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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원 Jul 06. 2016

그 모든 것이 기적

영화 <필로미나의 기적>

(스포일러 있습니다)




 어느 나라가 됐든 '입양'과 관련된 이야기는 어딘가 가슴이 아프다. 사랑했음에도 사랑했다는 사실을 전하지 못한다는 사실에서 더 그럴 것이다. 이 영화도 그런 내용을 담고 있다. 더 안타까운 것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라는 점일 것이다. 때로는 분노하면서, 때로는 공감하면서 '이게 진짜 사실이라고?' 하는 의심을 할 때도 있지만, 결국엔 실화라는 것.




1. 정반대인 사람들의 만남



 BBC 전직 기자이면서, 늘 회의적인 마틴 식스미스. 가끔은 대체 왜 저러는 건가 싶을 정도로 심하게 회의적일 때가 있다. 사람을 잘 믿지도 않고, 좋아하는 것보다는 싫어하는 게 더 많은 모습이다.


 그리고 긍정적이고 로맨스 소설을 좋아하며, 여리디 여린 필로미나. 때로는 안될 거라는 생각에 포기하고 싶어하지만, 영화 전반에서 긍정적인 모습을 많이 보인다. 그리고 '백만 번에 한 번 나올 사랑이야'와 같은 말을 자주 할 정도로 로맨틱한 것을 정말 좋아한다.


 그보다 가장 큰 차이를 꼽는다면 신앙심이다. 마틴 식스미스는 신앙심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는 무신론자이다. '신'의 존재는 믿지도 않을 뿐 더러, 신을 욕하는 것에도 서슴없다.

 반면 필로미나는 신앙심이 넘친다. 로스크레아 수녀원에서 겪었던 모든 일들을 생각한다면 그러기 힘든데도, 모든 일들을 신앙과 연결시킨다.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신앙심이 넘치는 모습을 보면서, 대단하면서도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2. 아프지만 해피 엔딩



 필로미나는 10대 시절, 사랑에 대한 관심으로 만난 사람과 사랑을 나눴다가 아이를 가지게 된다. 하지만 기독교에서 그 행위는 '좋은 것'이 아닌 '악'에 가까운 것으로 본다. '순결'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에 필로미나는 한 순간에 악행을 저지른 사람이 되었고, 필로미나의 아버지는 창피함에 필로미나를 수녀원에 보낸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죽었다고 말하고.


 결국 그녀는 수녀원에서 아이를 낳게 된다. 아이가 거꾸로 나와 잘못될 뻔 했지만, 무사히 출산을 마치게 된다. 그 모든 것이 여기서 끝난다면 그래도 나름 해피 엔딩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수녀원에 가면 먹고 산 만큼 일해야 나갈 수 있다. 아니면 1천 파운드를 내고 나가거나.


 돈이 없던 필로미나는 수녀원에 남아 일을 하게 된다. 그 중에 아이를 만날 수 있는 시간은 단 한 시간. 일이 아무리 힘들어도 자신의 아이, 앤소니를 볼 수 있다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버텼을 것이다. 하지만 앤소니는 미국으로 입양가게 되고,  필로미나는 그 후 그 사실을 50년 동안 숨기고 살아간다.


 50년 후 앤소니를 찾기 시작하면서 수녀원이 저지른 일들을 알게 된다. 화재로 불타 없어졌다던 자료들은 그들이 고의로 불태운 것이었고, 양육권을 포기하겠다는 각서만 남아있는 것. 이에 더해 필로미나에게는 앤소니의 행방을 알 수 없다는 말을, 친엄마를 찾으러 온 앤소니에게는 필로미나가 앤소니를 버렸다는 말을 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앤소니를 찾기는 불가능일 것 같았지만, 결국 찾아낸다. '마이클 헤스'라는 이름으로 미국 정치계에서 일했다는 사실을 알아내지만, 1995년에 죽었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필로미나는 모든 것을 포기하려 했지만, 그래도 앤소니의 삶을 알아보려 사람들을 찾아 나선다.


 부유한 집에서 살았고, 동성애자였지만 사랑을 받으면서 살았고, 사랑을 받았지만 결국엔 HIV(에이즈)로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또한 마틴 식스미스가 앤소니를 만난 적이 있다는 사실도.


 모든 사실 중에서도 앤소니가 아일랜드를 잊지 않았다는 것, 친엄마를 찾으려 했다는 사실이 필로미나에게 가장 큰 감동이었을 것이다. 단 한 번도 아일랜드를 생각하지 않았다 생각했지만, 친엄마를 찾으려 아일랜드에 갔었다는 것. 그리고 앤소니가 로스크레아 수녀원 무덤에 묻혔다는 것. 자신이 나쁜 부모라고만 생각했던 필로미나에게 그것은 가슴 벅찬 감동이었을 것이다.


