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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인칭 시점 May 24. 2022

비어버린 나를 채워줘요

추앙받을 권리에 대하여 - '나의 해방일지'

"당신의 애정도를 재지 않아도 돼서 좋아요. 그냥 추앙만 하면 되니까 너무 좋아요."


도시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왁자지껄하다. 뭉그러진 소음 사이를 가로지르는 공기는 친근한 듯 매정하다. 누군가의 표정과 기분을 실어나르느라 따뜻했다 차가웠다 반복하며 빌딩숲 좁은 골목을 오가기 바쁜 도시의 공기. 그렇게 밤이 되면 미지근해지는 공기가 미정은 괜시리 불쾌하다. 이미 질력이 난 감정이지만 별 수는 없다.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무표정한 얼굴로 그 공기를 들이마시며 남들이 내뱉은 온갖 감정에 동요되지 않는 것뿐이다.



미정의 표정은 지워진지 오래다. 그녀의 주변인들은 궁금하다. 왜 그녀는 표정을 잃어버렸을까. 미정은 그 관심조차 버겁다. 깨어있는 모든 시간이 노동인 그녀에겐 자기 감정의 일대기를 일목요연하게 설명할 힘조차 없다. 하물며 표정을 짓고 말을 건네는 일은 보통 노동이 아니다. 어쩌면 미정은 그나마 무표정인 채로 지내야 살 수 있는지도 모른다. 우당탕 달리는 지하철에서 천장 손잡이를 부여잡고 버틸 힘은 남겨야 하니까 말이다. 그녀의 입술이 단어 하나 함부로 묻히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 아닐까. 주워담을 수 없는 말로 간신한 일상에 균열을 내고 힘을 빼고 싶진 않을 테니까. 지난한 일상에 치이며 그녀가 깨달아버린 도시 생존의 법칙들은 고요하고 꾸준한 저항이었다.


아쉽게도 도시는 저항에 관대하지 않다. 곳곳에 배어있는 암묵적인 규칙들은 개인의 자유를 볼모로 삼는다. 미정도 안다. 아무리 정당한 분노라도 나만 느끼는 무언가라면 조용히, 처절하게 묵살되는 현실이라는 걸 안다. 그래서 그녀는 무표정을 택했다. 당신의 들뜨고 오만한 기분에 나를 초대하지 말라는 무언의 시위와 함께 고립을 택했다.


철저히 외로워진 자신만이 황량하고 폭력적인 도심을 등질 수 있는 명분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사실 미정은 외로운 게 싫다. 부족함 없이 사랑을 받고 싶은 갈망을 무표정 뒤로 숨겼다. 군데군데 갈망이 삐져나올수록 지울 수 없는 얼룩을 새기는 것만 같았다. 지독하게 외롭고 잘 어울리지도 못하는 촌스러운 인간이라는 얼룩. 그 낙인 같은 오명으로부터 살아내야만 한다는 사명감이 그녀로 하여금 숨기는 버릇을 만들어준 것이다. 오늘도 미정은 카페에 홀로 앉아 스스로 정당하다 생각하는 분노를 삭이며, 눈에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오늘 하루도 잘 살아냈다며 어깨를 토닥이는 걸 상상한다. 그렇게 외로워지지 않을 거라 다짐한다. 고역스러운 생존 강박이 견딜 만한 설렘으로 둔갑하는 순간이다.


짙은 밤이 서린 버스 창문에서 미정은 생각한다. 무표정으로 열심히 작은 설렘을 조물딱해도 여전히 사랑은 무겁다고 말이다. 무해한 내 마음이 무례한 결과로 돌아오는 꼴을 당당하게 마주할 자신. 미정에겐 그 자신이 없다. 한번도 가득 채워진 적이 없는 마음으로 사랑을 한다니. 겨우 일상을 살아내는 몸에게 몹쓸짓이라 생각했다. 그렇지만 마냥 외롭기엔 억울했다. 그래서 그녀는 옆집 구씨를 찾아갔다. 그리곤 이렇게 말했다.


날 추앙해요.



미정은 사랑 대신 추앙을 선택했다. 사랑처럼 질척이기 싫어서. 사랑처럼 무너지기 싫어서. 사랑처럼 견딜 수 없는 괘씸함이 싫어서. 그래서 미정은 추앙하라고 말했다. 그저 자기를 높게 봐주고 우러러봐주면 그만인 마음을 바랐다. 하루종일 술에 기대 허망한 눈을 하고 있는 한 남자에게 그 마음을 바랐다. 미정은 무표정한 자신보다 텅빈 표정에게 무엇을 기대한 걸까. 그 표정에서 언젠가 가득 채워졌다 비어버린 흔적이라도 발견한 걸까.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계절이 오기 전에 한번은 채워지고 싶다는 말. 숱한 사랑은 해내지 못했던 일을 추앙은 해낼 수 있을까. 어쩌면 미정에게 제일 필요했던 건 존중이었는지도 모른다. 함부로 나를 재단하고 무리로 욱여넣는 직장. 피상적인 단어의 나열로 표정과 대답을 강요하는 인간관계. 참을 수 없이 가벼운 마음과 본능으로 범벅이 된 사랑. 이 사이에서 나를 숨기고 끝내 잃어버리는 비극. 미정은 추앙만이 이 악랄한 고리를 끊을 수 있다 믿었을까. 멀찍이 나를 아무 말 없이 쳐다보다 지나치는 이 남자만이 채워줄 수 있는 무언가라 믿었을까.


추앙은 마치 사람을 사랑하려면 사람으로부터 멀어지라 말하는 단어 같다.


부질없이 치근덕대지 말고, 함부로 남을 들여다보지 말고, 멀찍이 떨어져 누군가의 발자국에 담긴 하루 드높여주는 . 사랑보다 진지하고 존중보다 애틋한 추앙이지만 그게 미정에게 정답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확신 하나는 든다. 추앙이란 것엔 연기하듯 짓고 있던 무표정을 걷어내고 입꼬리 하나 정도 올릴  있게끔 허락할 힘이 있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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