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레 4중주단 <포레 콰르텟>
“나는 아무것도 ‘이야기’하려 하지 않는다. 다만, 느끼게 하고 싶을 뿐이다.”
-가브리엘 포레
포레 콰르텟(Fauré Quartett)은 프랑스 작곡가 가브리엘 포레의 이름에서 따온 독일 출신의 피아노 4중주단이다. 이들과는 개인적으로도 인상 깊은 기억이 있다. 독일의 한 청소년 오케스트라 투어에 참여했을 당시, 협연자가 바로 포레 콰르텟이었다. 네 명의 연주자는 투어 기간 내내 어린 학생들과 허물 없이 어울리며 따뜻한 인간미를 보여주었고, 무대 위에서는 놀라운 집중력과 강력한 에너지로 압도적인 연주를 펼쳤다. 특히 네 악기가 만들어내는 밀도 높은 소리와 연주자들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생생한 에너지는, 지금도 내 귀와 가슴 어딘가에 남아 있다.
포레 콰르텟은 1995년 카를스루에 음악대학에서 창단된 이후, 피아노 4중주라는 편성에 전념해온 보기 드문 앙상블이다. 단발성 프로젝트로 끝나기 쉬운 이 구성에서, 이들은 연주와 교육, 기획까지 아우르며 이 장르의 가능성과 위상을 국제적으로 넓혀왔다. 2005년 도이체 그라모폰과의 계약 이후, 모차르트, 브람스, 멘델스존에서 슈트라우스, 탄스만, 호소카와까지, 시대와 장르를 가로지르는 그들의 레퍼토리는 실로 굉장하다. 그야말로 ‘피아노 4중주의 연구소’라 해도 과장이 아니다.
한동안 포레 콰르텟이 연주하는 음악을 들어왔지만, 막상 포레가 연주하는 포레는 듣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발견한 것이 이 음반이다. 2020년, Berlin Classics에서 발매된 이들의 음반에는 오직 포레의 작품들로만 채워졌다. 피아노 4중주 1번과 2번, 그리고 가곡 다섯 곡이 수록된 이 음반은 창단 25주년을 맞이한 포레 콰르텟이 자신의 정체성을 다시 들여다보며 선보인 음악적 헌사와 같다. 익숙하면서도 신선하고, 우아하면서도 강렬한 그들의 포레는 '이름값’을 넘어서는 설득력을 지니고 있었다.
가브리엘 포레(Gabriel Fauré, 1845–1924)는 낭만주의 말기에서 근대 프랑스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활약한 작곡가다. 격정이나 극단적 표현보다는 내면의 절제, 세련된 감성, 섬세한 균형감을 중심으로 한 그의 음악은 프랑스 낭만주의의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근대 프랑스 음악으로 이어지는 다리 역할을 해냈다. 또한 그는 모리스 라벨, 나디아 불랑제, 조르주 오리크 등 수많은 음악가를 길러낸 교육자로서도 유명하다. 파리 고등음악원(Conservatoire de Paris)의 교수로 시작해, 1905년부터 1920년까지는 원장으로 재직하며 프랑스의 음악 교육과 제도 개혁을 이끌었다.
후기작인 제2번 피아노 4중주가 음반의 첫머리를 장식한다. 첫 순간부터 음악은 깊고, 연주는 단단하다. 감정을 쉽게 말로 꺼내기보다는 조용히 안으로 응축한 채 머무는 인상이다. 그 덕분에 음악에 대한 집중도는 오히려 더 높아진다. 선율이 손에 잡히지는 않지만, 점점 몰입하게 되는 첫 악장이다. 이어지는 2악장에서는 날렵한 피아노 리듬 위에 현악기들이 민첩하게 반응하며 긴장감 있는 흐름을 만들어낸다. 활기차지만 결코 가볍지 않고, 묘하게 날이 서 있는 분위기다. 3악장에서는 음악이 다시 느려지며, 따뜻하고 애틋한 정서로 깊은 내면을 건드린다. 감정은 이 대목에서 더욱 선명해지고, 그 여운은 마지막 4악장에서 정점을 찍는다. 계속 움직이는 리듬 속에서도 감정은 여전히 압축되어 있으며, 이는 표현보다는 ‘인내’를 떠올리게 한다. 여러 번 더 들어야 이 곡과 완전히 친해질 수 있을 것 같다.
편곡된 소품들은 이 음반에 숨겨진 선물이다. ‘우리의 사랑 (Notre Amour)’, ‘요람들 (Les Berceaux)’, ‘꿈꾸고 난 뒤 (Après un rêve)’, ‘달빛 (Clair de lune)’, ‘만돌린 (Mandoline)’. 모두 가브리엘 포레의 대표적인 가곡들이지만, 이 곡들을 노래하는 건 성악가가 아니라 포레 콰르텟이다. 피아노 4중주 편성으로 편곡된 이 작품들은 가사 없이도 멜로디 자체에 담긴 감정을 고스란히 전달한다. 익숙한 선율이지만, 새로운 악기 조합과 해석을 통해 곡은 전혀 다른 얼굴로 다가온다.
1번 4중주는 음반의 마지막에 자리해, 마치 모든 감정의 흔적을 조용히 정리하는 듯한 인상을 남긴다. 감정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이제는 그것을 덮거나 외면하지 않고 담담히 마주하는 태도가 느껴진다. 곡은 단정하게 흘러가고, 연주는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지만, 그 안의 감정은 오히려 더 선명하고 깊게 다가온다. 기교를 앞세우거나 과장하지 않고, 음악 속에 머물러 있는 것을 천천히 드러내는 연주다. 마치 곁에 조용히 서 있는 음악처럼, 조심스럽고 따뜻하다.
결국 이 음반은 시간의 흐름이 아니라 감정의 흐름을 따라간다. 처음에는 깊고 무거운 감정에서 시작해, 중간에는 익숙한 노래를 새롭게 바라보는 과정을 거치고, 마지막에는 가장 조용하고 맑은 상태에 도달한다. 이 흐름을 따라가다 보니, 듣는 동안 여러 감정을 지나쳤지만 끝에는 이상하게도 마음이 가라앉고 또렷해졌다. 다 듣고 나서는 굳이 말로 표현하고 싶지 않은 기분이 남는다. “나는 아무것도 ‘이야기’하려 하지 않는다. 다만, 느끼게 하고 싶을 뿐이다.” 포레가 남긴 이 말을 다시 떠올려 보게 된다. 포레 콰르텟은 그 마음을 누구보다 정확히 꿰뚫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저, 가만히 오래도록 머무는 음악이었다.
Essentioal Track | 3번 트랙 (Piano Quartet No. 2, Op. 45: III. Adagio non troppo)
이 음반에는 ‘달빛’이라는 가곡이 실려 있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오히려 2번 4중주의 3악장에서 더 강하게 달빛을 떠올렸다. 이 악장은 미묘한 조도를 지녔다. 느리고 부드러운 선율, 약간 안개 낀 듯 흐릿한 흐름이 은은한 밤의 풍경처럼 다가온다. 여기에 살짝 붕 떠 있는 화성 진행이 더해지면서, 마치 구름 낀 하늘 사이로 간간이 모습을 드러내는 달의 이미지가 보인다.
https://youtu.be/OsZpjGGyupk?si=1XS2ZV6lgwNCcJBJ
글 안일구, 사진 김신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