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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인칭 시점 Feb 25. 2019

공유와 보완이라는 이름으로

카풀 사태를 바라보며

바야흐로 공유경제 시대다. 소비자들끼리 물건을 나눠쓰며 재화의 효용가치를 높이는 것이다. 언뜻 보면 경제적이나 간과한 점이 있다. 바로 시장경제라는 거대한 물결이다. 자본은 극단적으로 분배되어 있고 빈부 격차 해소를 위한 선순환 구조는 뚜렷하지 않다. 4차 산업혁명에 힘입어 공유경제가 도래했다지만 정작 공유할 수 있는 재화는 한정적이다. 심지어 대규모 자본은 막대한 재정와 새로운 기술을 통해 기존 경제 구성원들을 흡수한다. 실물 재화를 생산하지 않고도 소비자 간 서비스를 매개하며 기존 시장경제가 지닌 틀을 바꿔버린 것이다. 그들은 스스로를 현재 경제가 지닌 맹점을 보완하기 위한 존재라 소개한다. 경쟁자본이 아닌 보완재로 등장하며 기업 본연의 영리적 색채를 옅게 지운 것이다.


카카오택시가 대표적이다. 출범 3년 만에 가입자는 2000만 명을 돌파했고 현재 택시 기사들의 83%인 22만 명이 카카오택시 서비스를 활용한다. 금전적인 차원을 떠나 택시업계의 입지는 좁아졌다.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으면 이용객 확보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기 때문이다. 그사이 거대 자본은 서비스 제공에 대한 대가를 챙기며 건재함을 과시했다. 그러나 여전히 택시 기사들은 적은 수입을 마주하고 있다. 자유롭게 선택할 권리를 제한받은 대가치곤 결코 개선된 처우라 할 수 없다. 마냥 공유경제 도입을 촉구하는 것은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현실을 묵과한 채 혁신을 외치는 것이다. 이로 인해 오히려 기존 질서만 어지러워졌다.


최근 도마 위에 오른 카풀 사태를 바라보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새로운 플랫폼에 밀린 택시 기사들은 절벽으로 내몰렸다. 생계를 위한 벌이는 나날이 각박해졌고 재사회화를 위한 구조적 노력도 수반되지 않았다. 결국 죽음이라는 극단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몇몇은 국회 앞에서 생존을 외치며 분신(焚身)을 택했다. 남겨진 유서는 절망적이면서도 냉정했다. 슬픈 개인사가 남겨졌을 법한 자리에는 불법 카풀 영업 근절을 위한 대책 촉구와 열악한 근로 환경 개선에 대한 정책 추진에 대한 강경한 입장만이 남았다. 자연스레 변하는 시대에 발맞추지 못하는 제도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졌다. 하지만 카풀 시장은 시대적 흐름이라는 미명 아래 확장을 거듭하고 있다.


카풀 서비스를 둘러싼 공방의 본질은 간명하다. 바로 택시업계의 생존권을 침해하느냐에 대한 문제다. 카카오 모빌리티 측은 카풀 제도를 부족한 운송수단 공급을 보완하기 위한 방법이라 말한다. 하지만 보완이라는 말 뒤에는 무서운 경쟁 심리가 내재되어 있다. 어찌 됐든 재화를 시장에 내놓고 소비자들에게 비교라는 경쟁을 유도하기 때문이다. 물론 무엇을 고르는 것은 소비자의 권리이며 낮은 품질을 지닌 서비스는 도태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일견 타당하다. 모름지기 시장경제의 핵심은 질적 경쟁에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산업 구조와 자본력이라는 요소를 고려한다면 마냥 쉬운 문제가 아니다. 카카오는 대규모 자본 집단이다. 플랫폼 운영과 이용자에 대한 인센티브 제공 등을 충당할 수 있는 재정적 여력이 있다는 소리다. 2017년 카카오 모빌리티는 세계 3대 사모투자 운용사 중 하나인 텍사스퍼시픽그룹(TPG)으로부터 5000억 원 규모의 상장 전 투자유치를 받았다. 전문가들은 향후 카풀 시장이 정상 궤도에 오르면 성장 규모를 약 20조 원으로 추정하고 있다. 현재 8조 원 규모로 운영되는 택시업계를 월등히 뛰어넘는 수치다. 한 회사만 놓고 봐도 이런데 다른 업체마저 시장에 진입한다면 가중될 혼란은 너무나도 자명하다. 이런 가운데 택시업계 구조를 바라보면 더욱 암담하다. 택시 기사들은 사납금 제도, 근로기준 미준수 등 열악한 환경에 놓여 있고 회사는 문제를 해결할 여력을 찾지 못하는 실정이다. 거대 자본에 대항할 힘은커녕 밥그릇을 챙길 힘조차 없는 것이다.


제도적 보완도 역부족이다. 우선 관련 법안 기준이 너무 모호하다.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제81조 예외 규정에 명시된 출퇴근 시간은 정확히 언제인지 규정되어 있지 않다. 대법원도 출퇴근 시간은 사업주가 지정한 시간이라는 두루뭉술한 판결만을 내놓았다. 법적 해석의 오해가 생길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런 상태에선 카풀 측이 회사 및 업종별로 상이한 출퇴근 시간을 고려해 24시간 운행을 주장해도 문제가 없는 상황이다. 모호한 법안이 스스로 모순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렇게 봤을 때 보완으로 갈음되는 암묵적 경쟁을 운운하는 카풀업체 측에 택시업계가 반발하는 것은 결코 이상하지 않다.


문제의 본질을 짚어야 한다. 택시업계의 반발을 단순히 혁신성장을 가로막는 구시대적 절규로 치부해선 안 된다. 물론 시장경제의 자유경쟁은 보장받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누군가 막대한 피해를 입는 상황이 자명하다면 이를 최소한으로 보호할 수 있어야 한다. 정부가 바로 그 역할을 도맡아야 한다. 일단 사회적 대타협 기구를 통해 무분별한 경쟁을 제어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월급제 도입이나 차량 공유 서비스에 추가 부담금을 부과하여 택시업계에 대한 보상금을 마련하는 호주의 정책도 하나의 예가 될 수 있다. 그리고 곳곳에 산재한 택시업계의 문제점들을 종합해 해결책을 내놓아야 한다. 그래야 카풀 확장과 무관하게 자력으로 성장할 수 있는 동력을 마련할 수 있다. 선명한 문제를 간과한 채 장밋빛 미래를 논하는 것은 잘못이다. 선후 관계를 바로잡아야 비로소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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