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국어가 아닌 제2의 언어를 완벽하게 이해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유창성'의 문제가 아니라 '순수성'을 말하는 것인데, 이미 우리는 모국어에 의해 언어적 순수성이 훼손되었기 때문이다. 몇 개 국어를 하든지 간에, 나의 최초의 언어는 그 후에 습득하는 언어들을 재단하게 되어있다.
이런 의미에서 나와 모국어가 다른 작가의 글이라면, 번역본을 읽는 것은 당연하고, 극단적으로는 원서를 읽는 것조차도 작가 본래의 감정의 결에 결코 정확하게 닿을 수는 없는 것이다.
이럴 때, '내가 좋아하는 해외작가가 만약 한글로(한국어가 모국어라고 가정하고) 글을 쓴다면?' 하는 아주 짜릿하고 괴로운(영원히 일어날 수 없으므로) 상상을 해보고는 한다.
이 책은 영어가 모국어인 줌파 라히리가 이탈리아어로 두 권의 산문집을 낸 이후에 처음으로 펴내는 소설집이다. 이미 평단과 대중으로부터 큰 인정을 받은 작가가 새로운 언어로 쓴 글이라는 것 자체로 이 책은 읽어볼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녀의 영어로 된 이전 작품들을 안 읽었다면 아마 다소 심플하다고 느낄 수도 있겠다.
확률적으로 이번 생에 줌파 라히리가 한국어를 배울 일은 희박하다. 안타깝지만 그녀의 세계에 조금이라도 가까이 닿을 수 있는 방법이 아주 없지는 않다. 내가 영어공부를 더 열심히 하는 방법이다. 안타깝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