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난 사람과 남은 사람

코른골트 <죽음의 도시>

by 안일구
Oehmsclassics, 2011

"내게 남은 행복이여,

안녕, 나의 변치 않는 사랑.

삶은 죽음으로부터 우리를 갈라놓고,

잔인한 힘의 명령이 지배하네.

밝은 저 하늘에서 나를 기다려 주오,

이곳엔 부활이 없으니까."

(오페라 <죽음의 도시> 마지막 장면 파울의 독백)


죽은 연인에게 보내는 마지막 인사. 코른골트의 오페라 <죽음의 도시>는 이 노래로 막을 내린다. 삶과 죽음, 현실과 환상이 교차하는 이 이야기에서, 파울이라는 남자의 집착과 이별, 내면의 혼란이 마침내 정리된다. 이 오페라는 끝없는 슬픔보다는, 누군가를 보내주는 순간의 마음을 담고 있다. 그래서 이 마지막 노래는 조용하지만 깊은 울림을 남긴다.


한 남자가 아내를 잃었다. 주인공 파울은 일찍 세상을 떠난 아내 마리를 잊지 못한 채, 그녀의 유품과 머리카락을 모아 방 안에 ‘죽은 여인의 성소’를 꾸며놓고 살아간다. 그의 삶은 멈춰 있고, 시간은 과거에 머물러 있다. 그러던 어느 날, 거리에서 우연히 마리와 닮은 여인 마리에타를 만난다. 외모는 닮았지만, 성격은 정반대인 그녀는 생기 넘치고 자유롭다. 마리에타는 파울의 기억을 자극하면서도 새로운 감정을 일으킨다. 파울은 그녀를 집으로 초대하고, 두 사람은 곧 현실과 환상이 얽힌 위험한 관계에 빠진다. 점차 마리에타는 죽은 마리의 모습과 뒤섞이고, 파울의 정신은 무너져 간다. 집착은 극단으로 치닫고, 그는 마리에타를 목 졸라 죽이는 환각에 빠진다. 그러나 그것은 꿈이었다. 그제야 파울은 깨닫는다. 자신은 여전히 살아 있으며, 이제는 살아야 한다는 것을.

파울은 죄책감과 슬픔을 뒤로하고, 자신을 가둬온 도시 브뤼주를 떠나기로 결심한다. 죽은 이를 떠나보내는 것, 그것이 진정한 애도이자 살아 있는 자의 몫임을 그는 마침내 받아들인다.


<죽음의 도시>는 처음엔 사랑 이야기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실상은 상실과 집착, 기억과 망각 사이에서 벌어지는 한 남자의 내면을 따라가는 오페라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중심은 외적인 사건이 아니라 파울의 정신적 균열로 옮겨간다. 그는 고통스러운 기억을 현실에 붙잡아 두려 하며, 그 안에서 스스로를 무너뜨린다. 이런 복잡한 감정을 표현하는 데 있어, 클래식 음악, 특히 후기 낭만주의 음악의 강점이 빛을 발한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를 떠올리게 하는 다채로운 화성과 풍부한 오케스트레이션은 파울의 뒤얽힌 내면을 투명하게 그려낸다.



작곡가 에리히 볼프강 코른골트(1897–1957)는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음악 천재’로 이름을 떨쳤다. 그의 재능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조차 감탄했을 만큼 당대에 인정받았고, 10대 시절부터 오페라 작곡가로 활동했다. 그러나 유대계였던 그는 나치 정권의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이주했고, 이후 할리우드 영화 음악의 선구자로 명성을 이어갔다. 그가 23세의 젊은 나이에 작곡한 <죽음의 도시>(1920)는 그가 유럽에서 남긴 가장 인상적인 유산이다. 초연 당시 유럽 여러 도시에서 동시에 공연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고, 오늘날까지도 20세기 오페라의 수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최근에는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으며 무대에 오르는 빈도가 점점 늘고 있다.


