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벤 콰르텟, 알트슈태트, 타메스티 <'Round Midnight> |
"기적도 시간이 걸리는 법이에요.
(Even miracles take a little time.)"
-신데렐라 중-
음악은 시간의 예술이다. 음악은 시간을 구성하는 방식으로, 그 자체가 시간이다. 오늘 추천할 음반은 <'round midnight> 즉, 자정 즈음을 뜻하는 제목을 가지고 있다. 미안하지만 여유롭고 느긋하게 감상하는 곡들이 아니다. 음반에 담긴 세 가지의 음악은 모두 강렬한 에너지를 발산하며, 듣는 이의 깊은 내면을 자극한다. 자정은 가장 신비로운 시간이다. 유럽 전통에서 자정은 종종 마법과 초자연적 힘이 강력해지는 시간으로 여겨졌다. 한자 문화권에서도 자정은 음과 양이 교차하는 특별한 순간으로 간주되었다. 개인적으로 '자정'이라는 단어는 나에게 신데렐라 이야기를 떠올리게도 한다. 신데렐라 이야기에서도 자정은 마법이 끝을 맺는 순간이자 현실로 돌아가야 하는 시점으로 묘사된다.
에벤 콰르텟(Quatuor Ébène)의 음반과 영상은 놓치지 않고 듣고, 보려고 한다. 연주자 개개인의 기량과 개성은 물론 네 사람이 함께 만들어내는 에너지가 대단한 팀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음반 중에서 'round midnight이라는 제목은 특히 시선을 끌었다. 이 음반을 통해 뒤티외의 현악 4중주 '그리하여 밤은(Ainsi la nuit')을 알게 되었고, 이들이 연주한 쇤베르크의 '정화된 밤(Verklärte Nacht)'에 중독되기도 했다. 그리고 에벤 콰르텟의 첼리스트인 라파엘 멀린(Raphael Merlin)이 작곡한 'Night Bridge'가 수록되어 있는데 'Moon River'와 같은 스탠더드 재즈 곡들을 아주 특별한 형태로 감상할 수 있다. 음반의 모든 곡은 밤의 분위기에서 영감을 받았다. 특별 게스트로 앙투안 타메스티(비올라)와 니콜라스 알트슈태트(첼로)가 참여하여 더욱 풍성한 음악적 경험을 선사한다.
현대 음악을 대할 때 한 가지만 당부하고 싶다. 낯설다고 마음을 닫아버리지는 말자. 열린 마음으로 새로운 경험을 받아들이는 태도만 유지한다면, 언젠가 현대 음악은 당신의 마음에 가 닿을 것이다. 현대 음악에 입문하기에 가장 좋은 곡이 이 음반의 마지막에 수록되어 있다. 바로 아르놀트 쇤베르크(Arnold Schoenberg, 1874-1951)의 '정화된 밤'이다. 1899년에 작곡된 현악 6중주곡(Op. 4)으로, 리하르트 데멜의 시에서 영감을 받았다. 시는 밤길을 걷는 남녀가 서로의 고백과 용서를 통해 정서적으로 화해하고 사랑을 확인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음악은 쉬는 부분이 없는 단악장이지만 시의 다섯 장면을 따라 전개되기 때문에 5개의 파트로 나눈다. 이 음반에서는 음악에 따라 조금 더 세분화하여 8개로 나누었다. 어둡고 불안한 시작에서 점차 평화롭고 정화된 결말로 나아가는 음악은 내용을 모르고 들어도 감동적이다. 밤이 깊은 숲길을 음악과 함께 걷는 듯한 기분마저 든다. 조금 더 대중적인 현악 오케스트라 버전도 존재하지만, 이렇게 훌륭한 연주자들의 현악 6중주라면 언제나 환영이다.
쇤베르크는 대부분의 애호가들에게 익숙한 이름이지만, 작곡가 앙리 뒤티외(Henri Dutilleux, 1916–2013)는라는 이름은 처음 접하는 분들도 많을 것이다. 뒤티외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20세기 후반의 작곡가다. 그의 음악은 드뷔시와 라벨의 전통을 잇되, 더 현대적이고 매혹적인 색채를 가미했다. 사실 플루트를 위한 유명한 소나티네가 존재해서 일찍이 접할 수 있었는데, 그 어떤 작곡가와도 비슷하지 않은 독자적인 스타일을 갖고 있다. 현악 4중주 <그리하여 밤을>은 그의 대표작이다. 1976년 작곡된 현악 4중주곡으로, 밤의 신비로운 분위기와 정서를 깊이 탐구하고 있다. 밤, 시간, 꿈, 거울, 별과 같은 요소들을 현악기가 낼 수 있는 여러 음색과 질감으로 그리는 실험적인 곡이다. 피치카토, 하모닉스, 글리산도 등 현악기 테크닉도 모두 감상해 볼 수 있다.
두 위대한 작곡가 사이에는 에벤 콰르텟의 첼리스트이기도 한 라파엘 멀린(Raphael Merlin)의'Night Bridge'라는 곡이 자리 잡고 있다. 에벤 콰르텟은 평소 연주회에서도 앙코르로 재즈 스탠더드 곡들을 자주 연주한다. 이 곡을 멍하니 듣다가 Moon River의 선율에 소름이 돋았다. 유명한 선율을 중심으로 그 주변을 맴도는 악기들의 화성과 분위기가 상당히 매력적이다. 잘 알려진 재즈 곡의 메들리라고 하기엔 놀라울 정도로 정교한 연주의 연속이다.
에벤 콰르텟은 이번 음반에서도 한 음, 한 음에 영혼을 담은 듯하다. 최고의 결과물을 향해 돌진하는 느낌이랄까. 타메스티와 알트슈태트의 가세로 이 도전은 더욱 조화롭게 빛을 발하고 있다. 이 음반만큼은 조용한 환경에서, 또는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을 통해 듣기를 추천한다. 그래야만 이들의 열정과 에너지, 그리고 밤의 압도적인 분위기와 풍경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Essentiol Track | 28번 트랙(정화된 밤 중 5번째 트랙 V. Sehr breit und langsam)
이 부분은 왜 감동적일까? 쇤베르크는 이 곡을 통해 단순히 음악적 표현을 넘어, 인간의 용서와 사랑이라는 깊은 메시지를 담아내고 있다. 이 부분은 여자가 과거를 고백을 한 후, 남자가 그녀를 용서하는 장면에서 극적으로 등장한다. 깜깜한 밤 속에서도 감정이 듬뿍 담긴 선율, 화성, 현악기의 음색이 찬란하게 반짝인다.
https://youtu.be/zUFeuKsHCSQ?si=GD-F35z-7FPdaRp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