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시절, 학회 참석한답시고 늘 혼자서 출장을 자주 다녔다. 처음에는 필름 카메라로 이곳저곳으로 다니면서 신나게 사진을 찍었다. 요즘 같으면 디지털로 즉석에서 상태를 확인할 수 있으니 별 수선을 떨지 않고도 사진을 정리할 수 있겠지만, 당시에는 필름 카메라에 담은 장면이 잘 나왔는지 정말 궁금하기도 하고 여행길을 정리하는 일은 여간 신나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수선을 떨면서 인화하고 정리하는 꼴을 별 관심도 없어해서 좀 서운하기도 했다.
'어째 나에게는 관심이 없나?'
나중에야 알았다. 혼자서 신나게 다니는 것이 못마땅한 것이었다. 늘그막에 철이 조금 나서 처음으로 아내와 동행한 곳이 발리였다. 어느 저녁에 너무 맛난 열대 과일을 먹었다. 파파야였다. 호기심에 씨를 휴지에 둘둘 말아 여행가방 구석구석에 넣어 밀반입했다. 마치 문익점 선생의 목화씨를 가지고 오는 기분으로 귀국길에 올랐다. 베란다에 화분을 사서 씨를 심었더니 신기하게도 싹이 트고 무럭무럭 자라기까지 한다. 잎이 무성하여 더 이상 아파트에서 자랄 수 없을 것 같아서 고이 모셔서 텃밭에 옮겼다. 그 무성하던 잎을 하나둘 떨어뜨리더니 결국에 말라서 죽고 말았다.
지난 늦은 겨울에 마당에 있는 무화과나무를 손질하고 남은 가지를 잘라 삽목을 하였다. 무화과답게 일조량이 부족함에도 이른 봄에 싹을 틔우고 뿌리를 내린 듯했다. 신이 나서 유튜브에서 배운 실력을 발휘하여 흙을 퍼답아 거름끼 가득한 새로운 화분을 만들었다. 그러나 옮겨 심은 무화과 묘목은 시들 시들 날이 갈수록 비실거리더니 하나도 남김없이 죽고 말았다.
파파야는 뿌리를 내리고 휴식기를 기다렸다가 옮겨야 한다는 것을 후에 알았다. 무화과는 퇴비와 섞은 흙이 충분히 발효되어 발효하면서 발생하는 유해가스가 없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묘목을 심어야 한다는 뻔한 사실을 놓친 것이다. 성질 급한 것이 몸이 베인 탓인지 그런 기다림을 즐기지 못했다. 기다리는 일은 자연에서 생명을 지키는 일이라는 것을 많은 식물을 죽이고서야 알았다.
기다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