandre Tharaud)의 “베르사유 Versailles”를 떠올렸다. 베르사유라는 이름이 말하듯, 루이 14세부터 16세의 프랑스 궁정에서 연주되었던 하프시코드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다. 타로는 피아노로는 잘 연주되지 않는 곡들을 마치 원래 피아노 곡인 것처럼 연주하고 있다. 과감하게 이 위대한 작품들이 하프시코드 연주자들의 전유물이 아님을 이야기한다. 들을수록 섬세한 터치와 독창적인 해석이 돋보이는 보석 같은 음반이다.  ‘나만 알고 싶다’, ‘모두에게 들려주고 싶다.’ 이 음반에 대해서는 두 가지 감정이 교차한다. 그만큼 한 번 듣기 시작하면 헤어 나오기 힘들다.


베르사유 궁전은 루이 14세의 주도로 지어졌으며, 왕의 권위와 프랑스 절대왕정을 과시하는 상징이었다. 당시의 베르사유는 화려하고 엄격한 궁정 예절이 지배하는 장소였다. 궁전 안은 언제나 웅장하고 우아한 분위기를 유지하고자 했으며, 벽과 천장에는 화려한 벽화와 장식들이 가득했다. 또 베르사유의 바로크식 정원은 얼마나 넓고 아름다운가. 한편 베르사유는 음악, 무용 그리고 화려한 연회가 끊이지 않는 장소였다. 루이 14세는 스스로를 ‘태양왕’이라 부르며, 예술을 통해 자신의 위엄을 드러내고자 했다. 장바티스트 륄리(Jean-Baptiste Lully), 장필리프 라모(Jean-Philippe Rameau), 프랑수아 쿠프랭(François Couperin)처럼 당시 프랑스를 대표하는 작곡가들은 왕실의 예술적 요구에 부응하며 베르사유 궁정을 프랑스 음악과 예술의 중심지로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타로가 피아노로 그리는 베르사유 궁전으로 들어가 보자. 끊임없는 밀당의 묘미로 불안감과 위로를 동시에 주는 11번 트랙 쿠프랭의 “방황하는 그림자들”은 내가 이 음반에 빠지게 된 계기이다. 언제 들어도 가장 매혹적이다. 타로와 가장 가까운 음악 파트너인 소프라노 사빈 드비엘(Sabine Devieilhe)이 함께 참여한 9번 트랙 라모의 'Viens, Hymen', 젊은 하프시코드 연주자 저스틴 테일러(Justin Taylor)와 포핸즈로 연주한 13번 트랙 라모의 “야만인들"과 같은 협업도 돋보인다. 21번 트랙은 바로크 시대에 작곡가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 있었던 ‘La folia’ 주제에 의한 곡이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 유래한 이 주제에는 애수와 격정이 깃들어 있다. 바흐, 헨델, 비발디, 코렐리 등 대부분의 바로크 작곡가가 이 주제를 사용해 음악을 남겼다. 장 앙리 당글베르(Jean-Henry D’Anglebert)는 루이 14세가 통치하던 궁정에서 활동하면서 왕실과 귀족 사회에서 매우 존경받는 하프시코드 연주자이자 작곡가였다. 당글베르의 곡을 대하는 타로는 부드럽지만 거침없이 주제를 꺼낸다. 변주가 진행될수록 이 주제가 가진 여러 모습과 표정을 예리하게 조명하고 있다.


처음 이 음반을 접하면 언어가 걸림돌이다. 프랑스어는 작곡가의 이름도 곡의 제목도 참 읽기가 어렵다. 처음엔 손이 잘 안 가게 되는 이유이다. 그런데 사실 아무런 정보가 없어도 된다. 나는 이 음반을 발견한 이후 아무런 정보 없이 무려 1년 동안 들었다. 음악은 그 자체로 번역이 필요 없는 고유한 언어이다. 들리는 대로 듣고, 느껴지는 대로 느끼면 된다. 클래식 음악을 통해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절대 느낄 수 없는 감정, 시간, 장소를 넘나들 수 있다. 17~18세기에 베르사유에서 울려 퍼졌을 프랑스 바로크 음악과 함께 그 멋진 체험을 시작하기 바란다.


Essential Track (1번 트랙)

"홀로 베르사유 궁의 문을 열고 거대한 방에 들어서는 것과 같다."

첫 번째 트랙 라모의 전주곡에 대해 알렉상드르 타로가 한 말이다. 이 곡은 시간여행을 위한 준비처럼 느껴진다. 베르사유 궁전에 울려 퍼지는 섬세한 트릴과 왼손과 오른손이 교차하면 들려주는 음들의 대화는 현대 피아노의 아름다움을 전한다. 음악에서 음과 음 사이의 공백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우리에게 알려준다.


https://youtu.be/_vbjrbWrm6E?si=ciNSd7eGMV3XG7F_


글 안일구, 사진 김신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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