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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홍 Dhong May 06. 2019

나만의 달력, 나만의 시계를 갖는다는 것

과연 가능한 일일까

나만의 달력? 나만의 시계? 무슨 뜬금없는 소리인가.

개인 구글 계정으로 구캘(구글 캘린더) 안 쓰세요? 손목시계 살 돈 없습니까?

아, 물론 집에 달력도 있고 시계도 있다.

여기서 달력이나 시계는 삶의 사이클을 말하는 것이다.


대학교 때 일간지 인턴 기자를 한 적이 있다. 일간지는 하루 단위로 사이클이 돈다. 선배 기자들은 오전에 자기 취재처에 가있다가 들어오기도 하고, 아침에 자리에 있다가 오후에 나가기도 했다. 데스크 마감시간에 맞춰 기자들이 기사를 송고하면, 데스킹이 통과된 기사들은 편집기자의 손을 거쳐 가편집본으로 제작되었고, 인쇄소로 넘어가 다음날 아침 각 가정으로 배달되었다. (방송 리포팅을 하는 쪽이나 인터넷 뉴스팀은 다른 사이클...)


일요일만 신문이 배달되지 않기 때문에 선배들은 토요일에 쉬었다. 월요일엔 다시 신문이 배달되므로 일요일에는 종종 일을 해야 했다. 어떤 선배는 배우자가 약국을 하시는 약사라고 했다. 약국은 일요일만 쉬는데 본인은 토요일에 쉬기 때문에, 둘이 함께 쉴 수 있는 날이 없다고 했다. 그분 입장에서 다행이었는지 불행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불행하다고 생각했다.

대학을 졸업하기 전에 근무했던 곳이 한 군데 더 있는데 그곳은 월간지(잡지)를 만드는 곳이었다. 인터넷 기사를 쓰는 곳이기도 했지만 매달 잡지를 내는 곳이었기 때문에 해당 월의 잡지 마감일이 다가오면 긴장감이 고조되고 야근이 많아졌다. (나는 인턴 나부랭이라 야근을 하진 않았다. 남아있어도 딱히 할 일이 없으므로)


본격 사회에 나오고 나서 다녔던 회사 중 하나는 본사가 미국에 있는 미국계 회사였다. 나는 한국 오피스에서 근무하는 직원이라 출장만 종종 다니고 대부분의 근무는 한국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특별한 점은 없었다. 정기 미팅은 컨퍼런스콜(오디오 콜 혹은 화상채팅)로 진행되었는데 아시아 쪽 근무자(싱가포르, 대만, 인도 등)의 시간대에 맞춰주었다. (미국은 밤 시간이었고, 미국 직원들은 집에서 접속하곤 했다)


그래도 간혹 전 세계 오피스에 있는 직원 전체 미팅(All Hands Meeting)이 있을 때는 미국 시간에 맞출 수밖에 없었는데 아시아권은 아침 시간대라 그럭저럭 맞출만했지만 (이때는 우리 얼굴이 전송되지 않고 전체 미팅이 스트리밍 되는 방식이기 때문에 세수 안 한 채로 들어도 문제가 없었다) 유럽 직원들은 매우 불편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오늘 이런 긴 인트로를 적게 된 계기는 '출근의 힘듦' 때문이다. 지하철에 몸을 싣고 사람들 사이에 끼여있다가 내가 내린다기보다 내리는 행렬에 타올라 내려짐을 당하는 그 과정의 힘듦도 있지만, 쨌든 때가 되면 '일터로 향해야 한다'는 힘듦 말이다. 내가 다니는 회사는 완전 선택적 근로시간제를 택하고 있어서 출퇴근 시간을 마음대로 정할 수 있다. (월 단위로 근무시간을 채우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혼자 일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회의 시간이 있으면 맞춰야 하고 프로젝트 스케줄에 맞게 조절이 필요하다. 프로젝트 우선순위나 일정 등은 회사가 정하는 것이고, 내가 완전 선택적 근로시간제에 맞게 일하고 있는 것도 회사가 그렇게 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지 내가 결정한 것은 아니다.


만약 내가 나만의 달력, 나만의 시계를 갖게 된다면 어떤 모습일까? 주 3일 근무하는 회사에 다니면서 개인 작업을 한다든지, 개인사업자가 되어서 나만의 근로 규칙을 세운다든지...


이런저런 시나리오를 써보다가 항상 도달하는 곳은 그래도 지금처럼 회사 다니는 게 제일 낫다는 결론이다. 그렇게 현재 상황을 합리화하고 싶어서 내린 판단인지, 객관적으로 정확히 평가하고 내린 판단인지 잘 모르겠다.


어린이날 대체휴일을 맞아 월요일 아침에 소파에 앉아 브런치를 적고 있자니 행복하다. 그런데 자영업자가 되어도 휴일에 이렇게 마냥 쉴 수 있을까? (일전에 백수 경험 때 느낀 바는 공휴일이 오히려 싫었다. 평일에는 나만 쉬는 느낌이 들어 특혜를 누리고 있다는 우월감이 있었는데 휴일에는 그런 우월감을 -그게 우월감이라고 보기도 어렵겠지만- 느끼지 못했기 때문인 듯하다) 프리랜서나 자영업자는 작업을 해야 돈이 되기 때문에 자기 채용? 혹은 자기 노동 착취? 가 발생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프리랜서든 자영업이든, 유연한 고용형태이든 스스로 하고 싶은 일과, 그 일에 투자하는 시간과 강도, 주기 등을 모두 정할 수 있다면 가장 좋을 거 같다. 그러려면 내가 어떤 일을 얼마만큼 하면서 얼마를 벌면 적당한지를 먼저 알아야 한다.


전에는 부수입이 현재 연간 소득 수준의 70% 정도가 되면 회사를 그만둬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매우 높고 희망적인 수치임을 알면서도 그렇게 정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연봉은 더디게라도 오르기 마련이고 시간도 체력도 부족하기에 로또적 대박을 노릴 수 있는 일이 아니고서야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깨달았다. (설사 그런 일이 있다 해도 일회성이므로 지속가능성에 물음표가 생긴다)


무엇보다 베이스라인이 틀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 연간 소득 수준의 70%라니 이 산정은 세후 소득을 연간으로 측정한 기준이었는데 실상 내가 회사에서 받고 있는 현금성/비현금성 복지를 생각하면 이 보다 더 높이 책정하는 것이 맞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그만큼의 돈이 필요한가?이다. 지금은 맞벌이를 하면서 사고 싶은 거 다 사고, 먹고 싶은 거 다 먹고, 가고 싶은 데 가면서 소위 누리는 삶을 살고 있다. 그런데 생각을 바꿔 나에게 최소한으로 필요한 돈은 얼마인지 계산해보고, 그 돈을 벌 수 있을 정도가 되면 회사를 그만둬도 되지 않을까? 그리고 하루에 8시간씩 회사에 받치고 남은 시간으로 소득이 생길 정도라면, 회사에 투자하는 8시간을 내 일에 투자한다면 결과가 달라지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한지는 꽤나 오래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회사를 다니고 있는 건, 아직 나 스스로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도 모르겠고, 혼자서 일 할 수 있을지 자신도 없다. 이 글의 결론은 맹숭맹숭하게 '감사한 마음으로 회사 열심히 다니자'가 되겠지만, 그렇다고 고민을 멈출 순 없는 노릇이다.



* 표지 및 본문 이미지 출처: Unsplas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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