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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홍 Dhong Jun 29. 2019

암체어를 사러 이케아에 갔다

우리 부부는 연애시절에 차가 없었기 때문에 - 면허가 있더라도 차를 렌트할 만한 운전 실력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 주로 대중교통이 허락하는 곳만 다녔다. 결혼하고 나서도 딱히 차를 사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가 짝꿍이 불가피하게 출퇴근을 위해 차를 마련하면서 우리 부부에게 운전 라이프(?)가 시작되었다.


운전을 시작하고서 나에게 작은 로망 같은 게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이케아(IKEA) 가보기'였다. 한국에 이케아가 처음 문을 연 곳은 광명점인데 유명 해외 브랜드가 한국에 들어온 것이 신기하기도 했고, 크거나 혹은 많은 것들을 사는 곳이라 차 없이 가긴 힘든 곳이므로 차를 사면 꼭 가보고 싶은 곳 중 한 군데였다.


그렇게 우리 부부는 차를 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케아를 방문했다. 딱히 살 것이 없었기 때문에 별다른 충동구매 없이 푸드코드에서 음식을 먹고 생필품 몇 가지만 구매해서 돌아왔다. 뭐 대단한 걸 사 온 게 없었지만 소박한 로망 실천이었다.


다시 오늘 이케아에 다녀왔다. 근 2~3년 만의 일이다. 이번엔 분명한 목표가 있었다. 바로 암체어와 풋스툴 세트를 사 오는 것. 작년 연말에 다녀온 핀란드 여행 일정 중 한 호텔에 이케아 것으로 보이는 암체어와 풋스툴 세트가 있었는데 정말 안온하기 그지없었다. 그 의자에 앉아서 책을 읽고 휴식을 취했던 달콤한 기억 때문에 우리는 소파 대신 암체어를 들이기로 결정했다. (들이고 싶다는 생각을 한지는 꽤 오래되었는데 이케아까지 가는 것 자체가 부담이어서 차일피일 미루다가 지난주에 이케아에 다녀온 동료의 이야기를 듣고 뽐뿌가 와서 오늘 실행에 옮기게 되었다)


우리는 암체어만 보고 암체어만 사 왔다. 정확히는 암체어 프레임, 암체어 쿠션, 풋스툴 프레임, 풋스툴 쿠션 이렇게 총 4개를 2세트씩 구매했다. 카트에 박스를 잔뜩 싣고 차로 옮기는데 뭔가 돈 잘 버는 어른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물론 진짜 돈 많은 어른이라면 고급 유럽 수입 가구를 쓰지 이케아 가구를 쓰진 않을 것이다)


집에 와서 본격 조립을 시작했다. 어른용 레고 같았다. 놀랍도록 효율적으로 포장되어있는 부품들을 꺼내 최대한 간결하게 설명된 그림을 보며 조립했다. 별것도 아닌 것 같은데 생각보다 시간이 빨리 흘렀다. 그렇게 의자와 풋스툴을 완성하고 앉았다. 만족스러웠다. 다시 핀란드에 온 기분이었다.


결국 이케아의 가격 경쟁력은 운반과 조립의 비용을 고객에게 전가(?)시키는 데서 온다. 우리는 숭고한 노동을 마치고 저녁 식사를 했다. 소파는 일단 빈방에 치워두고 거실 구조를 조금 바꿔서 책장을 등지고 암체어&풋스툴 세트를 배치해두었는데 저녁 식사를 하며 설치된 풀세트를 보니 거실이 좁아 보였다. 짝꿍은 이제 넓은 집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렇다. 차가 없으면 차를 사고 싶고, 차가 있으면 이케아에 가고 싶고, 여행 가서는 가구가 사고 싶고, 가구를 사면 더 넓은 집을 갖고 싶어 진다. 이렇게나 욕심은 끝이 없다.


학생 시절에 잡던 호텔이 3성급이었다면 직장인이 되고 나서는 4성급 호텔에서 자는 것. 별것 아니지만 큰 욕심이든 작은 욕심이든 하나씩 이뤄가는 것도 재미 아니겠는가. 새로 산 암체어에 앉아 풋스툴에 다리를 뻗고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행복하다.

오늘의 일기 끝.



* 표지 이미지 출처: IKEA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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