 애매모호한 결말이지만, 결국엔 해피 엔딩이다. 해피 엔딩이라기엔 가슴 아프지만 말이다.




3. '필로미나의 기적', 기적?


 원제는 '필로미나'인데, 왜 한국에서는 '필로미나의 기적'이라는 제목을 선택했을까? 필로미나가 결국엔 모든 사실을 알게 된다는 것도 기적일 것이다. 하지만 영화 속 모든 과정 자체가 기적이 아닐까 한다.


 아들을 그리워하던 필로미나가 마틴 식스미스를 만나 앤소니를 찾기 시작하는 것.그것에서부터 기적이 시작된 것이다. 현실에서는 마틴의 말처럼 적극적으로, 어디든 가면서 도와주는 사람을 찾기는 힘든 일이니 말이다.


 그리고 수녀원 저지른 모든 일들에도, 남자와 사랑을 나눴다가 미혼모가 된 모든 여자를 '그저 죄인'이라고 하는 수녀의 말을 듣고도 용서를 하는 필로미나. 그 또한 우리에게는 기적적인 일이다. 우리가 그 상황이었다면 마틴처럼 용서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누군가를 미워하는 게 싫어 용서를 하는 필로미나를 보면서, 당황스러우면서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영화을 다 보고 난다면 '결말' 뿐 아니라 모든 것이 기적이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필로미나의 행동과 앤소니를 찾고 사실을 알게된 것. 그리고 마틴이 필로미나의 성격을 닮아가는 것 또한. 처음에는 로맨스 소설을 좋아하지 않고 지루해 하던 마틴이, 필로미나가 본 로맨스소설이 어떤 건지 직접 물어보는 장면에서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4. '필로미나의 기적' 실화


 영국의 식민지였던 아일랜드는 1921년 완전한 독립이 아닌 통치권만 얻게 된다. 그 과정에서 초기 자본이 부족했던 아일랜드는, 궁핍한 경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악행을 지른다. 미혼모의 아이들을 세계 각국에 강제 입양시키는가 하면, 노동력을 착취하는 등의 악행을 약 70년간 벌인다. 국고 안정화라는 명목으로 저지른 일이었지만, 야만적인 행동이 아닌가.


 또한 그런 과거를 감추기 위해 관련 자료를 모두 불태워 버린다. 이러한 사실을 감춰오던 아일랜드 정부는 이 사실이 점점 논란이 되자, 2013년 2월 엔다 켄리 총리가 공식 사과문을 발표한다. "과거 아일랜드 정부에 의해 아이를 강제로 입양시켜야만 했던 여성들과 강제노역에 동원된 여성들에게 사과를 전한다."는 내용.


 사과문을 발표했다고는 하지만 그것이 진심으로 다가올지는 의문이다. 그런 일을 당했던 세월들이 쌓이고 쌓여 아픔이 클 텐데, 문장 몇 개가 과연 위로가 될까.

                                                                                



                                                                                            




 감동적인 결말이었다. 아들의 마음을 알게됐다는 것이 다행이었다. 그것조차 알지 못했다면 절망했을 필로미나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하지만 감동적이지만 감동적이지 않았다. 돈 때문에 그런 일을 저지르고, 돈 때문에 그런 일을 당했다는 사실은 확실히 감동적인 것이 아니다. 감동이라기보다는 절망이라고 해야 맞는 것 같다. 이 모든 것이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 생각하면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사람의 가면을 쓴 악마라는 말이 딱 들어 맞는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에게 그런 일을 당했음에도 용서를 하는 필로미나를 보면 또다시 감동이다. 영화 속의 그 누구보다 더 대단하며, '순결'을 지키지 못해 비난을 받았지만 따져본다면 필로미나가 진정한 성녀가 아닐까 싶다. 50년 동안 받았던 고통을 그렇게 용서를 했으니.


 필로미나의 말을 빌리자면, '백 년에 한 번 있을 용서'다. 절대 용서할 수 없으며, 용서하기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엔 용서를 하는 필로미나를 보면 저 말이 생각날 수 밖에 없다. 백 년에 한 번 있을 용서이며, 필로미나는 백만 명 중에 한 명 있을까 말까한 사람인 것이다.


 이렇게 글을 쓰는 순간에도 또다시 생각하게 되는 질문이 있다. 과연 내가 저 상황이었으면 용서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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