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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 탐험가 Oct 30. 2022

도시 탐험가의 이야기 발굴

코로나 공포가 한창이던 2019년 5월에 부모님 묘를 이장했다. 두 분이 세상을 떠난 지 거의 30년 만이다. 부모님을 모셨던 선영도, 새로 이장한 문중 봉안당도 경상북도 상주 어느 한적한 낙동강 가에 있다. 그 근처가 부모님 고향이다. 


문중 봉안당 앞 기념비에는 그 지역에 살았던 우리 집안 역사가 담겨있었다. 15세기 중반 경북 상주에서 살기 시작한 먼 조상부터 지금 살아있는 후손들 이름까지 계보로 적혀 있기도 하다. 내 이름은 물론 내 아들 이름까지도. 


아들도 그렇지만 나는 경북 상주가 아니라 서울에서 태어났다. 부모님은 물론 두 분의 사촌, 육촌, 팔촌까지 모두 세상을 떠난 지금, 내게 상주는 어디 들러 물 한잔 얻어 마실 친인척 하나 없는 곳이 되었다. 


봉안당 기념비는 그런 나와 아들까지 모두 상주의 후예라고 말하고 있었다. 부모님 유골 봉안을 마치고 집으로 올라오는 길에 나는 계속 되물었다. 내 고향은 어디일까. 난 50대 중반을 지나면서 근원적 의문이 생긴 것이다.     


내 어릴 적에는 ‘본적(本籍)’을 물어보는 경우가 많았다. 주소와 함께 본적은 중요한 개인식별 기호였다. 초등학교 졸업장에도 본적이 나와 있을 정도다. 


지금도 난 내 첫 본적을 기억한다. ‘경상북도 상주군 중동면’으로 시작하는. 그래서일까 난 어릴 적에 내 고향이 경북 상주라고 말하곤 했다. 사람들도 사투리를 전혀 쓰지 않는 나를 본적만으로도 경상도 출신으로 대우하곤 했다. 


1983년, 고등학교 2학년 어느 날이었다. 난 전라도에서 올라온 같은 반 친구 집에서 프로야구 중계를 함께 봤다. 친구는 ‘해태 타이거스’를 응원했다. 녀석은 학교에서는 쓰지 않던 남도 사투리를 진하게 구사하며 야구 중계를 봤다. 난 상대 팀이었던, 해태에 이어 리그 2위를 달리던 장명부의 ‘삼미 슈퍼스타즈’를 응원했다. 해태를 응원하던 친구와 경쟁 구도를 만들기 위한 장난이었다.


친구는 그런 나를 이상하게 생각했다. ‘삼성 라이언스’를 응원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그는 나와 우리 가족이 경북에 뿌리를 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니 대구 연고 팀을 응원하지 않는 나를 이상하게 본 것이다. 


그렇다면 경상도 출신 부모와 형제를 둔 나, 서울에서 나고 자란 나의 고향은 어디인 것일까. 서울일까 경상도일까.      


<고려대 한국어 대사전>에 따르면 고향은, 기본의미로 “태어나 자라난 곳, 또는 제 조상이 오래 누려 살던 곳”을 뜻한다. 보충적 의미로는 “늘 마음으로 그리워하거나 정답게 느끼는 곳”을 뜻하기도 한다. 


기본의미로만 보면 경북 상주가 내 조상이 오래 누려 살던 곳이기에 고향이기도 하고, 서울 여러 곳이 내가 태어나 자라난 곳이라 고향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내가 늘 마음으로 그리워하거나 정답게 느끼는 곳은 어디일까. 


내가 자란 곳은 서울의 세 지역이다. 초등학교 1학년 때까지 살았던 수유리,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 살았던 서교동, 그리고 초등학교 5학년부터 군대 입대할 때까지 살았던 역삼동. 


생각해보니 세 지역이 내게 주는 의미가 모두 다르다. 어디가 더 그립다거나 추억이 더 많다는 게 아니라 내가 자라는 여러 시기 동안 다양한 지역에서 겪은 혼합된 경험 차원의 의미 말이다. 


물론, 지금 이 세 곳에 간다 하더라도 누구 하나 반겨주지도 않고 물 한잔 얻어 마실 곳도 없지만 내 어릴 적 추억이 깃든 고향들이다. 그리고, 그 추억을 공유하는 친구들이 자라난 곳이기도 하다. 어쩌면 고향을 정의하는 조건 중 ‘추억을 공유하는 친구’가 제일 많은 지분을 차지하는 건 아닐까.     


부모님의 묘를 이장하며 문중 봉안당 앞 기념비에 적힌, 서울에서 나고 자란 나와 아들이 상주의 후예라고 적힌 그 기념비를 보며 나는 ‘고향’ 하면 어디가 떠오르는지 생각해보았다. 경북 상주가 아니라 수유리의 골목길이, 서교동의 기찻길 건널목이, 도곡동 개나리 아파트의 놀이터가 먼저 떠올랐다. 


그래서일까 내가 살던 옛 동네들에서 내가 기억하는 흔적이 아직도 남아있을까 궁금해졌다. 많이 변했겠지만 내가 그리워하고 정답게 생각했던 그런 모습을 찾을 수 있을까 하고.


그래서 나는 고향으로 느껴지는 곳들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있다. 어릴 때 살았던 동네들을 틈날 때마다 답사하고, 자료도 찾아 보고. 그러다 알게 된 이야기들을 기록으로 남기고 있다. 도시 탐험가의 이야기 발굴. 


도시 탐험가의 서울 이야기 발굴은 지금은 강남 지역을 파헤치고 있다. 계속해서 한강 연안과 강북 지역까지 넓혀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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