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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인칭 시점 Oct 15. 2018

첫 운전

외할머니댁으로 가는 길

나는 면허를 늦게 땄다. 여차저차 미루다 보니 23살이었다. 매주 연습장에 가서 운전대를 잡았다. 주행은 무난했지만 주차가 문제였다. 핸들을 이리저리 꺾다 보면 내가 얼마나 돌렸는지 까먹어 다시 풀기 일쑤였다. 도로 위에선 사방을 살피느라 정신이 없었다. 머리 속에는 온통 끔찍한 상상만 가득했다. 나는 대담해지려고 노력했다. 모든 조작이 익숙해질 때까지 연습을 거듭했다. 시행착오를 거듭한 끝에 나는 면허를 따냈다. 이상하리만큼 기분이 좋았다. 고작 2종 가지고 요란을 떤다는 친구들의 농담 섞인 비아냥도 달가웠다. 내 손으로 차를 몰고 도로 위를 달린다니.


유치하지만, 그제야 나는 어른이 된 것 같았다.


어머니는 땄으니 되었다고 하셨다. 하지만 아버지는 조금 다르셨다. "운전하지 않을 거면 뭐하러 땄어. 해봐야 느는 법이야. 아빠랑 같이 연습하자." 갓 운전에 재미를 붙인 나는 아버지의 운전 철학을 거들었다. 어디에 갖다 박아봐야 주의력과 감각이 는다는 당신의 과격한 조언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때부터 나는 거의 매일 아버지와 운전을 했다.


일단 우리는 동네부터 섭렵했다. 처음이라 그런지 브레이크와 액셀을 오가는 발놀림이 투박했다. 조수석에 앉은 아버지는 의외로 차분하셨다. 드라마나 시트콤에 나오는 상황과는 사뭇 달랐다. 사지가 경직된 연인이 실수를 연발할 때면 한숨과 볼멘소리가 차를 가득 메우는 해프닝은 없었다. 뭔가 미숙한 부분이 나타날 때면 아버지는 상황과 조언을 동시에 전달하셨다. 이를테면 이런 것들이다.



"자 봐봐. 네가 지금 우회전을 했잖아. 근데 너무 급하게 들어갔어. 항상 맞은편에서 오는 차량을 살피면서 들어가는 게 좋아. 그래야 속도도 조절하고 이후 네가 끼어들 차선도 고려할 수 있잖아."


"이 동네는 차선이 2개지만 양 옆에 주차해놓은 차량들 때문에 1개라고 생각하면 돼. 그리고 주변에 학교가 많아서 아이들이 차 사이에서 튀어나올 가능성이 높아. 항상 속도는 천천히 유지하되 발을 바로 브레이크에 갖다 댈 준비를 하고 있어."


"브레이크가 밀리면 앞에 있는 차량에 부딪힐 가능성이 높아. 신호등을 보고 앞 차량과 간격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해서 가까워지면 브레이크를 힘껏 밟아. 나중에 고속도로에서 달릴 때도 마찬가지야. 앞에 너무 갖다 대지 말고 항상 일정 간격을 유지해. 그럼 절대로 접촉사고 안 나."


차분한 설명이 이어지자 모든 맥락이 머리에 각인되기 시작했다. 언제나 변수를 생각하며 조심히 운전하는 것이 제일이라는 아버지 말씀대로 나는 무리하지 않는 운전에 길을 들였다. 아무리 차가 없어도 일정 속도를 유지했고 무턱대고 끼어들기 전에 양보하는 습관을 들였다. 그렇게 몇 달에 걸쳐 연습을 하니 몸이 운전을 기억했다. 뭐라고 형언하기 어려운 감각이랄 게 느껴졌다. 그렇게 지내던 중, 외할머니댁에 들르기로 한 어느 토요일이었다. 채비를 마친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외할머니댁 갈 때 네가 운전대 잡고 가자. 공식적인 첫 운전이야." 


첫 운전. 맞다. 아직 나는 동네를 벗어나지 못했다. 늘 상황도 비슷했고 길도 다 익혔으니 어려울 게 없었다. 하지만 중요한 검증이 남았다. 이보다 넓고도 낯선 상황에서 차분하게 주행을 마쳐야만 했다. 나는 의뭉스러운 표정을 한 채 끄덕였다. 두려움 반 설렘 반이었다. 나는 안전벨트를 매고 시동을 켰다. 서서히 차는 빌딩 숲을 지나 망망대해로 나아가고 있었다. 옆으로 차들이 쌩하고 지나갔다. 생전 처음 느껴보는 속도감에 몸이 움찔거렸다. 처음 마주하는 고속도로였다. 


하필 차가 막히는 시간대였다. 외곽순환도로에서 기어 나오는 차량들과 얽히고설켜 오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긴장을 늦출 수는 없었다. 언제 또 풀려 삽시간에 움직일지 모르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우리는 원래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양재와 서초를 거쳐 한남대교로 갈 계획이었다. 하지만 차가 막혀 과천에서 사당을 거쳐 한강대교로 향하기로 했다. 낯선 초행길에 잔뜩 긴장을 했는지 딸꾹질하듯이 브레이크를 밟았다. 우회전을 하다가 연석을 스치기도 했다. 어느새 손에선 땀줄기가 흘렀다.


아버지는 긴장하지 말라며 옆 차선에 끼어드는 방법과 차 간격 유지하는 방법 등을 알려주셨다. 그렇게 시간이 조금 지나자 어느새 나는 자연스럽게 액셀을 밟으며 차선을 바꾸고 있었다. 그간 동네에서 연습하던 느낌도 되살아나는 것 같았다. 목적지가 가까워질수록 운전은 한결 더 부드러워졌다. 여유가 생겼는지 급하게 달려오는 SUV 차량에게 먼저 가라고 손짓까지 해줬다. 설명에 열을 올리던 조수석도 별안간 조용해졌다. 아버지 얼굴에서 옅은 믿음이 보였다.


나는 조금 더 차분해지기로 했다.


장장 2시간에 걸쳐 외할머니댁에 도착했다. 평소 40분이면 도착했겠지만 오늘은 유독 길고도 험난했다. 차를 주차하고 내리는데 몸에 기운이 빠졌는지 다리가 흐느적거렸다. 수고했다며 내 어깨를 두드려주시는 아버지 손에서 더운 땀내가 느껴졌다. 문득 생각이 들었다. 당신 역시 얼마나 조마조마하셨을까. 좀 더 연습하면 되겠다는 말을 뒤로 하고 우리는 차문을 잠갔다. 


여전히 시트 위에는 짙은 땀이 흥건했다.


3년이 지났다. 운전이 꽤나 익숙해졌지만 여전히 부모님은 내게 운전을 잘 맡기지 않으신다. 아직 나를 믿고 맡길 어른으로 여기시지 않는 것 같다. 그럼에도 나는 틈만 나면 운전대를 잡을 생각이다. 언젠가 내가 운전하는 차 안에서 편안히 주무시는 당신들을 상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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