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치코프, 체코 필하모닉 <차이콥스키 프로젝트>
"내가 지금까지 쓴 곡 중에서 가장 깊은 감정을 담았다"
-표토르 차이콥스키
1893년 10월 28일,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차이콥스키의 교향곡 6번 "비창"이 초연되었다. 그러나 그 반응은 미묘했다. 몇몇 청중은 감동했다고 하지만, 전체적으로 객석의 분위기는 차분했다. 차이콥스키는 실망했을까?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이 곡이 자신의 최고의 작품이라 확신했다. 그런데 초연 9일 후, 그는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비창"이라는 제목은 차이콥스키가 직접 붙인 것이 아니었다. 그는 이 곡에 대해 "의미 있는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다"라고만 했지만, 자세한 설명은 남기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조카 블라디미르 다비도프(애칭 ‘보버’)가 "파테티크(Pathetique)", 즉 격정적이고 비장한 느낌을 가진 제목을 제안했고, 차이콥스키는 이를 즉시 받아들였다. 이 조카는 그에게 단순한 친척 이상의 존재였다. 차이콥스키는 보버를 깊이 아꼈다. 일부 학자들은 그 감정이 단순한 가족애를 넘어선 것이라 해석하기도 한다.
그는 평생 내면의 갈등 속에서 살았다. 동성애자로서 러시아 사회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숨겨야 했고, 가족과의 관계에서도 애증이 공존했다. 1877년에는 감정을 숨기기 위해 한 여인과 결혼했지만, 결혼 생활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끝나버렸다. 그는 도망치듯 유럽 곳곳을 떠돌았고, 불안과 우울 속에서 작곡에 몰입했다. "비창"은 이러한 경험과 감정의 결정체처럼 들린다. 특히 이 교향곡의 마지막 4악장은 교향곡 역사에서 보기 드문 방식으로 끝난다. 보통 교향곡은 웅장한 피날레로 마무리되지만, 비창의 마지막은 점점 사그라드는 현악기 연주로 끝난다. 마치 생명이 꺼져가는 듯한 이 결말은, 듣는 이로 하여금 깊은 여운을 남긴다.
차이콥스키의 죽음에 대한 미스터리는 여전히 논쟁거리다. 공식적인 사인은 콜레라 감염이었지만, 일부 학자들은 자살설을 주장한다. 어떤 이들은 그가 상트페테르부르크 사법위원회의 명령으로 음독을 강요당했다고도 말한다. 그러나 나는 이 작품을 그렇게 '죽음을 예견한 유서'로 보고 싶지 않다. 결과적으로 이 곡은 가장 아름다운 음악이 되었다. 비창 교향곡은 그의 음악적 재능과 그의 인생을 대변하는 작품이다. 차이콥스키는 이 곡을 통해 우리 감정의 끝과 끝을 경험하게 한다. 삶과 죽음, 열정과 절망, 기쁨과 슬픔. "비창"은 그렇게 삶의 모든 감정을 품은 위대한 음악적 유산으로 남아 있다.
교향곡 4악장의 불꽃이 그렇게 꺼져 버린 후, 이 음반에서는 또 하나의 아름다운 비극이 펼쳐진다. 바로 "로미오와 줄리엣 환상 서곡"이다. 이 작품은 프로코피예프의 로미오와 줄리엣과는 또 다른, 독특한 매력을 지닌다. 차이콥스키는 20분 안에 관현악만으로 셰익스피어의 이야기 전체를 눈앞에 그려지게 해 준다. 장엄한 화음으로 시작하는 도입부는 마치 운명의 서막처럼 들린다. 수도사 로렌스의 기도를 떠올리게 하는 이 주제는 잠시 평온을 안겨주지만, 곧바로 불길한 긴장감이 피어오른다. 몬태규와 캐퓰릿 가문이 칼을 맞대는 듯 차갑고 격렬한 선율이 몰아치며, 대립과 증오가 음악 안에서 불꽃처럼 타오른다. 하지만 그 모든 소음 속에서도, 두 주인공의 사랑이 조용히 피어난다. 이후 "사랑의 주제"가 등장할 때의 감동은 차이콥스키만이 줄 수 있는 마법과 같다. 그러나 달콤한 순간은 오래가지 못한다. 불길한 현악기 소리와 함께, 운명의 소용돌이가 두 사람을 집어삼킨다.
대표적 러시아 레퍼토리인 비창 교향곡과 로미와 줄리엣 연주를 체코 필하모닉의 음반으로 추천하게 될 줄은 몰랐다. 클래식 음악을 듣기 시작한 순간부터 줄곧 좋아해 온 지휘자, 세묜 비치코프의 가장 최근 해석을 듣고 싶었기 때문이다. 비치코프는 오케스트라가 가진 장점은 결대로 살리면서 숨은 잠재력까지 이끌어 낸다. 이 음반에서 그와 체코 필하모닉은 다양한 분위기와 색채, 그리고 차이콥스키 특유의 압도적인 선율미를 완벽하게 살려낸다. 하지만 감정적으로 과잉되지 않으며, 구조와 균형미 또한 단단히 유지된다. 절제와 깊이가 함께 공존하는 비치코프의 차이콥스키 해석은 귀하다. 앞으로 더 귀해질 것이다.
Essential Track | 2번 트랙 (Symphony No. 6 in B Minor, Op. 74, TH.30: II. Allegro con grazia)
비뚤어진 왈츠. 세상에 단 하나뿐인 이 왈츠는, 3박자가 아닌 5박자로 쓰였다. 밝은 화성과 우아한 선율을 가졌지만, 어딘가 모르게 쓸쓸하다. 마치 다가올 운명을 예견하는 듯한 기묘한 분위기가 스며 있다. 오케스트라 안에서 처음 이 악장을 연주했을 때의 느낌이 아직도 생생하다. 3박자가 아닌 왈츠는 부자연스럽고 어색했다. 그러나 리허설을 거듭하며, 있는 그대로 음악을 바라보니 알 수 있었다. 이 왈츠는 그 자체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을.
https://youtu.be/Jcp0BbRRQu4?si=zcZVqI4AxpPyTxxQ
글 안일구, 사진 김신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