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소소한글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원 Jun 30. 2016

그녀,

평범하고도 낯선, 습작

                                                                         



 그녀는 늘 생각에 잠긴 듯 멍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멀리서 부르든, 가까이서 부르든 그녀는 내 목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 같았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로 인해 생긴 피해는 꽤 컸다. 우선 집안일이 전혀 되지 않았고, 날이 갈수록 집안에는 큰소리가 오갔다. 그래, 잠잠할 날이 없었다.


 그렇게 싸움이 계속되자 그녀는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불규칙적으로 나갔으며, 불규칙적으로 머물다 들어왔다. 그녀는 나갈 때마다 화려하게 치장을 했다. 평소 외출할 때는 하지도 않던 화장을 하기 시작했고, 늘 바지만 입던 그녀가 치마를 입기 시작했다. 그 변화에 나는 어떠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어렴풋이 짐작만 할 뿐, 이렇다 할 증거를 얻지는 못했다.


 그녀가 외출하는 횟수가 잦아질수록, 일상처럼 들렸던 그와의 싸움소리가 줄어들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와 그녀가 마주치는 횟수 또한 줄어들었으니까. 하지만 당연한 일이 될 수는 없는 일인 것 또한 당연했다. 그녀가 외출하는 이유는 그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기에 충분했으니까. 그럼에도 그는 짜증을 내지도, 화를 내지도 않았다. 그저 그러려니 하는 표정으로 그녀를 흘겨볼 뿐이었다.


 집안에 싸움소리가 들리지 않자 집은 극도로 조용해졌다. 하지만 그건 겉으로 보이는 모습일 뿐, 집에서의 생활은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다. 차라리 언성을 높이며 싸우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숨이 턱턱 막히는 분위기였다.


 그 분위기 속에서도 그녀는 외출을 밥 먹듯이 했다. 어이가 없는 건 그럴수록 그녀가 내게 말을 걸어오는 횟수 또한 늘어났다는 점이다. 평소에 그녀와 나는 가장 기본적인 대화도 하지 않았다. 이를테면 학교생활은 어땠는지, 오늘 저녁은 뭘 먹을 건지 같은 것 말이다. 그렇기에 그녀가 말을 걸 때마다 난 흠칫 놀라곤 했다. 그녀는 그런 내 반응을 신경 쓰진 않았지만, 찝찝한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녀가 내게 말을 거는 이유는 대부분이 옷, 아니면 화장 때문이었다. 오늘 화장은 잘 됐는지, 옷이 잘 어울리는지 물어보기 위해 말을 거는 것이었다. 처음 그녀가 그런 식으로 말을 걸었을 때는 조금 기쁘기도 했다. 내 존재를 기억하고는 있구나 싶었으니까.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물음들이 짜증이 났다. 아무렴 화장이 이상하면 어떠냐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누굴 만나는지는 몰라도 저렇게 치장을 한다는 건, 누군가에게 예뻐 보이고 싶다는 것일 테니까. 그리고 그 대상이 남자라는 건 구십 퍼센트의 확률로 정답이고.


 이듬해 봄이 되자 집안은 다시 시끄러워졌다. 그 이유는 이혼 때문이었다. 그녀는 바람을 피냐는 그의 물음에, 뻔뻔하게도 아니라고 대답했다.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는 그녀를 보고 있자니 속이 울렁거릴 지경이었다. 그는 집요하게 물었고, 그녀도 끈질기게 아니라고 했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안 되겠다 생각했는지, 그가 방에서 사진 한 장을 들고 나왔다. 그 사진을 본 그녀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결국 그녀는 그 사진 한 장 때문에, 바람 핀 게 사실이라 대답했다.


 아직도 그 사진이 어떤 것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짐작컨대, 분명 다른 남자와 웃고 있는 그녀의 사진이 분명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렇게 쉽게 항복했을 리 없으니까. 그와 그녀가 이혼하고 나서, 그녀가 유일하게 양육권을 주장했다. 솔직히 의외의 상황이었다. 그녀가 그럴 리는 없다고 확신하고 있었으니까.


 결국 나는 그녀와 살게 되었다. 갑갑하고, 죽을 것 같은 느낌을 참아가며 살고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