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설에는 며느리가 출산을 앞두고 있어서 우리 부부만 처가댁에 갔다. 50대 중반으로 달려가는 부부와 80대를 훌쩍 넘긴 노부부가 함께 쇠는 명절은 조용하기만 했다. 난 처가댁에 가면 주로 거실에 머물렀다가 돌아오는데 이날은 서재를 들어가 보았다. 서재라기보다는 책상과 책장이 있는 작은 방이다. 두 어른은 책장에다 당신들 자녀들과 손주들 사진을 올려놓았다. 난 액자들을 치우고 뒤편을 살펴보았다. 사진 뒤편에 보물들이 꽂혀있었다. 두 분이 책을 많이 읽지 않을 거란 생각에 책장에 관심을 두지 않은 과거를 후회할 정도였다. 나온 지 오래되지 않은 실용 서적과 종교 관련 책도 있었지만 출판된 지 오래된 내게는 보물로 보이는 책들이 책장에 꽂혀있었다. 70년대 중산층이 사는 집 거실에는 책장이 있기 마련이었다. 당시 책장은 장식장 역할도 했다. 오디오를 올려놓기도 했고 양주를 갖다 놓아서 외국에 다녀왔다는 걸 과시하기도 했다. 그런 책장 윗부분에는 전집이 꽂혀있기 마련이었다. <세계문학전집>이나 <아동문학전집> 등 순수 문학 전집들도 있었지만 <대망>이나 <대벌> 같은 일본 소설 전집도 끼어있곤 했다. 책을 실내 장식으로 생각했던 소박한 시절이었다.
▲ 1964년에 김재남이 번역하고 휘문출판사에서 나온 <셰익스피어 전집>. 세계 7번 째 완역본이다. ⓒ 강대호
세월이 흘렀지만 2020년 처가댁 책장에도 1970년대에 출판된 전집들이 꽂혀있었다. 서양 고전 문학 작품을 모은 전집과 동서양 철학가들의 사상을 담은 전집이 책장 맨 위 한켠에 박혀있었다. 책들은 먼지를 품었지만 어두운 구석에서 빛나고 있었다. 그 곁에서 내 눈을 사로잡은 책들이 있었다. 책등의 글씨도 희미한 <셰익스피어 전집> 다섯 권. 나는 ‘심 봤다’를 외치며 책을 펼쳐보았다.
▲ 1964년에 김재남이 번역하고 휘문출판사에서 낸 <셰익스피어 전집> 중 1권. 책등이 바스러졌다. ⓒ 강대호
다섯 권 중 1권은 책등이 바스러질 정도로 헐었다. 서문을 보니 한문이 한글만큼 많고 문장은 세로로, 그러니까 위에서 아래로 흘러내렸다. 페이지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넘겨야 했다. 지금의 가로쓰기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페이지를 넘기는 것과 다른 책 편집이었다. 책 뒤편 저작권 페이지를 보니 저자 ‘인지’가 붙어있다. 저자 측이 직접 도장을 찍어서 출판사 측에 주면 책에 붙여서 유통한 흔적이다. 인지가 붙은 책만이 유통 경로를 제대로 밟은 책이라는 걸 보여주고 저자는 인지를 찍은 만큼 책이 나갔다는 걸 예측할 수 있던 오래전 시스템이다. 저자 ‘인지’는 주로 오래된 책에서 볼 수 있다. 80년대에 나온 책만 하더라도 ‘저자와 협의하여 인지는 생략합니다’라는 문구를 볼 수 있다. 지금은 그런 문구조차 없다. 출판 유통관리 시스템 자체가 달라진 모양이다.
▲ 1964년에 김재남이 번역하고 휘문출판사가 낸 <셰익스피어 전집> 중 크레딧 페이지. ⓒ 강대호
빨간 저자 ‘인지’가 붙은 이 책은 1964년 9월에 나왔다. 초판은 그해 7월에 나왔고 이 책은 5판이었다. 두어 달 만에 5판이라니 인기 있었던 모양이다. 전집으로 5판이니 지금 출판사 관계자들이 들으면 부러워할 게 분명하다. 나보다 나이를 많이 먹은 <셰익스피어 전집>을 낸 곳은 휘문출판사이다. 어느 유명한 고등학교가 떠오르지만, 발행인, 그러니까 출판사 대표 이름에 ‘휘’자가 들어가서 회사 이름을 그렇게 지은듯하다. 인터넷 서점에서는 휘문출판사가 낸 책을 찾을 수 없었지만, 헌책 사이트에서는 그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 이 회사는 1960년대와 1970년대에 문학 전집을 많이 낸 출판사였다. 헌책 사이트에는 <세계문학대전집>은 물론 <괴에테 전집>과 <니이체 전집>이 매물로 올라와 있었다. <셰익스피어 전집>도 헌책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는 모양인지 자료가 많았다. 저자는 ‘경성대학’ 법문학부 영문학과를 나온 김재남. 당시 동국대학교 영문학과 교수였다. 2003년에 별세한 그는 평생을 셰익스피어 연구와 번역에 매진했다고. 자료를 찾아보니 1964년에 김재남이 번역한 이 <셰익스피어전집>은 세계 일곱 번째 완역이었다. 그 이전 독자들은 일본어판이나 일본어판을 번역한 책만 접할 수 있었다고 한다. 김재남이 번역한 <셰익스피어 전집>은 한국어 최초 완역본이라는 사료적 가치가 높다고 할 수 있다.
▲ 1964년에 김재남이 번역하고 휘문출판사가 낸 <셰익스피어 전집> 1권에 실린 서문. 글이 세로로 쓰였고 페이지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넘겨야 한다. ⓒ 강대호
서문부터 찬찬히 읽어 보았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한문이 많은 데다 글씨도 작다. 안 그래도 띄엄띄엄 읽는데 위에서 아래로 읽어야 하니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수록된 작품들 앞부분만 조금 읽다가 책을 비닐 지퍼백에 넣었다. 혹여 책이 상할까 보아서다. 그리고 집으로 가져왔다. 장인어른은 책장에 있는 다른 전집들도 가져가라고 했지만, 내 서재 책장이 이미 포화하여 사정이 여의치 않았다. 부동산이나 주식처럼 경제적 가치가 있는 재산을 물려주고 물려받는 것으로 세대와 세대가 이어지는 모습을 많이 본다. 만약 그런 형편이 되지 못하면 부모는 자녀에게 죄책감을 느끼고 자녀는 부모를 원망하기도 한다. 물론 재산을 물려주고 물려받는다 해도 서로 만족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지만. 자녀가 부모에게 물려받을 수 있는 게 재산뿐일까. 이번 명절에 처가 서재를 뒤지며 부모가 살아온 모든 경험이 자녀에게 무형의 자산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그러고 보니 돌아가신 아버지가 말년에 쓰시던 가방을 내가 보관하고 있다. 그 가방을 볼 때마다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일하신 아버지 모습이 생각난다. 그리고 돌아가신 어머니의 손때 묻은 성경도 내게 있다. 막내아들을 위해 돌아가시기 전까지 기도하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두 유품은 옷장 구석과 책장 구석뿐 아니라 내 마음 한구석에도 부모님의 흔적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이번 명절에 <셰익스피어전집>이라는 헌책은 나와 장인어른과 장모님을 이어주는 매체가 되었다. 책 곳곳에 어른들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언젠가 두 분이 세상에 안 계시더라도 그 흔적은 종이가 부스러지지 않는 한 남아있을 것이다. 나는 어떤 흔적을 후세에게 남겨줄지 고민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