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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원 Jul 02. 2016

파리의 밤, 당신에게

습작




 M.
 당신은 거기서 어떤지 모르겠어요. 난 여기가 꽤 마음에 들어요. 그곳보다는 여유로운 것 같아서 좋아요. 요즘에는 그림을 그리고 있어요. 당신도 아직 그림 그리고 있겠죠? 난 유화에 도전하고 있어요. 조금 무리라는 건 잘 알아요.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거에요, 이건. 당신처럼 부드러운 수채화를 그리고 있으면, 당신이 너무 그리워져서······.


 어제는 루브르박물관에 다녀왔어요. 빛을 받아 반짝이는 피라미드가 참 신비로웠어요. 당신이 그렇게 칭찬하던 거였죠, 그 피라미드. 박물관에 있는 명화들보다 그게 더 역작이라고 그랬었는데. 그 말을 하면서 웃던 당신 모습이 문득 생각나더라구요, 거기서. 그렇게 웃으면서 그 말 해도 될 것 같아요. 정말 역작 같았으니까.


 한국에서 당신과 먹던 마카롱이 생각나 LADUREE에 다녀온 적이 있어요. 파리에서 유명한 베이커리에요, 거기. 알록달록한 마카롱을 보고 있으니 당신이 생각나, 조금 울컥하기도 했어요. 그래서 마카롱 맛은 제대로 못 느꼈지만, 그래도 좋았어요.


 당신이 갑자기 전화해서 뜬금없이 파리 시민 혁명 얘기를 꺼냈을 땐, 콩코드 광장에 다녀오기도 했어요. 그 때, 파리 시민 혁명 때 말이에요. 콩코드 광장 단두대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었었다고 하더라구요. 그 얘기 생각나서 무작정 다녀왔어요, 그 때.


 오늘은 몽마르뜨 언덕에 갔다 왔어요. 언덕까지 올라가는 높은 계단이 비밀스럽기도 했고, 벽에 그려진 그래피티가 몽마르뜨 언덕과 묘하게 어울려서 좋기도 했어요. 몽마르뜨 언덕에서 화가들이 지유롭게 그림을 그리고 있다더라, 라고 말하며 눈을 빛냈던 당신의 말대로 많은 화가들이 그림을 그리고 있더라구요. 거기서 초상화 그리던 화가 분께 부탁해 초상화도 그렸어요. 당신한테 보내주고 싶지만, 힘들 것 같아요. 그래서 좀 아쉬워요.


 몽마르뜨 언덕 꼭대기에 있는 샤트레 쾨르 성당도 참 예뻤어요. 웅장한 느낌도 들었고. 무엇보다 마음에 들었던 건 그 위에서 보는 파리의 모습이었어요. 당신과 내가 함께 했던 한국의 빽빽하고 숨 막히는 느낌과 다른 키 작은 건물들이 예뻤어요.


 내려오는 길에는 CAFE DES 2 MOULINS에 갔어요. 카페 데 두 물랑. 그···왜 있잖아요. 우리가 마지막으로 함께 봤던 영화 '아멜리에'에서 주인공이 일하는 곳. 거기에요. 카페 창에 붙여진 영화 주인공의 얼굴이 정말 친숙하게 느껴졌어요. 음···, 카페 안에서는 앞에 커피 한 잔 놓고 추억에 잠겨 있었어요. 한국에서 있었던 그 많은 일들 말이에요.


 돌아오는 길에 들렀던 세느강의 야경은 늘 그랬던 것처럼 아름다웠어요. 당신이 정말 가고 싶어 했던 곳은 몽마르뜨 언덕도, 루브르박물관도 아닌 세느강이었죠. 세느강 사진 한 장 찍어서 당신한테 보내야겠어요. 오랜만에 부치는 편지겠네요, 정말.


 오늘따라 뱅쇼의 맛이 더 씁쓸한 것 같아요. 당신과 내가 '친구'로 함께 했던 추억 때문인지, 아니면 갑자기 내리는 비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말이에요. 당신이 너무나도 보고 싶은 밤이네요, 오늘 밤은.


 그리고, 사랑해요. 어차피 이 편지는 내 책상, 두 번째 서랍에 잠들테니까. 그러니까 말할게요. 사랑해요, 정말로······.

-프랑스 파리의 늦은 밤, 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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