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격 후기 아닙니다. 응시 후기입니다.
HSK 4급 시험을 본 것이 어언 1년 전. 지난 9월 22일 일요일에 치러진 HSK 5급 시험에 응시하고 왔다. 결과는 나와봐야 알겠지만 왠지 결과가 나오면 (떨어지면 기분 나쁘니까) 글을 안 쓰게 될 거 같기도 하고, 조금이라도 기억이 따끈따끈할 때 적는 게 좋을 거 같아서 시험공부 및 응시 후기를 적어보려고 한다.
먼저 HSK 시험에는 2종류가 있다. 하나는 종이 시험지를 가지고 문제를 푼 뒤 답안을 작성하여 제출하는 방식(PBT)이고, 다른 하나는 컴퓨터로 시험을 보는 방식(IBT)이다. 내가 판단한 기준은 쓰기 배점이었다.
HSK 5급의 쓰기 문제는 80자짜리 짧은 글 짓기를 2개 해야 한다. 하나는 단어 5개를 주고 해당 단어들을 포함한 글을 작성하는 것이고, 다른 한 문제는 사진을 주고 그 사진에 맞는 글쓰기를 하는 것이다. 주로 눈으로 공부하기 때문에 한자를 손으로 적는 일이 잘 없어서 이런 문제 배점이 40점 이상이라면 컴퓨터로 보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는데, 알아보니 쓰기에서 짧은 글짓기는 글 1개당 30점씩 총 60점 배점이었다. 이렇게 된 이상 듣기와 독해에서 좀 어려움이 있지만 쓰기 때문이라도 IBT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공부 교재
지난 HSK 3급과 HSK 4급은 문제집을 다 풀지 못하고 시험에 응시했던 반면, 이번에는 적어도 종합서는 거의 다 풀고 시험을 칠 수 있었다. 사실 한 번 풀면 연습이 되지 않고 몰랐던 단어를 복습하고 다시 풀어서 맞을 수 있는 수준이 되려면 최소 2~3 회독 정도는 해야 할 텐데 전체를 여러 바퀴 돌진 못했다.
이 바닥(?)에서는 다락원에서 나온 남미숙 선생님의 '한권으로 끝내기' 시리즈가 유명한 편인데, 나는 파고다 책을 애용하고 있다. (교재명: 파고다 중국어 HSK 5급 종합서) HSK 4급 종합서도 파고다 책으로 공부했고, 5급도 그랬으며 6급 책도 파고다 책으로 구매했다.
이 책을 선택한 데는 내가 보통의 교재를 선택할 때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크게 작용했는데, 예를 들면 책의 레이아웃(여백이 충분한가, 펼쳐서 답답한 기분이 들면 책을 펼치고 싶지 않다), 3가지 색 이상을 사용하고 있는지(대부분의 책들이 2도 인쇄를 택하고 있는데 이러면 심심하고 지루해 보인다), 폰트와 글자 간격, 줄 간격 등이 보기 좋은가(숨 막히게 공부하고 싶진 않다) 등이다. 시험 준비용 교재라면 콘텐츠를 꼼꼼히 살펴야지 이게 무슨 소린가 싶겠지만, 아무리 콘텐츠가 좋아도 그 콘텐츠를 들여다볼 마음이 없어지면 나에겐 무용지물이다.
그런 측면에서 총칼라파워를 자랑하면서 준수한 레이아웃을 강조하는 파고다 종합서가 딱이었다. 일단 총칼라를 쓰는 교재가 극히 드물고, 총칼라를 촌스럽게 사용한 책은 탈락이므로 파고다가 적격이었다. (그리고 다락원, 시사, 해커스와 같이 '파고다'라는 이름이 주는 신뢰도 한몫했다)
교재가 한 권 더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실전 모의고사 문제집(교재명: 북경대 新HSK 실전 모의고사 5급). 내가 산 건 아니고, 작년에 중국어 회화 수업을 듣고 있을 때 HSK 4급을 땄더니 회화 선생님께서 선물(!!)로 주셨다. 책에는 총 5회 분량이 들어 있는데 종합서 푸느라 시간이 없어서 시험 며칠 전에 1회분 간신히 풀 수 있었다. 난이도는 종합서 보다 조금 높게 느껴졌고, 점수는 합격권에서 간당간당 했는데 실제 시험은 더 어렵다고 느꼈다.
