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요마 & 엠마누엘 엑스 <Hope Amid Tears>
"우리는 마치 오래된 커플 같아요. 말없이 그저 연주할 뿐이죠."
-엠마누엘 엑스
요요 마(Yo-Yo Ma)와 엠마누엘 엑스(Emanuel Ax)의 베토벤 첼로 소나타 전곡 음반은 친구 사이의 다정한 담소이자, 거대한 음악적 대화다. 베토벤이 남긴 다섯 개의 첼로 소나타와 세 개의 변주곡이 담긴 이 음반은, 그의 작곡 스타일이 시대별로 어떻게 변화했는지 보여주는 동시에, 두 거장이 쌓아온 오랜 우정과 호흡을 깊이 있게 담아낸다. 요요 마와 엑스의 연주는 첼로와 피아노라는 두 악기의 조합을 넘어, 서로의 소리를 감싸 안고, 도전하고, 화답하는 과정을 통해 베토벤의 음악을 친근하고 자연스럽게 풀어낸다. 이는 악기를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베토벤이라는 드넓은 음악 세계를 함께 여행하며 나누는 깊은 대화처럼 다가온다.
"Manny(엠마누엘 엑스의 애칭)와 저를 놀라게 한 건, 그 모든 것들에도 불구하고 베토벤이 세상에서 가장 낙관적인 곡을 썼다는 겁니다." -요요 마
이 음반의 제목 Hope Amid Tears(슬픔 속의 희망) 은 베토벤이 독일 귀족이자 첼리스트였던 이그나츠 폰 글라이헨슈타인 남작을 위해 작곡한 Inter lacrimas et luctum에서 따온 것이다. 이는 ‘눈물과 슬픔 속에서’(amid tears and grief)라는 뜻을 담고 있다. 200여 년 전, 베토벤은 이 곡에서 위안을 얻었을 테지만, 2021년에 발매된 Hope Amid Tears 역시 우리에게 깊은 위로를 전해준다. 다섯 개의 소나타는 마치 베토벤이 자신의 경험과 감정을 기록한 일기장처럼 느껴진다. 감상할 때는 시대적 흐름에 따라 1·2번 소나타, 3번 소나타, 그리고 4·5번 소나타로 나누어 들으면 자연스럽게 다가올 것이다.
1·2번 소나타는 베토벤이 청년 시절인 1796년에 작곡한 작품으로, 당시로서는 매우 혁신적이었다. 기존의 첼로 소나타들이 피아노 중심으로 구성된 것과 달리, 베토벤은 두 악기를 대등한 파트너로 삼아 새로운 균형을 시도했다. 요요 마와 엑스는 이 두 곡을 통해 청년 베토벤의 실험 정신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특히, 첫 번째 소나타의 긴 서주부에서 피아노와 첼로가 번갈아가며 주제를 주고받는 순간들은 아름답게 반짝거린다.
1808년, 베토벤은 국가적, 개인적으로 혼란스러운 시기에 3번 소나타를 작곡했다. 당시 유럽은 나폴레옹 전쟁으로 혼란에 빠져 있었고, 베토벤은 점점 악화되는 청력 때문에 깊은 절망 속에 지내고 있었다. 음악가에게 청력 상실은 사형선고나 다름없었지만, 그런 상황 속에서도 베토벤은 항상 아름다운 작품을 탄생시킨다. 3번 소나타는 서정성과 내면의 깊이를 드러낸다. 요요 마의 따뜻한 첼로 톤과 엑스의 사려 깊은 피아노 터치는 이 곡의 감정을 더욱 풍부하게 살려낸다. 서정적인 주제가 등장할 때마다 첼로의 연주는 마치 말을 건네듯 흐르고, 피아노가 이를 부드럽게 감싸준다. 두 연주자의 오랜 우정과 호흡이 가장 빛나는 작품이기도 하다.
후기 소나타인 4·5번은 더욱 실험적이고 추상적인 성격을 띤다. 이 두 곡에서 베토벤은 피아노와 첼로의 관계를 더욱 유기적으로 만들고, 기존 형식의 틀에서 벗어나 완전히 자유로운 구조를 탐구한다. 요요 마와 엑스는 이러한 음악적 특성에 맞춰 연주 스타일을 변화시킨다. 선율의 흐름을 더욱 유연하게 만들고, 대비를 강조하면서도 즉흥적인 느낌을 유지한다. 특히, 5번 소나타의 마지막 푸가를 놓쳐서는 안된다. 푸가와 함께 흐르는 긴장감 넘치는 대화는 이 음반에서 가장 인상적인 순간 중 하나다.
1787년, 16세의 베토벤은 빈을 방문했다. 그의 목표는 당시 유럽 전역에서 명성을 떨치던 모차르트에게 배우는 것이었다. 베토벤이 실제로 모차르트를 만났는지에 대한 논쟁은 여전히 남아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베토벤이 모차르트의 음악적 유산을 바탕으로 자신의 작품을 발전시켰다는 점이다. 이 음반에는 다섯 개의 소나타뿐만 아니라, 베토벤이 첼로와 피아노를 위해 작곡한 세 개의 변주곡도 포함되어 있다. 그중 두 곡은 모차르트의 아름다운 아리아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변주곡은 소나타보다 형식적으로 자유롭고 유머가 가미된 작품들이지만, 그 안에서도 베토벤의 창의성과 감성이 빛을 발한다.
요요 마와 엠마누엘 엑스의 연주는 들을수록 참 자연스럽다. 악기는 통로에 불과하다. 두 사람은 서로의 생각을 펼치며 대화를 나눈다. 또한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베토벤의 음악 언어를 정교하게 읽어낸다. 2시간 30분이라는 긴 러닝타임을 가진 음반이지만, 베토벤의 음악 세계를 따라가기에 이보다 더 좋은 여정은 없을 것이다. 그가 남긴 음악적 발전과 두 거장의 해석이 담긴 '베토벤의 첼로 다이어리'를 함께 펼쳐보자.
Essential Track | 마지막 트랙(12 Variations On "Ein Mädchen Oder Weibchen")
베토벤이 모차르트에게 보내는 헌사처럼 느껴진다. 밝고 아름다운 아리아를 바탕으로 펼쳐진 12개의 변주곡에서는 모차르트의 선율이 지닌 황홀함과 베토벤의 음악적 역량이 조화를 이룬다. 특히 5분 58초쯤 시작되는 단조 변주는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여기에서 첼로와 피아노의 깊이 있는 음색이 가슴 깊숙이 스며들며 강한 울림을 준다. 덕분에 이어지는 장조 변주는 더욱 밝고 따스한 햇살처럼 느껴진다. 베토벤, 모차르트, 요요 마, 그리고 엠마누엘 엑스. 네 사람이 함께 나누는 유쾌한 대화를 엿듣는 듯하다.
https://youtu.be/cAK5YryU0QE?si=jfvWuSAQhFndkr56
글 안일구, 사진 김신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