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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홍 Dhong Jul 25. 2021

시작은 커피 한 잔 사러 나가는 일이었다

매일 아침 스트레칭, 하루 한 번 산책, 매일 저녁 근력 운동 하기

회사에서 1년에 한 번씩 건강검진을 지원해준다. 매번 건강검진을 받을 때 마다 나 자신이 자동차 정비소에 들어가는 자동차 같다는 생각을 한다. 엔진오일도 갈아주고 브레이크 패드도 교체하는 것처럼 특정 장기를 바꿔 끼울 순 없지만 (피를 투석하거나 장기를 이식받거나 할 수 있으므로 아주 틀린 비유는 아니지만) 몸 구석구석 고장 난 곳은 없는지 관리가 필요한 곳은 없는지 점검하는 차원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정말 이런 소리를 하고 싶지 않지만) 젊을 때는 건강검진에 항상 모든 수치가 정상에 기타 소견에 '이상 없음.'과 같이 짧은 말들이라 읽을거리가 없었지만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어갈수록 이것저것 확인해야 하거나 추적하며 체크해야 할 사항들이 늘어갔다. 이제는 건강검진을 받으러 가기 전에 약간 긴장되고 성적표를 받는 학생이 된 기분마저 든다.


서론이 길었는데, 작년 11월에 건강검진을 한 뒤 올해 6월에 건강검진을 받았다. 매년 건강검진은 1월부터 11월까지 신청이 가능한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건강검진을 미루기 때문에 한 8월쯤에 신청을 한다고 해도 11월까지 대장내시경 일정은 모두 차 버려서 신청하기 어려워지곤 한다. 작년의 내가 바로 그 신청을 뒤늦게 해서 검사를 받지 못한 사람 중 하나였고 올해는 아예 연초에 신청해서 6월쯤 건강검진을 받았다. 다행스럽게도 특별히 주의하거나 걱정할 만한 사항은 없었지만 인바디 그래프에 눈에 띄는 점이 있었다.


체중이 6개월 만에 2kg 정도 증가했는데 골격근량은 0.1kg도 늘지 않고 오직 체지방만 2kg 증가한 것이었다. 놀란 마음에 2019년과 2018년 자료도 찾아보았는데 당시 몸무게보다 이미 2020년 몸무게가 많이 증가한 상태였다! 체중이 크게 는다고 의식하고 못하고 있었는데 코로나가 가져온 변화는 체중에 여실히 드러나고 있었다.


코로나가 시작되고 회사에서 재택근무를 실시하기 시작했고, 중간에 격일로 출근하거나 매일 출근하는 시기도 있었지만 작년 11월 이후로 현재(2021년 7월)까지 계속 재택근무를 시행하고 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집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는 날들이 많았다. 주말은 그래도 의식적으로 움직여야겠다고 생각해서 배우자와 농구를 하러 가거나 마트에 장을 보러 가거나 동네 공원을 산책하곤 했다. 그런데 주말 활동량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던 것이었다. 게다가 집에서 식사를 주로 하다 보니 배달음식 의존도가 높아졌고 자극적인 맛을 찾다 보니 더 몸에 무리가 갔던 것 같다.


일단 작은 노력부터 시작했다. 일주일에 한두 번이라도 커피를 사러 나가기로 했다. 재택근무를 하더라도 평소 출근할 때와 같이 준비하고 온라인으로 출근했기 때문에 어차피 차림새를 정비한 김에 잠시 나갔다 오면 어떨까 생각했다. 주말에 배우자와 산책하거나 잔디밭에 돗자리 깔고 누우러 갈 때 들르는 커피숍이 있는데 그 커피숍까지 다녀오면 아침 산책이 될 것 같았다. 평소에도 온라인 출근 전에 (스타벅스 VIA) 커피를 한 잔 타서 출근했었기 때문에 테이크아웃으로 바꾸는 정도의 전환은 괜찮을 것 같았다.


그래서 일주일에 한두 번 아침에 커피를 사러 나가기 시작했다. 아침에 집 밖을 나서서 걸어보니 생각보다 기분 전환이 많이 되었다. 아침부터 부산히 출근하는 사람들이 보였고 등교하는 학생들이 보이기도 했다. 집 안에 창밖으로 보던 풍경과는 또 다른 풍경들이 보였다.