+ YouTube
그리고 유튜브에 'HSK 5급 쓰기' 이런 식으로 검색하면 짧은 강의들이 여러 개 나온다. 동영상으로 공부하는 것이 익숙지 않은데 집중이 잘 안되거나 토막 시간을 활용해 공부할 때는 종종 보곤 했다.
공부 순서
듣기부터 시작했고, 이후에 듣기와 독해를 병행하다가, 막판에 쓰기 공부를 했다. 이렇게 한 이유는 일단 언어는 듣고 말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어떤 단어들이든 새로 배울 때 발음을 들으면서 학습하기 위함이었고, 결국 쓰기를 하려면 어휘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그랬는데 독해나 쓰기를 처음부터 병행해도 괜찮을 거 같다.
공부 시간
주로 퇴근하고 집에 와서 공부하거나 주말을 활용했다. 타임랩스를 찍으면서 공부하니 동영상이 하나씩 쌓여가는 데 재미를 느꼈고, 그 재미에 공부를 하기도 했다. (참고: 새롭게 추가한 외국어 공부법 2가지)
처음에 IBT를 봤을 때는 글자가 너무 작아서 고생했던 기억이 있다. 원래 있었던 기능인데 내가 몰랐던 것인지 아니면 1년 사이에 생긴 기능인지 모르겠지만 글씨를 크게 설정 할 수 있었다. 기본으로 세팅된 글자보다 조금 크게 해서 시험을 봐서 전보다는 나은 느낌이었지만, 여전히 종이로 된 문제집으로 연습을 했다보니 메모도 못하고 단어에 동그라미 치거나 어절 단위로 빗금을 그을 수 없어서 답답했다. (드래그도 안된다 ㅜㅜ)
남은 시간 시험이 우측 상단에 표시되는데 쓰기 문장들을 다듬다 보니 시간이 곧 끝난다는 것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갑자기 시험이 종료되었다는 팝업이 빡 뜨는 게 아닌가! 쓰기 문제를 푸는데 시간이 부족하진 않았는데 괜히 요리조리 고치다가 고치는 중간에 그냥 제출이 되어 버렸다. 다행히 문장이 쪼개져 있거나 뒤죽박죽이 된 상황은 아니었지만 당황스러웠다. 다음에 시험을 다시 보게 된다면 시간을 계속 체크하면서 2~3분 남겨두고서는 손을 무릎 위에 가지런히 올려놓고 앉아있어야겠다.
HSK 5급 IBT 응시료는 95,000원이다. 넬의 클럽 공연 티켓값이, 렛츠락페스티벌 1일권 티켓이 88,000원인 점을 생각하면 정말 작지 않은 액수다. 그런데 이번 시험은 어쩐지 크게 떨리지 않았다. 공부를 어느 정도 해서 합격할 자신감이 있었던 것은 아닌데, 합격을 위한 시험이라기보다 수준 진단을 위한 시험이란 생각이 들었달까. 합격 일지 불합격 일지 모르지만 어쨌든 나는 계속 중국어 공부를 할 거니까~ 하는 마음이 들어서 인지 크게 떨리지 않았다. (단지 시험을 보면서 높은 난이도에 조금 괴로웠을 뿐 ;ㅅ;)
결과는 다음 달 중순에나 나오겠지만 일단 6급 책을 샀다. 전공자도 아니고 업무상 사용하지도 않지만 즐거운 취미생활로 중국어 공부를 계속할 예정이다. 그리고 더불어 중국 역사, 문화 등과 관련된 책들도 좀 사보고 있다. 지문에 중국 관련 내용들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배경지식이 풍부하면 문제를 푸는데 도움이 될 거 같기도 하고,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그 문화와 사고방식을 배운다는 것이니 굳이 '언어'에만 집중할 필요는 없을 거 같다.
내년이든 내후년이든 HSK 6급 합격 후기를 적을 수 있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