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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홍 Dhong Aug 15. 2023

야구에 스며들다

새로운 세계는 끝이 없다

야구와 관련된 기억은 뭐가 있을까?


부모님이 스포츠를 즐겨 보시는 분들이 아니었기 때문에 야구, 축구, 농구 그 어느 것에도 노출될 기회가 많지 않았다. 어린 나이에 미디어에서 본 야구장의 모습은 짧은 치마나 바지를 입고 응원을 이끄는 치어리더가 인상 깊게 남았던 것 같다. 동시에 모종의 반감이 있었던 것 같다. 왜 남자 치어리더는 없는가 하는...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야 야구장에 처음 가보게 되었는데, 그것도 학교 간 대항전을 보러 가서 규칙도 잘 모르는 채 응원가만 열심히 불러댔던 것 같다.


회사에 들어가고 나서는 샌프란시스코에 출장 갔다가 유학 중인 친구를 만나러 LA에 가서 다저스 스테디움에 갔었다. (류현진 선수가 다저스에 있을 때였지만 류현진 선수가 등판한 경기는 아니었다.) 야구를 잘 몰라도 워낙 유명한 팀이라 문화 체험 측면에서라도 한 번쯤 가보고 싶었고, 서울에서 샌프란을 거쳐 LA까지 날아온 나를 위해 친구는 귀중한 추억을 선물해 주었다. 와중에 포스트시즌 경기였고, 아직도 경기장 분위기가 생생히 기억난다. 선수별로 응원가가 있다는 것도 신기했고, 제일 기억에 남는 건 주차장이었다. 와 미국은 주차장이 진짜 크고 넓구나!


짧지 않은 인생에 야구와 인연이 거의 닿지 않았다. 회사에서 사람들이 야구 이야기를 열띠게 나눌 때면 외국어를 듣는 사람처럼 듣고만 있었고, 유명한 선수들에 대해 이야기할 때도 그들의 대단함에 대해 공감하지 못했었다. (SK 다닐 때 SK 와이번즈를 엄청 욕하면서 두산을 응원하던 대리님.. 그리고 두산을 응원하던 친구가 두산 입사에 실패하고 삼성에 입사하면서 응원하는 팀을 삼성으로 바꿨던 게 기억난다.)


앞으로도 야구와는 별 인연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올해 우연히 야구를 보게 되었다. 저녁 식사를 하다가 중계를 하는 걸 어쩌다 틀게 되어서였을까. 제주도 여행을 갔다가 비가 많이 와서 호텔 안에서 뭘 볼까 하다가 또 야구를 보게 되고, 그렇게 한 번, 두 번 보다 보니 직접 가서 한 번 볼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지나가는 말로 짝꿍에게 축구나 야구를 직관하고 싶다는 얘기를 했었고, 작년에는 축구를 직관하고 왔었다. 올해는 야구를 한 번 보면 어떨까 싶어 일요일 오전에 바로 티켓팅을 하고 그날 오후에 야구장을 다녀왔다. 직관은 생각보다 재밌었다. 딱히 응원하는 팀이 없는 상태로 갔다고 생각했지만 분위기에 휩쓸려 바로 연고팀을 응원하게 되었고 그렇게 야구 재미에 흠뻑 빠지게 되었다.


야구장에 직접 다녀오고 나서 야구를 보니 더 재밌었다. 야구장의 분위기를 집안에서도 미뤄 짐작할 수 있었고 이제 선수들 이름이나 플레이 스타일, 히스토리들도 점점 더 알게 되니 더 재밌어졌다.


야구를 보면서 든 생각인데 야구는 다양한 성별과 연령에 걸쳐 인기 있는 스포츠 같았다. 어린아이를 데리고 온 가족 단위 관람객도 있고, 젊은 친구들끼리 온 사람들, 그리고 중년의 어르신들 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한 마음으로 야구를 즐기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야구장이 인원이 적어 축구장 보다 가득 차보이는 부분도 장점 같았다. 비교적 인기가 덜한 K리그는 축구장 수용 인원이 워낙 크기 때문에 다 채우기가 쉽지 않은데, (관중이 많이 와도 빈자리가 많이 보인다) 반면 야구장은 자릿수 자체가 많지 않은 데다 인기도 많아 꽉 찬 느낌으로 경기를 볼 수 있어 분위기를 더 뜨겁게 느낄 수 있었다.


(참고)

서울 월드컵 경기장: 66,704명 /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 23,750명

부산 아시아드 주경기장: 53,769명 / 부산 사직 야구장: 27,500명

대전 월드컵 경기장: 42,000여 명 / 대전 한화 이글스파크: 13,000명


구단마다 응원가가 있고 절체절명의 순간이 되면 사람들이 한 마음 한 뜻으로 열띤 응원을 펼치는데 그때 보면 약간 종교의식 같아 보이기도 했다. 교주나 교리는 없지만 어떤 특정한 경험을 공유하는 집단으로, 어떤 절대적 믿음을 가지고 한 마음 한 뜻으로 같은 노래를 부르니 일종의 리추얼처럼 느껴졌다.


공격과 수비를 각각 (각 이닝별 초/말) 따로 진행하는 것도, 이닝별로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고 진행되는 것도, 주루코치가 있다거나 코치나 감독이 마운드에 직접 오르는 것도, 일주일에 6일이나 경기가 있다는 것도, 축구나 농구를 주로 봐온 내 입장에선 신기한 요소들이었다.


야구에 관심을 같게 된 건 결국 새로운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었다.

나이를 먹어도 모르는 게 있고, 흥미를 가지고 새롭게 알아갈 것이 있다는 것 자체가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야구에 관심 있는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도구를 하나 추가했다고 생각하니 그것도 좋다.


앞으로도 타는 호기심으로 새로운 세상에 계속 발 들여봐야지!



사진: UnsplashTim Gou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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