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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인칭 시점 Oct 21. 2018

아픔은 잔잔하게 일렁인다

영화 <맨체스터 바이 더 씨>를 보고

고요히 점화된 슬픔은 세월의 농에 짓눌려 한없이 침전한다. 숱한 시간을 스쳐지나온 살갗에 아로새겨진 슬픔은 지워지지 않는다. 그저 슬픔에 무던해지길 바랄 따름이다. 어쩌면 지울 수 없는 고통을 인내하는 것도 인생이다. 적어도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렇게 <맨체스터 바이 더 씨>는 버텨보는 삶을 이야기한다. 주인공인 리가 선택한 삶이기도 하다. 어떻게든 흘러가는 시간 위에 자신을 올려놓고자 하는 그의 모습은 침묵과 냉소로 점철되어 있다. 감내할 수 없는 과거의 상흔이 여전히 그를 흔들고 있기 때문일까. 


이처럼 영화는 지독한 삶의 농간에 지쳐 궤열하는 한 사람의 무미한 심상을 조명한다.


제목은 곧 도시 이름이다. 매사추세츠 근교에 있는 도시를 배경으로 영화는 소박하고 잔잔한 분위기로 다가온다. 그리고 우리는 잔잔한 파도 위에서 등장하는 챈들러 가족을 바라본다. 이 영화는 그들의 이야기이다. 형 조는 부지불식간에 죽음을 맞이한다. 동생 리는 형이 남긴 유언에 따라 조의 아들인 패트릭의 후견인이 될 상황에 놓인다. 그는 고향에서 겪었던 비극과 현재 자신이 충돌하는 과정에서 삶을 회고하고 계획한다. 설상가상으로 패트릭과 갈등을 빚고 전처인 랜디와 재회하는 일마저 일어난다. 이내 리는 혼란에 빠진다. 


그가 마주하는 일상은 도무지 예측할 수 없다.



영화는 끊임없이 과거와 현재를 오간다. 플롯은 과거의 아픔과 현재의 감각을 다층구조로 겹겹이 쌓아올리며 여지없이 흔들리는 리의 불안감을 가중시킨다. 모든 문제의 근원은 맨체스터에 있다. 유언장에 적힌 내용 중 맨체스터에 머무르며 패트릭을 돌봐야 한다는 대목에서 리는 지난 세월을 회상한다. 바로 여기서부터 심중에 가려져 있던 과거가 모습을 드러낸다. 화목했던 맨체스터에서 삶이 악몽으로 변모하는 회중의 기억은 선명하고도 섬세한 반추처럼 느껴진다. 기억이 선명하다는 건 대개 두 가지 중 하나이다. 너무 충격적이기에 세월에 녹슬지 않고 건재하거나 도저히 견딜 수 없어서 견딜 수 있는 기억으로 재편된 것이다. 사실 모든 경우가 리에게 해당될 수 있다. 어느 방면을 택하더라도 맨체스터에서 쌓은 과거는 그에게 무거운 짐이다. 


회상이 거듭될수록 그의 현재엔 매서운 추위만이 가득할 뿐이다.



<맨체스터 바이 더 씨>는 특유한 냉랭함을 풍긴다. 단지 겨울이라는 계절적 배경 때문만은 아니다. 상실감으로 얼룩진 인물들을 집약하며 침체된 감정을 적막하게 담아냈기에 가능한 느낌이다. 정황을 더듬어가는 대화 역시 장황하지 않다. 언제나 긴 침묵을 사이에 두는 인물들의 기류가 차갑게 느껴지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날이 선 감정은 보이지 않는다. 상처받은 자들은 어찌할 줄 모를 뿐이다. 위로와 이해를 건네고자 시간을 두고 마음을 먹어야 한다. 


리와 패트릭 사이가 유달리 그렇다. 패트릭은 어린 시절 삼촌과 배 위에서 낚시를 하며 즐거운 추억을 쌓았다. 따라서 지금 그에게 리는 믿을 수 있는 유일한 버팀목이다. 서로가 삶을 기댈 수 있는 존재가 되었을 때 냉랭한 겨울 속 작은 초록빛 풀잎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렇게 추억이 만들어준 연대감은 차디찬 공기 속에서도 굳건하게 따스하다.


리와 패트릭은 맨체스터에서 무언가를 잃은 사람들이다. 하지만 두 사람이 같은 공간을 대하는 방식은 다르다. 리는 잃었기 때문에 떠나고자 한다. 하지만 패트릭은 잃었음에도 남아있기를 원한다. 이유는 자명하다. 리는 맨체스터가 괴롭고 패트릭은 맨체스터에서 삶의 원동력을 찾기 때문이다. 리에게 맨체스터의 공기는 괴로운 기억 속 서늘한 공기와 다르지 않다. 이따금씩 떠오르는 악몽의 단편들이 조각조각 모여 에워싼 현재는 허망하다. 반면 패트릭은 소소한 즐거움을 맨체스터에서 찾는다. 모진 추위를 이겨낼 수 있는 따뜻한 추억은 오로지 여기에만 존재하니 말이다. 결국 맨체스터는 각자의 의식 속에서 다르게 재편된다. 그리고 색다른 모습들로 스크린에 펼쳐진다. <맨체스터 바이 더 씨>의 입체감과 두터운 질감을 여실히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맨체스터의 바닷가엔 언제나 잔잔한 파도가 일렁인다. 그 바다 위를 부유하는 인물들 역시 잔잔한 감정의 궤를 향유한다. 행복과 불행 사이는 단 몇 초 사이의 장면 전환을 통해 좁혀진다. 그 가운데서 인물들은 조용히 슬픔을 내재한다. 언제나 순간을 괴로워하지만 이후 담담한 일상을 이어나간다. 이런 모습에서 비장함마저 느껴진다면 과한 표현일까. 영화는 견딜 수 있는 힘이란 이토록 위대하다는 것을 말한다. 끊이지 않는 고통 속에서 우리는 생각한다. 잔인한 우연으로 가득한 삶에 대해서 말이다. 그럼에도 살아가노라 말하는 이들은 적막한 삶의 터전 속에서 더욱 빛이 난다. 그들은 다시 배에 오른다. 이윽고 낚싯대를 집어들었다. 그저 오늘을 살기 위하여.


그렇게 다시 맨체스터의 계절이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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