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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노래, 스무 편의 이야기

게오르그 니글, 올가 파셴코 <Echo>

by 안일구

Alpha Classics, 2023

"이 음반은 가곡 해석의 새로운 기준을 세웠다"
-BBC Music Magazine


나에겐 거의 인생 음반에 가까운 작품이다. 오스트리아의 바리톤 게오르그 니글(Georg Nigl)은 뛰어난 가수이자 훌륭한 해석가다. 그는 음악과 그 속에 담긴 이야기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소화해 전달한다. 가사를 씹어 먹는 듯한 딕션, 다채로운 음색, 폭넓은 성량과 다이내믹이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무엇보다 그의 노래에서는 이야기가 들린다. 가사를 보지 않아도, 그의 목소리만으로 시가 품고 있는 내용과 분위기가 생생하게 전해진다.


이 음반에서는 현대 피아노가 아닌 포르테피아노 소리를 들을 수 있다. 포르테피아노(Fortepiano)는 18~19세기에 사용된 초기 피아노로, 현대 피아노와 비교했을 때 독특한 음색과 연주 스타일을 지니고 있다. 나는 표현이 다소 제한적일 것이라 생각했지만, 피아니스트 올가 파셴코는 그 고정관념을 완전히 깨버렸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저음, 맑은 종소리를 연상시키는 고음, 그리고 올가 파셴코의 아름다운 해석이 성악가의 목소리와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슈베르트, 뢰베, 슈만, 볼프는 모두 독일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작곡가들로, 특히 예술가곡(Lied) 장르를 정착시키고 발전시켰다. 이들이 이룬 시와 음악의 결합은 후대 모든 작곡가들에게 깊은 영향을 미쳤다. 좋은 음악은 생명력이 유난히 질기다. 잊힐 수도 있었던 시들이 최고의 작곡가들에 의해 가곡으로 탄생하며, 시와 노래가 함께 우리 곁에 남았다. 그리고 훌륭한 음반을 통해 우리는 이 시와 노래를 영원히 들을 수 있다. 설명을 늘어놓기보다, 아름다운 시 세 편이 음악으로 어떻게 표현되었는지 직접 들어보는 건 어떨까?


Der Vater mit dem Kind (아버지와 아이)
-에두아르트 폰 바우언펠트 (Eduard von Bauernfeld)
아버지의 팔 안에서 아이가 안겨 있다,
그렇게 편안히, 그렇게 따뜻하게 쉬며
부드럽게 미소 짓는다: “사랑하는 아버지!”
그리고 그 미소 속에서 잠이 든다.
아버지는 몸을 숙이고, 숨조차 죽이며
자신의 아이가 꾸는 꿈을 가만히 듣는다;
그는 지나가버린 시절을 떠올린다,
애틋한 행복 속에서.
그의 가슴 깊은 곳에서 한 방울의 눈물이
아이의 입술 위로 떨어진다;
그는 얼른 그 눈물을 입맞추어 닦아내고,
아이를 조용히 흔들어 달랜다.
온 세상의 부를 준다 해도
그는 이 소중한 아이를 내어줄 수 없으리라;
이미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그렇게 자신의 품 안에 행복을 안고 있는 이다!


아버지가 아이를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과 느껴지는 행복에 대해서 노래한다. 그런데 이 시를 보면, 어머니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없지만, 어머니가 출산 시에 이미 세상을 떠났을 가능성을 암시하고 있다. 이 슬프고도 아름다운 시는 슈베르트의 음악 속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 (2번 트랙, Der Vater mit dem Kind, D. 906)


Märzveilchen (3월의 제비꽃)
-아델베르트 폰 샤미소(Adelbert von Chamisso)
하늘은 맑고 푸르게 펼쳐져 있고,
서리는 꽃들을 자랑하듯 내보이네.
창가에는 반짝이는 꽃무늬가 빛나고,
한 젊은이가 그것을 바라보며 서 있네.
그리고 그 꽃들 뒤에는
파랗고 미소 짓는 한 쌍의 눈동자가 피어 있네.
그가 이제껏 본 적 없는 3월의 제비꽃이여!
입김 한 번에 서리는 녹아 사라지리.
얼음꽃들이 녹기 시작하니,
신이시여, 그 젊은이를 불쌍히 여기소서.

이 시는 슈만에 의해 가곡이 되었다. 봄의 시작과 함께 피어나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그 속에서 느끼는 젊은이의 감정을 묘사하고 있다. 슈만이 포착하고 있는 이 시의 매력이 니글의 목소리에서 그대로 전해진다.

(9번 트랙, 5 Lieder, Op. 40 No. 1, Märzveilchen)



Der Rattenfänger (쥐잡이)
-요한 볼프강 폰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나는 잘 알려진 가수,
수많은 곳을 여행한 쥐잡이,
이 오랜 명성의 도시가
분명히 꼭 필요로 하는 자라네.
쥐가 아무리 많아도,
족제비가 함께 있어도,
나는 이곳을 깨끗이 치우리니,
그들은 모두 함께 떠나야만 하리라.
그러나 이 유쾌한 가수는
때때로 아이들을 유혹하는 자,
가장 야생적인 아이들마저
황금 같은 동화를 노래하며 제압하지.
소년들이 아무리 반항적이어도,
소녀들이 아무리 의심 많아도,
내가 현을 퉁기기만 하면,
그들은 모두 내 뒤를 따라오네.
또한, 이 능숙한 가수는
때로는 소녀들을 유혹하는 자,
그가 도착한 어느 마을에서도
많은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지 않은 적이 없었네.
소녀들이 아무리 수줍어해도,
여인들이 아무리 새침해도,
그러나 마법 같은 선율과 노래가 울리면,
모두 사랑에 빠지고 마네.

'Der Rattenfänger'는 직역하면 '쥐잡이'를 뜻하는데,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 전설을 소재로 괴테가 쓴 시이다. 쥐잡이가 자신의 능력으로 쥐뿐만 아니라 아이들과 소녀들까지도 매혹시킬 수 있음을 노래한다. 수많은 화가들이 이 이야기로 그림을 남겼지만, 음악으로 듣는 피리 부는 사나이도 매력적이다. 후고 볼프는 짧은 시간에 다양한 음악장치로 이야기를 생동감 넘치게 표현해 냈다.(18번 트랙, Goethe-Lieder, No. 11, Der Rattenfänger)


Essential Track | 20번 트랙 (3 Balladen, Op. 2 No. 2, Herr Oluf)

사실 모든 곡이 마스터피스이고 놀라운 결과물이다. 그중에서도 20번 트랙, 카를 뢰베 (Carl Loewe)의 '올루프 씨'는 수많은 감정들이 뒤섞인 명작이다. '올루프 씨'는 덴마크 전설에 기반한 내용으로, 신랑인 올루프가 결혼식을 앞두고 밤에 말을 타고 숲을 지나던 중, 요정(Elf)들의 무도회에 휘말리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괴테의 '마왕(Erlkönig)'처럼 죽음과 신비로운 존재의 유혹을 다루고 있는 점이 재미있다. 니글의 목소리와 파셴코의 피아노 연주를 즐기기에도 최고의 곡이다.

https://youtu.be/UMkOUFrxzN8?si=-0e5DqUPZGU0qHxS


글 안일구, 사진 김신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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