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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인칭 시점 Nov 25. 2018

개혁이라는 그림자

J노믹스에 적신호가 켜졌다. 체감 청년실업률은 25%를 돌파했다. 청년세대는 암울한 구직난에 직면했다. 가계부채는 줄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소비시장도 위축됐다. 정체된 내수경제로 인해 소득 양극화는 심화됐다. 서민경제 활성화는 여전히 요원하다.


구조적 관점에서 바라보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기업들은 설비투자가 줄어 산업 동력을 마련하기 어렵다. 필연적으로 고용 축소라는 결과가 따라왔다. 수출도 반도체 등 특정 분야에 국한돼 수익을 창출하는 형국이다. 미·중 무역전쟁으로 인해 경상수지도 악화됐다. 설상가상으로 중국은 반도체 굴기를 가열차게 진행 중이다. 그야말로 사면초가다.


경제 개혁을 천명했던 문재인 정부는 곤혹스러울 따름이다. 지지율은 54%로 떨어졌다. 곳곳에서 먹고 사는 일상에 대한 볼멘소리가 성화를 이루고 있다. 중장기적 차원에서 정책 효과를 기대할 필요가 있다는 청와대의 입장은 충분한 위로가 되지 못했다. 소상공인들은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해 살기 어렵다며 광화문 거리로 나왔다. 경제 취약계층은 주52시간 근무제로 인해 고용 불안정성이 커졌다고 호소한다. 서민을 위한 정부를 자처했던 문재인 정부는 이 거대하고도 신랄한 모순을 마주하고야 말았다.


J노믹스는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이라는 개념으로 귀결된다. 취지는 간명하다. 우선 실질임금을 올려 내수시장 내 소비를 증대시킨다. 이후 이를 바탕으로 활성화된 산업 전반에 외자유치 및 투자를 유도해 경제 성장을 꾀하겠다는 전략이다. 수출주도형 성장에서 벗어나 자주 성장을 위한 기반을 다지겠다는 의지다. 하지만 국내 경제가 처한 현실을 고려할수록 첩첩산중이다. 여기저기 산재한 의문을 해소하지 않고서는 성공적인 정책을 기대하기 어렵다.


우선 소득 증가가 지니는 파급 효과가 실질적인지 살필 필요가 있다. 일단 근로자에게 지급되는 임금은 올랐다. 그러나 임금을 분배하는 고용주가 지닌 자본 규모는 정체됐다. 결국 고용주 입장에서는 자체적으로 자금을 마련해 임금 부담을 경감시켜야 한다. 아니면 불가피하게 고용 축소라는 칼을 꺼내들 수밖에 없다. 임금 수요는 증가했고 전체 파이는 그대로다. 선후관계 설정을 잘못하면 막심한 역효과를 감내해야 하는 실정이다.


소비시장 활성화 여부에 대해서도 따져봐야 한다. 소비가 활발해지려면 가계경제와 물가가 안정되어야 한다. 하지만 가계부채의 가파른 상승세는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더불어 부동산 시장 내 가격도 상승 흐름에 동참하는 추세다. 당연히 가계소득 내 저축 비중도 커졌다. 이에 따라 소비는 감소하고 재화 공급 및 생산 역시 줄어들게 된다. 마냥 장밋빛 미래를 전망할 수 없는 이유다. 다양한 경제 요소들이 형성하는 복합적인 관계를 면밀하게 살펴야만 한다.


혁신성장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 7월 스튜어드십 코드가 국민연금 운영에 도입됐다. 공공기관이 주주로 자리매김하며 경영 과정에 효율적으로 개입한다는 취지에서다. 문제는 창조적인 도전에 대한 보장 여부다. 전문가들은 기업이 자율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야 전문성을 기반으로 한 지속적인 성장을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필요 이상으로 커지는 현상은 경쟁을 통한 건강한 성장을 지향한다고 볼 수 없다는 의견도 이런 맥락에 기인한다.


그럼에도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통해 무분별한 대주주들을 견제할 수 있다는 입장 역시 존재한다. 정책이 시행된 이상 정부는 효율적인 견제 시스템을 마련하고 조율해 당위성을 찾아야 한다. 혁신은 분명한 방향 설정과 시장 내 적절한 자율성이 담보되어야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혁신성장을 위한 산업 인프라 구축 여부도 살펴야 한다. 수출주도형 성장은 특정 분야에 국한되는 경향이 강하다. 과거 한국은 이런 전략을 통해 반도체, 조선, 철강 등에서 선전을 거뒀다. 그러나 지금은 무서운 성장세를 보이는 중국이 공격적인 시장 확대를 감행하고 있다. 이내 충격적인 결과가 이어졌다. 조선과 철강 등 중공업 부문에서 중국이 당당히 1위에 올라섰다. 반면 한국은 반도체 이외에 확실한 흑자 구조를 형성하지 못했다. 전통적인 장점에만 골몰한 결과다.


정작 산업 인프라에는 혁신이 없다. 취약한 산업군은 연구개발이 미진하다. 창조적인 신진 기업을 위한 제도도 부실하다. 혁신은 고사하고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판국이다. 창업시장도 과포화 상태에 빠졌다. 변화는 미미한데 무모한 도전들만 늘어가고 있다. 정부가 기존 산업 인프라부터 재구성해야만 하는 이유다. 더불어 산업 내 실패에 대비한 사회적 안전망도 구축해야 한다. 선결과제는 분명 따로 있다.


공공부문 일자리 81만 개 창출도 석연치 않다. 공공부문 일자리 형태를 보면 행정사무직 비율이 상당히 높다. 행정사무직은 이익 창출보다는 시중에 산재한 재화를 분배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취업난 해소라는 목적 이외에 혁신을 위한 여지는 선명하지 않다. 설령 목적을 달성하더라도 다른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바로 막대한 공공기관 부채다. 이 상황에서 무리하게 고용정책을 펼친다면 향후 행정 과부하를 야기할 공산이 상당하다. 무른 토양 위에 주춧돌을 놓는 격이다.


혁신을 위해서는 원활한 행정 운영을 가로막는 부채난을 해결해야 한다. 물론 방법은 있다. 국가 경제를 뒷받침하고 있는 대기업으로부터 원활하게 세금을 거둬들여야 한다. 이를 위해선 정부가 민간경제를 전폭적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다. 가는 것이 있어야 오는 것이 있는 법이니 말이다. 결국 공공부문 일자리 증편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투자 대비 고효율 성장에서 활로를 모색해야 한다.


결국 이 모든 문제들은 사람이 핵심이라는 결론에 다다른다. 따라서 산업 인력에 대한 다양한 투자가 필요하다. 새로운 산업 원동력을 위한 교육 및 제도 지원처럼 말이다. 이를 통해 노동 수준이 높아지면 기업들도 고용 확대 기회를 적극적으로 모색할 수 있다. 산업 인력이 확충되면 기술개발에 박차를 가할 수도 있다. 이렇듯 안정적인 성장은 근본적인 개혁에서 비롯된다. 경제 체질을 바꾸고 싶다면 과감하고 냉철한 정책 수정을 고려해야 한다. 정부가 발휘할 균형 감각이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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