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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인칭 시점 Oct 20. 2018

소년은 끝내 타자가 된다

영화 <소년 파르티잔>을 보고

황량한 도시를 비집고 들어가면 왕국이 나타난다. 차디찬 어둠을 뚫고 재잘거리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여자들은 한껏 미소를 띤 채 안락한 일상을 영위한다. 그리고 유일한 성인 남성인 그레고리가 등장한다. 그는 이 세계의 지도자다. 모두가 그의 지시와 규칙에 복종한다. 그는 아이들에게 끊임없이 행복과 순수의 가치를 전한다. 하지만 동심에게 쥐어지는 것은 오로지 총이다. 누군가의 생명을 앗아내고야 마는 살육의 쇳덩이 앞에서 그는 역설적으로 왕국의 행복을 강조한다.



그레고리는 영민한 인물이다. 약자에겐 연민의 시선을 감추지 않고 규칙을 잘 이행하는 구성원에게는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심지어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존재하며 친근한 감정마저 불러낸다. 간헐적으로 등장하는 일장연설도 세계를 관통하는 매개로 활용된다. 도덕적인 텍스트를 통해 의도된 방향으로 안내하는 그의 설득력은 구성원 모두를 매료시키기에 충분하다. 이처럼 영화는 화술의 미학을 통해 보전되는 세계를 조명한다. 그렇게 밝은 미래만이 있으리라고 자신하는 유토피아의 질서에 저항하는 이는 없었다. 


적어도 세상과 왕국의 틈을 찾아낸 한 소년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12살의 알렉산더 역시 이 세계의 철학과 생리를 체화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조각했다. 하지만 그의 남다른 주체성은 종종 그레고리의 왕국이 지닌 질서를 이탈한다. 멀쩡한 계단과 사다리 대신 배수관을 타고 다니거나 징벌의 순간에도 영악한 반발심을 내비치는 행동이 대표적이다. 그럼에도 알렉산더는 언제나 반성의 단계로 돌아온다. 그리고 다시 왕국의 우수한 일원으로 돌아간다. 이처럼 적재된 관성에 이끌릴 수밖에 없는 동심은 나날이 본연의 순수함을 지워가며 왕국의 근간으로 자리한다.


늘 평탄했던 세계는 외부인이 개입되면서 뒤틀리게 된다. 리오는 언제나 질문을 하고 반론을 제기하는 소년이다. 그에게 그레고리의 발화가 지니는 힘은 중요하지 않다. 자신이 생각하기에 이치에 맞지 않는다면 수용하지 않을 뿐이다. 닭의 생명을 두고 그레고리와 대치하는 장면이 바로 그렇다. 그레고리는 닭은 인간의 식량이 될 운명이라 말한다. 리오는 그레고리의 발화에서 교만한 인간성을 발견한다. 인간의 역사가 새겨온 섭리가 순수한 보호본능에 맞부딪히는 순간이다. 이후 그레고리는 자신의 절대성에 가해지는 미세한 진동을 감지하게 된다. 이를 바라보는 알렉산더도 일상적인 통념에 의문을 품기 시작하며 절대적으로 여겼던 세계의 미세한 틈을 찾고자 노력한다.



영화는 끊임없이 순수와 퇴폐를 왕국 안에 공존시킨다. 그리고는 인지부조화를 목도하게 만든다. 그가 보여주는 신념은 함정으로 가득한 세상으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그들을 함정으로 떠미는 잔혹함을 수반한다. 모든 위험을 감수하고 일을 해낸 이들에게는 어른들의 산물이 포상처럼 주어진다. 녹슨 동전을 품고 어른들의 농익은 사랑이 담긴 노래를 부르는 동심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옆에서 누군가의 엄마일 여자들의 나신을 탐닉하며 정욕을 불태우는 그레고리의 모습은 어떠한가. 이토록 이질적인 장면들은 그레고리의 세계가 천명한 이상성에 균열을 조각한다.



알렉산더는 더 이상 의심을 거두지 않기로 한다. 그는 이상적인 삶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누군가를 죽이고 흘러나오는 핏물에 비친 자신을 관조하며 소년은 웃을 수가 없었다. 잔인한 총성을 막아주는 귀마개에 위안을 삼을 수밖에 없는 현실은 알렉산더에게 본질적인 의문과 저항의식을 심어줬다. 그리고 새로이 세상에 태어난 동생을 마주한 그의 눈빛은 사뭇 비장하게 다가온다. 거짓과 기만으로 점철된 그레고리의 세계에 또 다른 미래의 상처를 잉태하게 할 수 없다는 사명감이 어린 소년의 가슴에서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렇게 12살의 파르티잔은 자신이 살아가는 세상을 향해 총구를 겨눌 채비를 마쳤다.


<소년 파르티잔>은 모순된 어른의 욕망이 창조한 세계가 흔들리는 과정을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동시에 동심의 정의가 그 세계의 균열을 메우는 모습을 덧붙이고 있다. 안전한 행복을 빌미로 철저하게 사로잡힌 자아를 해방시키고 싶은 한 소년의 열망은 다음 대사를 통해 명징하게 전달된다. 


내일도 내 마음대로 살고 싶어요. 



먼 옛날 풀 수 없을 줄만 알았던 고르디아스의 매듭을 단칼에 베어버린 알렉산더의 발칙한 용기가 수천 년 후를 살아가는 동명의 소년의 그것과도 같았을까. 이제 굳건했던 세계가 요동치기 시작한다. 그리고 알렉산더의 어린 동생의 귀에는 귀마개가 끼워져 있다. 


과연 모순의 총성을 모르는 새로운 세상은 올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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