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올가 토카르추크의 작품 중 가장 먼저 읽은 책은 <방랑자들>이다. 2019년에 (보류되었던) 2018년 노벨문학상 수상이 확정된 날, 무언가에 홀린 듯이 그녀의 책이 입고되어있는 서점을 찾느라 한 시간을 헤매다 집에 돌아간 기억이 있다.
하지만 나는 그 책을 다 읽지 못했는데,
첫째는 동유럽 작품 특유의 상상력과 묘사력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고,
둘째는 마치 이 글을 누가 읽고 있다는 것을 잊어버린 것처럼, 거침없이 치고 나가다가 뚝 끊어버리는 그녀가 다소... 제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책은 자잘하게 소제목으로 나눠져 있고(심지어 한 페이지짜리 소설도 있다), 각 작품들 사이에는 개연성이 전혀 없다가, 갑자기 생기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에 <태고의 시간들>을 읽는 데는 일주일이면 충분했고, 읽는 동안 내가 살고 있는 세계에는 도통 관심이 생기지 않았다.
작가의 글은 여전했고,
내가 예전 같지 않게 된 것이다.
그녀는 융의 사상을 공부하고 더 이상 세계를 예전과 같이 볼 수 없다고 했는데, 나는 어떤 세계와 작별하고 무엇을 보기 시작한 것인가?
"신화는 종의 기억을 구성하는 조각"이라는 그녀의 조용한 외침이 점점 크게 들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