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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홍 Dhong Jun 17. 2018

운전을 시작하게 된 이유

지극히 개인적이지만 나에겐 너무나 중요한 이유

최근에 운전을 시작했다. 2017년 초에 한 해를 계획하면서 '운전'을 넣었고, 구체적으로 2017년 9월 이후 짝꿍과 동승하는 모든 운전을 내가 하겠노라 적었지만 몇 번의 소심한 시도에 그쳤다. 그리고 다시 2018년. 올해는 주말에 한산한 회사 근처를 배회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회사에서 집까지, 집에서 양가 부모님 댁으로, 휴가지에서 집까지(고속도로 질주 대성공) 운전하는 데 성공하고 이제 짝꿍과 동승하는 모든 운전을 내가 하기에 이르렀다.


운전을 시작하게 된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여행 가면 늘 짝꿍만 운전하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2016년, 열흘 남짓 아이슬란드로 여행을 떠나 링로드를 따라 아이슬란드 전체를 한 바퀴를 돌았는데 이때 우리 총 운행거리가 약 1700km 정도였다. 어림잡아 하루에 150~200km씩 이동을 한 셈이었다. 당시 운전 경험이 전혀 없었던 나는 운전대를 짝꿍에게 맡길 수밖에 없었다. 그게 어찌나 마음에 걸리던지. 내가 운전을 하게 되면 내가 다 하거나 교대를 할 수 있으니 큰 힘이 될 것 같았다. (사실 이 이유로 2017년 여행에서는 내가 운전하기 위해 2017년 목표로 세웠던 것인데 결국 그 해 여행에서도 운전은 다 짝꿍이 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진.짜. 올해부터는 여행 가서 운전을 내가 하리라 다짐했고 실제로 올해 5월 국내로 떠난 휴가에서는 중반부터 내가 운전하게 되었다. 하반기에 예정되어 있는 제주도 여행과 해외여행에서도 모두 운전대를 잡을 예정이다!

주말 결혼식에 바래다주고 기다리는 짝꿍에게 미안했다

경기도로 이사하고 나니 주말에 서울에서 행해지는 결혼식에 참석하는 것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교대, 양재, 강남, 역삼 등 강남 근처에서 하는 결혼식은 그나마 대중교통으로 다닐 만했지만 여의도, 목동, 관악 등지에서 결혼식이 진행된다면 대중교통으로 가기가 힘들었다.

운전하면 시간과 에너지를 충분히 아낄 수 있기 때문에 이따금씩 짝꿍이 자발적으로(!강조!) 결혼식에 나를 데려다주었다. 우리 커플의 특성상 각자 지인의 결혼식에 함께 참석하지 않고 혼자 가는 편이기 때문에 내가 결혼식에 참석할 동안 짝꿍은 카페에서 기다리곤 했다. 혼자 시간 보내는 건 둘 다 잘하는 일이고, 기꺼이 본인이 하겠다고 한 일이며, 나라도 그리 했을 터라 마구 미안한 건 아니지만, 불필요한 외출을 하게 만들었으니 마음이 쓰이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내가 운전을 할 수 있다면? 이제 차 끌고 혼자 다녀오면 된다! 문제가 이렇게 쉽게 해결된다!


장거리 출퇴근하는 짝꿍이 주말만이라도 쉴 수 있길 바랐다

집에서 가까운 회사를 다녀도 힘들 텐데 먼 거리를 출퇴근하는 짝꿍이 늘 마음에 걸렸다. 평일에도 장거리 운전을 하느라 피곤할 텐데 주말 운전까지 맡길 수는 없지 않은가!

짝꿍의 편안한 음주를 위하여!

술을 마실 수 선택권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분명 다르다. 함께 가족 식사를 갔다가 삼계탕에 인삼주라도 한 모금 마시려면 운전대가 먼저 떠오른다. 지금까지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우리 둘 다 마시지 않거나 나만 마시거나. 술을 많이 하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는 한두 모금이라도 술잔에 입을 댔고 짝꿍은 그러지 못했다. 하! 지! 만! 이제 우리는 선택할 수 있다. 그러고 보니 지난달에 양가에 한 번씩 갔었는데 두 번 모두 짝꿍은 반주를, 나는 술을 한 모금도 마시지 않고 짝꿍을 모시고 집까지 왔다!


할 줄 알면 편한 기술 중 하나

사실 이제까지 운전을 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편치 않았다. 살면서 '운전하세요?'라는 질문을 생각보다 자주 받게 되는데 '면허는 있는데 장롱면허예요'라고 말한 지 근 10년이 되어간다. 살면서 영어 쓸 일이 별로 없지만 할 줄 알면 편한 것처럼, 언제 어떤 경우든 운전을 할 줄 안다면 삶이 조금 더 편해지리라는 것은 분명하다.


덤, 높아지는 자아효능감

자아효능감이란 단어가 실제 있는 단어인지, 그 뜻을 정확히 알고 쓰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뭔가 원래 하지 못했던 것을 노력해서 할 수 있게 되면 스스로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이전엔 쓸모없다고 느꼈던 것은 아니지만) 앞으로도 뭔가 노력하면 할 수 있을 것 같은 좋은 기운이 생긴다. 대단할 것 없는 인생이지만 그래도 소소하게나마 이렇게 또 하나를 얻게 된다.


한 가지 부작용이 있다면...

운전을 하게 되자 무척 차를 갖고 싶어 졌다. 이미 집에 차가 한대 있는데 한 대 더 장만하는 것은 언감생심. 그래도 왠지 모르게 자꾸만 차 가격을 알아보게 된다. 하. 하. 하.


아직 초보 딱지를 못 뗀 초보운전자지만,

부디 도로 위의 민폐가 되지 않도록 주의하고 안전 운전해야지!



* 표지 및 본문 이미지 출처: Unsplas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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