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같이 스산한 날에 끝내야 할 것만 같은 책이 있다. 문장 사이에서 책장 사이에서, 한차례씩 안경을 고쳐 쓰고 지나온 글을 다시 곱씹는 순간이 반복되었다. 더 이상 정확할 수 없을 만큼 도식화된 작가의 말들을 내 머릿속에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그대로 그리고 싶었서였다.
박찬욱 감독은 자신이(영화감독이 아니고 비평가라면) 비평의 정수에 다다랐을 때 아마 이런 글을 썼을 것이라고 했는데, 이 말에 대해 처절하게 동감한다.
내가 처절한 이유는 이로써 내가 생각해온 비평글에 대한 이상향은 실재하는 것이 되어 나의 판타지가 깨져버렸을 뿐만 아니라, 이미 누가 그곳에 먼저 깃발을 꽂아버렸기 때문이다.
이 책은 국내외 여러 영화에 대하여 문학비평가가 서사론적인 부분에 대해서'만' 논한 글이며(영화평론가가 아니므로), 그렇기 때문에 '주로' 이야기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이 책에서 논한 영화들 중 보지 못한 작품들을 하나씩 살펴볼 계획인데, 벌써부터 그의 정확한 글들이 내 눈앞을 가린다.
작가는 밤새도록 무언가에 대해서 취한 술이 깰 때까지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이다. 이를테면 '사람' 혹은 '사랑'에 대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