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별일도 아닌 것에 시비를 붙여 직원의 부탁을 거절했다. 물론 이런 저런 사유를 들어 강한 거부 의사를 표시하였다. 깐깐한 꼰대가 된 날이다. 원래 주변을 잘 쳐다보지 않은 성격이였다. 병원신세를 몇번지고 세월이 지나면서 자꾸 뒤를 쳐다보게 된다. 처음에는 짜증이 났었다. 한 번 보이기 시작한 뒷꼭지와 긴 그림자는 가던 길 멈추고 뒤돌아 보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그러면서 거절을 제대로 못하는 인사가 되었다.
대학 졸업후에 늦게 군입대를 하면서 2년 후배와 같이 가게 되었다. 논산 훈련소에서 그래도 선배랍시고 잘 있나 싶어 내가 있는 내무반으로 찾아오다가 조교에게 걸려 쓸데없이 남의 내무반을 다닌다고 트집을 잡아 기압만 받고 갔다고 후에 투덜거리며 말한 적이 있다. 이 후배는 같은 써클 생활을 하면서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하면서 나에게 의미심장한 말을 한 적이 있다. 그 옛날 버스에서 행상을 하면서 행운에 가깝게 물건을 살 수 있는 기회를 주는 듯이 팔아 먹는 수법을 많이 사용했었다. 버스만 타면 늘상 그 행운이 나에게 오곤 했다고 했더니 듣고 있는 어떤 후배가
"아, 형이 사람이 좋아 보여서 그런 것 같네요"
했더니 군입대 동기인 후배 왈
"야, 그건 만만해서 그런거야. 안 산다고 하면 눈에 힘 한번 주면 살 것 같은 그런 사람... "
그 말을 듣고 모두들 박장대소 했던 기억이 참 오래갔다. 지금도 그 말은 또렷이 기억난다. 아마도 세상사를 나보다 먼저 깨우친게 아닌 가 싶다. 그 만만함이 좋은 사람으로 착각하고 살아왔던게 아닌가 싶다.
내 그림자가 보이기 시작한 나이에 들어서야, 매몰차게 했던 시간들에 대한 반성인양 작은 부탁들을 들어주게 되었다. 그런 탓에, 무슨 일이 있으면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인 사안들이 스물 스물 마지막 종착역처럼 몰리어 떠 앉게 되더니 이제는 두르지 않고 바로 날아오는 느낌이다. 그러면서 문득 떠오르는 책 제목처럼, "기꺼이 욕을 먹을 용기"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역시 나는 만만한 놈인가?
아직까지 좋은 사람 보다는 깐깐한 사람이어야 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