그렇게 커피를 사러 나오다 보니 집과 커피숍 사이를 최단거리로 오갈게 아니라 약간 틀어서 (차도 옆의 인도가 아닌 나무들이 심어져 있는) 산책로를 경유해서 오는 시도도 하게 되었다. 시간은 좀 더 걸리지만 기분은 한결 상쾌했다. 시간을 좀 더 내서 공원도 한 바퀴 돌고 오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게 해보니 커피를 들고 청바지를 입고 걷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모두들 운동화에 운동복을 차려입고 열심히 팔을 휘저으며 걷는 것이 아닌가! 수많은 운동 행렬 사이에 출근하는 사람도 아닌 애매한 행색으로 커피를 들고 걷는 내가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이질적인 것 까진 괜찮은데 나도 좀 더 본격적으로 운동을 해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그다음부터는 나도 아예 운동복을 차려입고 아침 산책을 나섰다. 더 이른 시간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산책을 하고 있었고 서로 모르는 사이지만 묘한 공감대를 느끼며 활기찬 산책을 하게 되었다. 산책을 마음먹은 김에 아침 스트레칭과 저녁 근력 운동도 함께 시작했다. 아침 스트레칭은 작년에 잠깐 하다가 말다가 했던 것인데 운동을 거의 하지 않는 현대인이 기울일 수 있는 최소한의 노력이라고 생각하고 시작했던 것이었다. 눈뜨면 바로 스트레칭부터 하고 하루를 시작하고 산책을 위한 준비운동으로도 괜찮을 것 같았다.


저녁에 간단한 근력운동을 시작한 이유는 두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코로나 이후로 급격히 늘어난 체지방 감량의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인바디 결과에 하체 근육에 비해 상체 근육이 부족하게 나와서 바디 밸런스를 맞추고 싶기 때문이었다.


아, 그리고 제니퍼 애니스턴. 갑자기 웬 제니퍼 애니스턴인가 할 텐데 엄청나게 대 히트 쳤던 시트콤 프렌즈가 최근 프렌즈 리유니온 (Friends Reunion)을 촬영한 것을 보았는데 제니퍼 애니스턴의 abs(복근이라고 써도 되지만 왠지 이런 표현을 써야 그 임팩트가 전달될 것 같다)가 너무 충격적일 만큼 매력적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미적 관점에서 아름답다기보다 투철한 자기 관리가 가져온 결과물 같아서 그 과정에 경외심이 들었달까. 물론 쇼비즈니스에 종사하는 사람이니 외모 관리 측면에서 보통의 사람보다 높은 수준의 관리를 하겠지만 그 나이에 그런 몸매를 유지한다는 점에서 약간 감동 수준의 무언가가 와서 나도 뭔가 작은 노력이라도 기울여야겠다는 어떤 마음에 불씨가 확 당겨졌다. 그리고 하루라도 늦게 시작하면 그만큼 건강한 상태로 복귀하는데 더 수고로움이 들 것 같았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이미 늦은 때지만 더 늦지 않을 순 있으니!)


상반기에 열심히 했던 일본어 공부도 이런 패턴을 만드는데 도움이 되었다. 시험은 워낙 어려워서 합격이야 어렵겠지만 결과가 불합격이라고 해서 그 과정에 아무것도 아닌 것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4달 정도 열심히 공부하면서 분명 3월 초의 나와 7월 초의 나의 일본어 어휘력과 청해력, 독해력에는 내가 느낄 만큼의 변화가 있었다. 하루하루 조금씩 공부할 때는 다 부질없게 느껴지더라도 그 시간이 쌓이면 분명한 변화가 생긴다는 것을 스스로 학습했고 운동에도 똑같이 적용해 볼 수 있겠다는 데에 생각이 닿았다.


