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와 예술가가 각자의 언어로 그려내는 통찰력들에 대해 물리학이라든지, 현대미술이라든지, 혹은 문학, 어쩌면 철학이라는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어리석다.
진리를 추구하고 그것의 심연을 들여다보는 것이 탐구자의 역할이지만, 왜 존재하느냐에 대한 답은 없다. 존재하는 것은 그저 존재할 뿐이다.
나는 문과와 이과라는 식의 이분법적인 학문분류체계에 동의하지 않는다. 과학자들이 달을 궁금해하고 실제로 인류가 달에 발자국을 찍을 수 있었던 것은 먼 옛날부터 달을 노래하며 시를 써 내려가던 시인들의 영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언어와 수학, 예술과 과학은 결코 서로의 반대가 아니다.
개인적으로는 그래픽 디자이너 유지원 씨보다 물리학자 김상욱 씨의 글에서 많은 부분 공감하고 설득당했다. 우주의 법칙을 읽는 물리학자이면서, 그림과 음악을 이해하는 마음이 열려있고, 그 법칙과 마음을 언어로 이렇게나 잘 엮어내니, 그의 세상은 얼마나 풍요로울지 감히 상상해본다.
'같은 장소'에 다시 찾아갈 수는 있어도,
'같은 시간'에 다시 찾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나는 시간 속에 책갈피를 부지런히 끼워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