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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홍 Dhong Feb 28. 2021

클럽하우스 탈출기

2주간의 중독기를 거쳐 현재는 비교적 안정을 찾았다

클럽하우스(Clubhouse). 처음 이 서비스에 대해서 듣게 된 건 회사 사람들과 함께 있는 업무용 채팅방에서였다. IT업계에서 일하면 새로 나온 서비스나 핫한 회사에 대해 이야기하곤 하는데 이 서비스 역시 눈여겨볼 서비스로 물망에 올랐다.


(딴소리지만 이런 새로운 서비스에 늘 호기심이 생기고 써보고 분석해보는 게 재밌는 걸 보면 나는 확실히 이 업계가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계속 배워야 하고 감을 놓치지 않게 노력해야 하며 다른 업계보다 수명이 빨리 다하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지만 그래도 아직은 그 호기심이 사그라들지 않을걸 보니 이십 대 후반에 방황했던 시간이 아깝지 않게 느껴진다.)


궁금한 마음에 냉큼 서비스를 다운로드해서 써보려고 했는데 바로 가입이 되지 않고 대기 명단에 올라있다는 것이었다. 기존 가입자가 가입을 승인해주거나 초대장이 있어야 가입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급히 개인 휴대폰에 앱을 설치하고 다시 가입신청을 했다. (처음에는 업무용 휴대폰에 설치했었고, 업무용 휴대폰에는 연락처를 저장해 둔 것이 없어서 서비스 이용이 불가했다) 그러자 곧바로 이 서비스에 먼저 가입해있던 친구가 수락해주어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었다. 이게 2021년 2월 1일의 일이다.


클럽하우스는 실시간으로 음성 대화를 여러 명이 동시에 나눌 수 있는 서비스로 현재 iOS에서만 이용이 가능하다. (안드로이드 버전은 작업 중이라고 한다) 여러 명이 동시에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그 대화를 다른 사람들이 들을 수 있는 독특한 구조의 서비스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사람이 버튼을 눌러 (이 서비스에서는 '손을 든다'고 표현한다) 스피커 권한을 얻어 대화에 직접 참여할 수 있고 (진행자들이 수락하지 않으면 스피커 권한을 얻을 수 없다) 말하던 사람이 다시 방청객 모드로 내려갈 수 도 있다.


그렇게 시작된 클럽하우스 중독

이렇게 시작된 새로운 서비스 적응기에 흠뻑 빠진 나는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클럽하우스에 살기 시작했다. 퇴근하고 저녁시간에 거의 내내 클럽하우스를 돌아다녔다. 어떤 방에서는 스피커가 되어 한참을 떠들기도 했고 어떤 방에서는 몇 시간 동안 조용히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가장 중독이 심했던 시기는 이 방 저 방 정처 없이 떠도는 시기였다. 계속 어떤 새로운 방이 생겼는지, 사람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계속 새로고침 하면서 이 방 저 방을 들락거렸다.


가장 중독이 심했던 것으로 보이는 2월 10일(수)에 적었던 일기의 일부를 옮겨 적어보면,


이런 서비스 쓸 때마다 실험실 쥐가 된 기분이다
간식이 랜덤 하게 주어질 때 더 자주 간식 통을 확인하는 생쥐처럼 앱을 계속 새로고침 한다
가끔은 약간 정신병자 같아 보이기도 한다
클하의 feed를 hallway라고 부른다는데 풀린 눈으로 정처 없이 이방 저 방을 허름하게 오가는 내 모습이 상상되었다.
방에 들어가서 듣거나 말하지 않아도 무슨 이야기 하나 기웃거리는 거 은근히 자존심 상한다 ㅠ
업무상 파악한다고 쓰긴 하지만 현타가 온다.
FOMO 내가 무언가 놓칠까 걱정되고 두려운 마음에 들어가는 거라고 하는데
사실은 내가 잊히는 게 두려운 거 아닐까?
생쥐는 이만 클하에서 떠나야 할까 ㅠㅠ
게이미피케이션에 낚였쒀 ㅠ 망해쒀 ㅠ
의지도 지력일까? 난 지력이 부족할까? 엉엉
(후략)


신나게 서비스에 빠져서 쓰다가 문득 정신 차리고 상황을 자각하려는 의지가 보인다. 클럽하우스 중독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하기로 마음먹었고 그것에 성공했다. 서비스 자체를 전혀 쓰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전보다 훨씬 덜 자주 앱을 켜고 주제와 참여자를 보고 선택적으로 입장하기 시작했다.


클럽하우스 탈출기

일단 서비스 자체에서 탈출하려고 마음먹었던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내가 오랜 시간을 보내는 것 대비 얻는 것이 적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도 있고, 전혀 모르는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 자체가 내향적인 나에게는 상당한 피로였던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퇴근 후에 혹은 주말에 배우자와 보내는 오붓한 시간을 뺏기는 것에 대한 속상함과 미안함이 동시에 들었다.


클럽하우스 중독에서 헤어 나오기로 마음을 먹고 의도적으로 휴대폰을 손에서 떼고 있는 상황을 만드려고 노력했다. 예를 들면 주말에 둘이 서점에 가서 책을 둘러보고 책을 사 와서 책을 읽는다. 단순하지만 확실한 방법이었다. 주로 클럽하우스에서 책이나 글쓰기를 주제로 한 방에 많이 있는 편이었는데 (업무 관련 방은 최대한 들어가지 않았다. 쉬는 시간마저 일 얘기를 듣고 싶지 않았다.) 늘 생각하는 것 중에 하나가 '무엇인가에 대해 말하는 것과 그것을 하는 것은 다르다'는 것이다. (최진석 교수님의 '자신의 주인으로 산다는 것' 강연에서 들은 내용이다. 지인의 추천으로 YouTube에서 시청함.) 책에 대한 이야기를 5시간 하는 것보다 책을 50분을 읽는 것이 낫고, 글쓰기에 대해 하루 종일 얘기하는 것보다 글을 한 줄이라도 쓰는 것이 나으니까.


앞으로도 필요에 따라 클럽하우스를 이용할 생각이다. 다른 사람들이 어떤 책을 읽는지, 어떤 글을 쓰는지 기존에도 다양한 채널을 통해 알아보고 있었고 이제 그 채널이 하나 더 추가된 것이니까. 그렇다고 전처럼 일상에 지장을 줄 만큼 의존하지도 않을 예정이다. 모두 건강하고 유익한 클하생활 하시길 바라며!



Photo by William Krause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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