7월 초에 일본어 시험을 마치고 하반기의 새로운 목표이자 활동으로 스트레칭, 산책, 근력운동을 시작했는데 이제 막 3주가 지난 지금 벌써 2kg은 줄었다. (그리고 점심 식단으로 주로 샐러드를 먹는다) 언제 어떤 상태로 체중을 재느냐에 따라 1kg 정도는 왔다 갔다 하는데 어쨌든 스스로 느껴질 만큼 변화가 생기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습관을 유지하면서 체중 감량보다는 체력 보강, 건강 유지에 힘을 쏟고 싶다.


덧붙여 습관 만들고 유지하는 팁을 적어보자면!


1. 계획은 없어도 기록은 하기


어릴 때는 무척 계획을 촘촘하게 세우는 유형의 인간이었다. 시험기간이 공표되면 오늘을 기준으로 시험 날짜까지 날짜를 계산해서 역산하여 언제 무슨 공부를 얼마큼 할지 정해놓고 착착 공부하는! 그런데 그렇게 계획을 세워봤자 계획을 지키기 힘들고 계획대로 되지 않으면 그냥 다 망한 거 같아서 놓아버리는 걸 알게 된 후로는 계획 없이 살기 시작했다. (이게 중학교 때쯤 깨달은 점이다) 계획이 없으면 기대가 없고 기대가 없으면 실망도 없는 (이래도 망한?) 루트를 타게 되는데 이건 지금도 약간 비슷하다. 러프하게 얼개만 짜고 안 하는 것보다는 조금이라도 하는 게 낫다는 생각으로 한다. 그럼 뭐라도 하게 되니까. 지금도 그런 마인드로 하고 있는데 대신 기록을 한다. 시간은 계속 흐르고 돌아보면 아무것도 남지 않은 것 같기 때문에 언제 무얼 할지 계획하진 않더라도 언제 무얼 했는지 기록은 남겨둔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 스티커 붙이기. 배우자는 슈퍼에 모아가면 쿠폰 줄 것 스티커판이라고 하는데 빈 포도에 하루하루 미션을 수행하면 포도알을 붙이는 판을 사서 스트레칭, 산책, 근력운동을 할 때마다 스티커를 붙이고 있다. 별거 아닌 거 같지만 재미가 쏠쏠하다. 포도 할 하나도 안 빠뜨리기 위해서 매일 잘 지키고 있다!


포도알 목표 달력


2. 스스로에게 관대하기


스트레칭의 경우 7 남짓 소요되기 때문에  하지 않은 적이 없지만 산책의 경우 편차가  편이다. 커피만 사서 돌아올 경우 20~30 정도 소요되는데 작정하고 운동으로 나가면 40~50 정도 소요된다. 아침에 일찍 출근을 해야 해서 산책을 가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에는 점심 먹고 10분이라도 아파트 단지  바퀴를 돌고 온다. 이렇게 10분만 나갔다 와도 나는 산책하기에 미션  포도알 스티커를 붙인다. 나에게 산책은 신발을 신고 밖으로 나가서 땅을 지치고 걸으며 하늘을 보고 나무를 보고 기분전환을 하는 것에 있으므로  정도도 관대하게  것으로 친다.


근력운동도 마찬가지다. 전체 운동을 하는데 25분 정도 소요되는데 주말에 어떤 날은 맥주도 한잔하고 그냥 자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다. 이럴 때 근력운동을 6분 정도 하고 그만 할 때가 있다. 이런 날은 근력운동을 한 걸까? 안 한 걸까? 나는 한 걸로 친다. 내가 배의 당김을 느꼈고 안 한 건 아니니까! 이렇게 너무 각박하게 적용하기보다 안 하는 거보다는 조금이라도 하면 했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다음날의 부담스러움을 덜어낸다.


3. 주변에 알리기


이렇게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것을 포함해서 내가 이런 것을 하고 있다고 주변에 알리는 것 역시 도움이 된다. 사실 세상 사람들 다 바쁘고 자기 인생이 있기 때문에 내가 뭘 하는지 크게 관심은 없을 테지만 공언함으로써 갖게 되는 힘이 있다. 응원이기도 감시이기도 관심이기도 한 무언가 덕분에 계속 힘을 낼 수 있다.




Photo by Sibeesh Venu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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