2011년 프랑크푸르트 오페라와 무제움 오케스트라의 실황 녹음은, 코른골트의 오페라 <죽음의 도시>를 심리극적인 관점에서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인상적인 무대다. 지휘자 제바스티안 바이글레는 긴장감을 잃지 않으면서도 인물들의 감정 변화를 섬세하게 포착해낸다. 주인공 파울이나 마리의 내면이 요동칠 때, 오케스트라가 먼저 그 감정의 결을 보여주는 순간들이 특히 돋보인다. 이런 장면들이 반복되면서, 코른골트가 지닌 작곡가로서의 천재성도 떠올리게 만든다. 오케스트라는 코른골트 특유의 화려한 음색을 세밀하게 구현하며, 장면마다 인물의 심리와 공간의 분위기에 깊이를 더한다. 특히 브뤼주의 회색빛 도시 풍경과 파울의 내면적 고립을 표현하는 장면에서는, 음향 자체가 강한 심리적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성악가들의 뛰어난 연기와 표현력도 일품이다. 파울 역의 클라우스 플로리안 포크트는 바그너 작품에서 두각을 나타내온 세계적인 독일 테너로, 맑고 투명한 음색을 통해 광기보다는 상실에서 비롯된 슬픔을 섬세하게 전달한다. 그 불안정한 감정선이 오히려 캐릭터에 진정성을 더한다. 카밀라 닐룬드가 연기한 마리에타는 단순히 죽은 아내의 그림자가 아니라, 하나의 독립된 인물로 설득력 있게 그려진다. 후반부에서 마리의 유령으로 등장할 때는 목소리의 성격을 완전히 바꾸어, 인물 간의 경계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그녀의 설득력있는 연기와 목소리는 극 전체에 지속적인 긴장감과 에너지를 불어넣는다. 두 성악가는 현실과 환상이 뒤섞인 혼란 속에서도 각 장면의 감정에 정확히 집중하며, 인물의 내면을 생생하게 전달해낸다.


이 녹음의 가장 큰 미덕은, 음악을 통해 이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날카롭게 드러낸다는 점이다. 오케스트라와 성악이 하나 되어, 중요한 질문들을 던진다. 파울이 마지막에 “떠나겠다”라고 말할 때, 그것은 단지 도시를 떠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과거로부터, 집착으로부터, 죽은 자에게서 벗어나지 못했던 자신으로부터 떠나 결정이다. 그리고 그 순간, 우리는 오페라가 끝났음에도 여전히 마음속 어딘가에서 그 노래가 울리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결국 이 오페라는, 죽음을 마주한 한 사람이 다시 삶을 선택하는 이야기다. 2011년 프랑크푸르트 실황은 이 여정을 깊이 있고도 날카롭게 그려낸다. 파울의 목소리와 함께 울려 퍼지는 코른골트의 음악은, 우리가 아직 겪어보지 못했을지도 모를 감정을 조용히 건드린다. 그러면서 이렇게 묻는 듯하다. “당신은 지금, 무엇을 놓지 못하고 있는가?” 이 오페라는 슬픔과 상실을 이야기하지만,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그 너머, 다시 살아가는 일에까지 다가간다. 코른골트는 말한다. 슬픔은 아름다운 음악이 될 수 있고, 그 음악은 우리를 다시 살아가게 만들 수 있다고.


Essential Track | 24번 마지막 트랙 (Act III Scene 3: Die Tote, wo, lag sie nicht hier ......)

트랙 초반, 찢어질 듯한 감정이 담긴 관현악이 인상적이다. 처음 언급한 가사에 해당하는 파울의 독백은 8분 20초쯤 시작된다. 파울은 여기에서 죽은 아내를 마음속에서 끝내 놓아준다. 이 장면에서 파울의 목소리와 오케스트라가 놀라울 만큼 완벽하게 감정을 일치시킨다. 만약 이 장면을 현장에서 들을 수 있었다면, 평생 기억에 남을 공연이 되었을 것이다. 다행히, 이 순간은 음반으로 남아 있다.

https://youtu.be/hbjaWmd2Mhs?si=skjpV_AnHXTCrcuf

글 안일구, 사진 김신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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