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지, 우린 잘못된 게 아닐까? 처음부터.
이 말을 하기까지 세쓰코는 몇 번이고 떨리는 숨을 가다듬어야 했습니다. 마주하지 말아야 할 무언가를 본 사람처럼 눈을 감고 땀에 젖은 손을 어쩔 줄 몰라하면서 말이죠.
그녀는 기어코 알아버린 것입니다. 자기가 마주한 삶의 공허함은 결코 메울 수 없는 것이라는 걸 말이죠. 그래서 시작부터 잘못된 삶이라 말했습니다. 누구도 메우지 못할 구멍을 잉태한 삶은 신의 농간일 뿐 가치가 있는 무언가는 아니라 생각한 것일까요.
그렇지만 그녀는 자신의 삶을 놓지 않았습니다. 위태롭게 출렁여도 사랑을 믿었고 그 사랑이 주는 믿음에서 위로를 받았죠. 공허한 삶의 구멍으로 모든 순간이 빠져나갈지언정 찰나의 기쁨이라도 만끽하기로 한 것입니다. 그녀처럼 60여 년 전 전후의 황량함을 견뎌냈던 일본 청년들은 대개 그렇게 살아갔습니다.
누군가 젊음의 본질을 묻는다면 이따금씩 혼돈이라 답하고 싶어집니다. 삶의 뿌리가 얼마나 지독하게 꼬여있는지 캐내보겠다며 치기를 부리기도 하고, 생을 이내 저버릴 것처럼 자극적인 본능을 좇기도 하니까요. 그렇게 하염없이 불안하지만 한 발짝 더 내딛게 되는 게 젊음이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죠.
1년 전. 끔찍한 사고로 수많은 젊음이 스러졌습니다. 탄식과 애도의 목소리 사이로 방탕한 젊음의 말로라며 비난을 퍼붓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죠.
방탕한 젊음. 이 비극을 아우르기엔 너무 작은 말처럼 다가옵니다. 지독한 질병으로 둘러싸인 열린 감옥에서 3년을 살아냈고, 이리저리 치이는 일상을 견뎌내며 딱 하루의 얄따란 여유를 조심스레 움켜쥐고 나왔을 젊음들이라는 걸 생각해보면 저 말이 더더욱 작게 느껴지죠.
얼굴조차 제대로 모르지만 그들은 분명 사랑과 웃음을 찾아 모였을 겁니다. 얽히고설킨 마음의 실타래를 풀고 웃는 얼굴들과 한데 얽혀 귀를 찌르는 웃음소리에 파묻히고 싶었을 테죠. 하지만 그 소박한 바람은 비명으로 얼룩진 황망한 비극으로 마침표를 찍고 말았습니다.
오직 그것이 안타깝습니다. 그냥 딱 하루만 생각없이 행복하고 싶었던 젊음들에게 찰나의 혼돈조차 허락되지 않은 게 안타까울 뿐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해야할 건 수많은 삶에 온전치 않은 나의 잣대를 들이대는 게 아니라, 소박한 바람을 이루지 못한 채 별안간 삶을 등진 넋들을 기리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