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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구너 Dec 08. 2021

4. 응우옌 꽝 하이

박항서의 황태자

 대한민국에 히딩크 감독이 있다면 베트남에는 박항서 감독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2017년 9월 베트남 국가대표팀에 부임한 박항서는 기존에 베트남이 사용했던 전술을 전면 수정했을 뿐만 아니라 선수들의 식단까지 관여하면서 변화를 예고했거든요. 효과는 주요했습니다. 일본과 대한민국이 숙명의 상대이듯 베트남에는 태국이 그런 존재였는데요. 전임 감독 역시 태국을 제대로 공략하지 못하며 경질됐죠. 그러나 박항서 감독은 달랐습니다. 화끈하게 복수에 성공하며 기분 좋은 출발을 알렸으니까요.


 태국을 격파한 베트남의 승리는 결코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U-23 연령별 국가대표팀까지 함께 지휘한 박항서는 AFC U-23 대회에서 팀을 결승에 진출시키며 승승장구했죠. 비록 연장전 끝에 준우승을 차지했으나 베트남 축구 역사에 남을 대업이었습니다. 준우승에 좌절한 선수들에게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고개 숙이지 않아도 된다는 명언까지 남긴 그는 순식간에 베트남에서 폭발적인 인기까지 얻었고요. 이후 아시안 게임과 스즈키컵에서도 선전하며 베트남의 위상을 높였죠. 베트남 정부로부터 훈장까지 받았으니 실로 엄청난 업적입니다.


 감독이 바뀐 이후에 베트남은 이변의 주인공이 되었는데요. 전술을 이해하며 헌신한 11명의 선수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죠. 아무리 뛰어난 감독이라고 해도 자신의 지시를 이행하지 못하는 선수들로 이루어진 팀이라면 무용지물이니까요. 아스날을 지휘했던 벵거는 앙리를 필두로 팀의 공격을 이끌었고, 첼시에서 전성기를 보냈던 무리뉴는 드록바와 호흡이 눈부셨습니다. 최근에도 사리와 조르지뉴, 안첼로티와 하메스를 비롯해 좋은 시너지 효과를 보여주는 경우가 종종 있었죠.


 박항서 감독에게는 응우옌 꽝 하이가 애제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97년생인 그는 박항서가 이끄는 베트남에서 그야말로 대체 불가능한 핵심적인 존재로 발돋움했거든요. 시작은 연령별 국가대표팀이었습니다. 어려서부터 신동으로 이름을 떨치며 각종 대회에서 쏠쏠한 활약으로 이목을 끌었죠. U-23 감독까지 겸직 중인 박항서는 그의 무한한 잠재력을 보고 곧바로 A매치까지 월반시키는 파격적인 행보를 보여주었고요.


 마치 옛날 히딩크와 박지성이 떠오르지 않나요?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히딩크 역시 불신하는 분위기가 압도적이었음에도 자신의 소신대로 박지성을 선발했죠. 나이나 명성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실력만 보고 선수를 뽑았으며 결과는 모두가 알다시피 성공적이었고요. 2002년 당시 히딩크의 수석코치였던 박항서 감독도 비슷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일각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으나 A매치 경험이 전혀 없었던 응우옌 꽝 하이를 중용하죠. 나이는 어렸지만, 기량이 출중했으며 무엇보다 자신의 전술을 굉장히 잘 소화했거든요.


 기본적으로 미드필더는 물론 공격수 역할까지 수행할 수 있는 꽝 하이는 혹사라는 말이 붙을 정도로 박항서 아래에서 맡은 경기를 소화하는데요. 소속팀에서도 주전이었던 그는 국가대표팀 경기까지 병행하느라 굉장히 바쁜 나날의 연속이었습니다. 심지어 연령별과 성인 국가대표팀 모두 소속되어 있었죠. 평소 체력에서 우위를 보이던 스타일의 선수였지만, 부상이나 체력 저하의 걱정도 자연스럽게 따라다녔고요.


 다행히 경기를 뛰면서 심각한 부상으로 이어진 적은 없었습니다. 위기를 슬기롭게 넘긴 보상이라고 할까요. 박항서 감독이 부임한 이후의 영광 대부분을 함께 했죠. 준우승을 차지했던 AFC U-23 대회부터 오늘날까지 박항서 감독의 대업을 복사와 붙여넣은 느낌이랄까요. 특히 베트남이 10년 만에 정상에 올랐던 스즈키컵에서 대회 최우수선수로 뽑히며 전성기를 구가했습니다. 이후의 대회에서도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며 주가를 한껏 높였고요.


 박항서 감독 덕분에 베트남의 축구가 이전보다 발전한 것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수치나 기록이 이를 뒷받침해주고요. 애제자인 꽝 하이 역시 스승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했습니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박항서 감독이 팀에 합류하고 선수단의 실력이 좋아졌다고 말이죠. 개개인의 장점을 잘 파악해서 알려주기 때문에 무엇이 문제인지 빠르게 파악할 수 있었고, 팀이 하나로 뭉쳐 경기할 수 있도록 동기부여도 부여한다고 덧붙였습니다.


 2019년에 있던 말레이시아와의 월드컵 예선 경기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당시에도 꽝 하이는 선발로 출전해 팀의 공격을 이끌었죠. 시종일관 상대의 골문을 위협하던 그는 전반 40분에 기어코 골을 넣으며 분위기를 가져옵니다. 그대로 결승골이 되어 베트남의 승리로 끝났지만, 별미는 또 있었는데요. 후반 종료 직전 말레이시아 선수가 다리 경련으로 쓰러지자 꽝 하이가 달려가 도와주었죠. 평소 인성과 관련된 부분 역시 강조하는 박항서 감독에게 이러한 꽝 하이의 모습은 흐뭇한 미소를 안겨주었을 겁니다.


 실력이 껑충 뛰어오른 꽝 하이는 새로운 결정을 앞두고 있습니다. 프로 데뷔부터 지금까지 줄곧 베트남에서만 선수 경력을 이어왔는데 이제는 해외에서의 도전도 선택지에 추가됐거든요. 꽝 하이를 비롯해 베트남 국가대표팀에서 좋은 활약을 선보였던 선수들에게 아시아 주요 클럽들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실력은 물론 스타성까지 겸비한 선수가 대거 포진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죠.


 대표적으로 꽝 하이를 언급하긴 했지만, 박항서 감독에게 감사와 존경을 표했던 선수들이 많았는데요. 잠시 K리그에서 뛰기도 했던 콩 푸엉은 인천 유나이티드 입단 당시 한국 축구에 대한 조언을 많이 해주셨다며 특별히 감사함을 표했죠. 꽝 하이와 함께 국가대표팀에서 공격을 이끄는 응우옌 반 토안도 결정적인 순간에 득점으로 신뢰에 보답했고요. 30년이 넘는 지도자 경력 중에 국가대표팀 감독은 처음이었던 박항서 감독의 리더십이 다시금 놀랍습니다. 이미 수많은 역사를 썼지만, 지나온 과거보다 펼쳐질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이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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