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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인칭 시점 Oct 14. 2018

해방촌과 68혁명

자유로울 권리를 찾아서

해방촌에 들르면 자주 가는 카페가 있다. 몇 평 남짓한 공간이지만 아늑한 분위기가 좋다. 옹기종기 모인 탁자들에선 오랜 연식이 느껴진다. 고동빛 원목에 손바닥을 문대면 담백한 내음이 찻잔 위를 감돈다. 나른해질 때면 나는 홍차 한 모금을 음미하며 주변을 바라본다. 제각기 다양한 희로애락이 서로 등을 맞대고 전축에서 흘러나오는 재즈 선율 위를 부유하고 있다. 여기엔 어떤 가식이나 작위도 없다. 호탕한 웃음과 거친 말들이 자유로운 공기를 입은 채 제 나름의 격식을 차리고 있을 뿐이다. 물론, 발가벗은 채로 말이다. 나신의 영혼들은 스스로를 옭아맸던 하루로부터 격렬한 해방을 선언한다.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여기서 해방촌은 비로소 온전해진다.


이름답게, 혹은 아름답게.

우연히 카페 벽에 붙어 있는 포스터가 눈에 띄었다. 꽤나 전위적인 뉘앙스가 풍겼다. 자세히 보니 프랑스 68혁명과 누벨바그 운동에 관한 내용이었다. 포스터 정중앙에 흘러내리는 야생적인 장발과 자욱한 연기가 역사적인 반항을 대변했다. 이 웅장하고도 격렬한 대전환에 대한 짧은 지식을 풀어놓자면 이렇다. 50년 전, 젊은 프랑스는 구세대와 권위주의로부터 해방을 선언했다. 사회가 조장하는 일체성도 거부했다. 청년들은 거리 위에서 오로지 자유로운 개인만이 있기를 소망했다. 물질에 대한 탐닉에서 벗어나 형이상학적인 가치를 추구하며 모두의 꿈이 체현되는 세상을 바랐다. 정제된 기성사회에는 히피 문화가 범람했다. 마약과 섹스 등 파격적인 문화가 유행을 선도했다. 전대미문의 변혁이었다.


다시 강조하지만 무려 50년 전이었다. 오로지 해방을 위하여.


프랑스 영화계에도 저항의 물결이 일었다. 이른바 누벨바그 운동이 대두한 것이다. 영어로 'New wave', 즉 새로운 물결을 일으키며 젊은이들은 기성 영화계에 반기를 들었다. 영화광이라면 누구나 들어봤을 장 뤽 고다르, 프랑수아 트뤼포, 클로드 샤브롤 등이 당시 누벨바그의 대표 기수였다. 이들은 사회적 통념과 진부한 윤리의식을 깨고 오로지 작가주의에 기반한 파격을 시도했다. 인간의 부조리함에 대한 염세주의를 과감하게 드러냈으며 불편할 정도로 사실적인 촬영 기법을 선보였다. 주제는 어두웠고 어설픈 감상은 배제되었다. 이들은 종종 논리적인 전개도 파괴했다. 오로지 하나의 믿음에 기인한 선택이었다.


새로운 시대에 낡은 것을 위한 자리는 없다.


다시 포스터를 바라봤다.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담배를 꼬나문 프랑수아 트뤼포의 얼굴이 보였다. 커다란 그의 눈은 경직된 관습과 폐단으로 얼룩진 사회에 일갈하고 있었다. 마침 카페 안 프로젝터에선 그의 대표작인 <400번의 구타>가 상영되고 있었다. 영화는 일상에 녹아들지 못하는 외로운 소년 앙트완을 주목한다. 당돌하게 기성 질서에 반기를 들었지만 파리의 냉혹한 공기는 그에게 절망이라는 낙인을 새겼다. 그저 부모님에겐 골칫덩어리며 학교에선 문제아에 불과했으니 말이다.


황망하게 방랑하던 동심이 끝내 달려간 곳은 바다였다. 그토록 찾아 헤맸던 바다였지만 앙트완의 표정은 무겁기만 하다. 아니, 당혹스럽다는 말이 더 맞을 테다. 그가 원하던 바다가 아니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여전히 해방감을 느끼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회의감 때문일까. 끝내 프랑수아 트뤼포는 소년을 놓아주지 않았다. 제목처럼 구타의 그림자는 여전히 앙트완 주위를 맴돌았다. 그렇게 엔딩 크레딧이 올라갔다.


아늑했던 마음에 허망함이 깃들었다. 그리고 무력해졌다. 따뜻했던 찻잔도 어느새 식어버렸다.


갑자기 해방이라는 단어가 무겁게 다가왔다. 갑자기 해방촌의 유래가 떠올랐다. 광복 이후 월남민들이 모여 살아서 붙여진 이름이라니. 생각해보면 그 순간에도 해방은 우리 몫이 아니었다. 힘을 가진 타자가 선사한 광복이었고 우리는 별안간 자유로워졌다. 앙트완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끝내 스스로 찾고자 했던 자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가 자유로워졌는지 알 길은 없지만 왠지 그러지 못했을 것만 같았다. 구속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해 숱하게 피를 흘렸던 역사를 생각해보면 한낱 소년의 발버둥이 가당키나 했을까. 밀려오는 절망감을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나는 다시 지금에 눈을 돌리기로 했다.


사람들은 여전히 활기찼다. 자신을 괴롭히는 상사에 대한 욕지거리를 안주로 삼아 연신 맥주를 들이켜기도 하며 배신한 연인에 대한 분노로 인해 극단적인 일탈을 계획하는 이도 있었다. 여기저기서 사소한 감정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한 노력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고개를 돌려 자리를 파하고 문을 나서는 사람들의 표정을 바라봤다. 한결 가볍지만 쓴맛이 가시지 않은 웃음이 있었다. 과연 이들은 해방촌에서 충분한 해방감을 만끽했을까. 한번 물어보고 싶었다. 이윽고 새벽달이 떴다. 나는 50년 전 프랑스 청년들이 거리로 나와 외쳤던 구호를 곱씹었다.


도망쳐라 동지여. 낡은 세계가 너를 뒤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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