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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홍 Dhong Aug 16. 2023

장면, 그 뒤에 있는 사람을 생각한다

각자의 자리에서 일했을 그 사람들을...

이야기를 어디서부터 시작하는 게 좋을까.


2015년쯤부터 시작해 보는 게 좋겠다. 지금은 리디로 사명을 변경한 리디북스에서 페이퍼라는 이북리더기를 처음 출시할 때 이야기다. 사전 프로모션을 든든하게 해 두었던 턱에 사람들의 관심과 기대가 높았고 나도 그중 한 명이었다. 출시 당일. 서버는 대혼란을 겪었고 빠르게 제품이 품절되었다. 그런데 일이 예사롭지 않았던 것이 결제오류가 얽혀있어 결제가 제대로 된 것인지 안된 것인지 판단이 어려웠고, 중간 과정에서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하지 않아 분노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큰 법)


일련의 과정들을 지켜보면서 리디를 지지하고 비난하고를 떠나서, 그 회사에서 이 일을 담당하고 있을 사람들과 책임자들이 먼저 떠올랐다. 정말 정신이 하나도 없겠구나. 말 그대로 멘붕이겠구나. 이런 생각.


IT 서비스를 운영하면서 장애를 단 한 번도 겪지 않았다면, 그건 아마 경력이 짧아서일 확률이 높다. 크든 작든, 티가 나든 안 나든, 장애는 피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떤 일이든 일어난 그 일 자체보다 그 후의 수습이 더 중요하다.)


코로나가 터졌을 때도 비슷한 생각이 들었다. 졸업식이나 입학식이 취소되고 각종 이벤트나 행사들도 줄줄이 취소되었다. 장기화되면서 이벤트 취소나 변경이 자연스러워졌지만 초기에는 취소해야 할지 강행해야 할지 판단이 어려운 시기가 있었을 것이고, 취소하면 취소하는 대로, 강행하면 강행하는 대로 신경 써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을 것이다. 행사 진행에 이렇게 과몰입한 이유는 이전 직장에서 매년 1000여 명 규모의 행사를 치렀기 때문이다. 코엑스 그랜드볼룸에서 대관하기 위해 사인하는데 "보통 대행사 직원이 하는데 여기는 본사 직원이 직접 하시네요" 멘트가 귓가에 선하다. 그렇게 노동력을 갈아 넣어 힘들게 해냈던 일들...


이 글을 쓰게 된 데는 야구 중계 중간 광고를 보다 문득 든 생각 때문이었다.

'저 광고를 만들기 위해 몇 명의 사람들이 머리를 싸맸을까'

광고 클라이언트 측 담당자와 의사결정자들, 그리고 광고대행사 직원분들이 몇 날 며칠을 고민하고 고생해서 만든 광고일까 하는 생각이었다.


나는 마케팅 부서가 아닌 서비스부서에서 일하고 있지만 올해 큼지막한 마케팅 이벤트를 맡아서 진행했었고, 그 과정에서 마케팅 부서 분들과 마케팅 대행사 분들이 밤낮없이 일하는 것을 보았다. (나도 야근 많이 함..^^) 이 일을 겪고 나니 마케팅 커머셜 하나하나가 새로이 보였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실무적인 궁금증까지 생각이 뻗어나간다.


예를 들면, 네이버 도착보장 광고는 물품이 떨어진 상황이 나오고, 걱정할 필요 없이 그 물품이 내일 도착한다는 내용이다. 그 떨어진 물품의 예시로 세탁세제, 오쏘몰 이뮨, 햇반 등이 나오는데 저런 특정 상품은 네이버가 판매하는 상품이지 네이버 상품이 아니다. 그럼 저 상품들은 어떻게 골랐을까? 특정 성별/연령 세그먼트의 제품군은 선택할 수 있어도 특정 브랜드의 구체적인 제품을 선택하는 방법은 어떤 과정을 거쳤을까? 제품제조사나 유통사로부터 커미션을 받고 광고를 제작했을까? 단순 노출 동의만 얻었을까? 이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다른 예로, 쏘카는 왜 광고 모델로 탕웨이 씨를 선택했을까? 탕웨이 씨가 나오는 쏘카 광고에 나오는 차량은 어떻게 고른 걸까? 쏘카의 주력 렌트 상품이었을까? 자동차 회사와 모종의 거래가 있었을까? 이런 식이다.


가끔 개탄할만한 광고나 이벤트를 접하게 되는데, 그런 때도 이런 생각을 한다. 실무진에서 반대했지만 윗선에서 다 무시하고 저런 인풋을 넣어서 저렇게 된 걸까? 어차피 씨알도 안 먹히리라 생각하고 실무진에서 반대조차 안 했을까? 어쩌면 실무진이 회사 보내버리려고 저런 아이디어를 냈는데 아무도 제지하지 않고 진행돼서 저렇게 된 걸까? 등등..


음악을 들을 때도 전에는 가수에만 초점을 맞췄다면 지금은 기획한 사람, 프로듀서, 작곡한 사람, 작사한 사람, 편곡한 사람, 사운드 엔지니어, 앨범 커버 디자인한 사람, 내지 편집디자인한 사람, 배급 맡은 사람, 프로모션 하는 사람 등등 여러 사람들의 땀과 노력과 시간이 들어갔을 거란 생각이 들고,


책을 한 권 읽더라도 작가에도 관심을 두지만 편집자, 출판사 사장님, 교정/교열 보신 분, 마케팅 담당자, 표지 디자인 하신 분, 내지 편집 디자인 하신 분, 배본하시는 분, 서점 사장님까지.. 줄줄이 떠올리게 된다.


세상의 그 어떤 일도 혼자 하는 일이 없고, 세상 일은 서로 복잡하게 얽혀 있으니까.

그리고 내가 내 자리에서 맡은 바 일을 하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도 그럴 테니까.


허준이 교수의 서울대 졸업식 축사가 인상 깊었는데,

타인을 내가 살았을지 모르는 멀티버스의 나 자신으로 생각하게 된다.


아.. 이제 잠자리에 들고 내일 출근해야지...!

나와 타인들 모두 힘내요!


* 관련 링크들


[리디페이퍼 안내] 리디페이퍼 구매오류에 대하여 안내 드립니다.

https://ridibooks.com/support/notice/414


네이버 도착보장 광고

https://www.youtube.com/watch?v=t9jclkQdILI


쏘카 탕웨이 광고

https://www.youtube.com/watch?v=g6gGA8LpJN4


[전문]'필즈상' 허준이, 모교 졸업식 축사…"길 잃음의 연속이었다"

https://www.edaily.co.kr/news/read?newsId=03611286632432240&mediaCodeNo=257



사진: Unsplash의 Joao Vieg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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