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사랑한 해버지
해버지라는 말을 아시나요? 해외 축구의 아버지를 줄인 말로 우리나라에서는 박지성을 지칭해서 많이 쓰입니다. 박지성 이전에도 해외에 진출한 사례는 있었지만, 박지성만큼 꾸준하면서 굵직한 성과를 낸 선수는 드물었거든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라는 꿈의 클럽에서 7년 동안 활약하며 성공적인 커리어를 이어나갔습니다. 덕분에 EPL은 물론 유럽 축구 중계가 활발해졌고, 자연스럽게 많은 축구 꿈나무들의 우상으로 자리 잡았죠.
박지성은 2000년 시드니 올림픽과 아시안컵, 소속팀에서의 맹활약으로 한일 월드컵 엔트리에 포함될 수 있었습니다. 쟁쟁한 선수들 사이에서 박지성의 존재는 대중들에게 다소 아쉬웠지만, 평가전에서 강팀들을 상대로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자 부정적이었던 평가도 서서히 바뀌었죠. 이천수, 최태욱 등과 함께 막내의 나이로 23명만 뽑히는 최종 명단에도 당당히 이름을 올립니다.
당시 감독이었던 히딩크 역시 엔트리에 대한 비난을 피할 수 없었는데요. 박지성이 보여준 모습이 나쁘지는 않았지만, 보다 경험이 많으면서 유명한 선수를 원하는 여론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히딩크의 철학은 확고했습니다. 명성이나 몸값이 아니라 오로지 실력에 초점을 맞췄거든요. 잡음 속에도 소신을 지키며 그를 선발했고, 결과적으로 대성공을 거두었죠.
박지성 본인도 선수 생활 최고의 골로 포르투갈과의 경기를 꼽았습니다. 당시 우승 후보로 손꼽히는 포르투갈을 상대로 팽팽히 맞서다가 균형을 깬 귀중한 득점이었죠. 이영표가 올려준 크로스를 가슴으로 받고, 다시 발로 컨트롤하여 수비수를 완벽하게 속인 후에 때린 슛은 그대로 골망을 흔들었습니다. 대한민국의 16강을 결정하는 기적과도 같은 골이었죠. 기쁨에 겨운 박지성은 그대로 히딩크 감독에게 달려가 품에 안기는 세리머니를 선보여 감동을 선사했는데요. 오늘날까지 줄기차게 패러디되는 셀레브레이션 중 하나죠.
히딩크와 박지성의 인연은 월드컵이 끝난 이후에도 계속됩니다. 새롭게 PSV의 지휘봉을 잡은 히딩크가 이영표와 박지성을 영입했기 때문이죠. 국가대표팀에 이어 소속팀에서도 사제의 연을 맺는 순간이었습니다. 훗날 박지성이 방송에서 밝힌 일화가 있는데요. 일본 잔류와 K리그, PSV까지 세 가지 옵션 중에 네덜란드를 택한 결정적인 이유가 바로 히딩크 감독의 존재였다고 합니다. 서로에 대한 믿음이 있기에 새로운 환경에서의 도전을 택한 셈이죠.
입단 직후에는 극히 제한된 기회 속에 팀에 융화되지 못한다는 평가까지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내 주전으로 도약하더니 놀라운 기량을 선보이죠. 유럽대항전에서까지 좋은 모습을 보이자 리버풀과 첼시, 맨체스터 유나티이드 등에서 관심을 보였습니다. 당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감독이었던 퍼거슨이 적극적으로 관심을 나타내어 박지성의 마음을 움직였죠. 히딩크 감독 역시 선수 본인이 도전을 원했기에 대승적인 차원에서 이적을 허락합니다. 박지성의 이탈은 분명 치명적이었지만, 스승으로서 응원하며 지지하는 모습이 정말 감동 그 자체였고요.
박지성이 PSV를 떠나면서 히딩크와의 동행은 끝이 났습니다. 은퇴하기 전까지 감독과 선수로 다시 호흡을 맞춘 적은 없었거든요. 그래도 사제의 연은 굳건했습니다. 2012년 K리그 올스타와의 경기에서 2002년 월드컵 대표로 출전했던 박지성은 10년 만에 포르투갈전 세리머니를 재연하기도 했죠. 박지성의 은퇴 경기에도 참여해 자리를 빛내주었고요. 제자와 관련된 주제에는 언제든지 칭찬 일색으로 반응하며 보는 사람들까지 미소짓게 했습니다.
스승과 제자로서 인간관계의 표본을 보여주었던 박지성은 동료와의 관계에서도 훌륭한 호흡을 자랑했습니다. 주인공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시절 한솥밥을 먹었던 파트리스 에브라인데요. 박지성보다 6개월 늦게 팀에 합류한 에브라는 공교롭게도 포지션이 왼쪽 풀백이었습니다. 왼쪽 측면에서 활약하는 박지성과 호흡을 맞출 일이 잦았죠. 나이도 동갑에다가 입단 시기도 비슷해서인지 둘은 서서히 가까워졌습니다.
박지성의 기고문을 보면 둘의 우정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자세히 알 수 있습니다. 친해진 특별한 계기가 있지는 않았고, 자연스럽게 친해진 경우였죠. 서로의 집도 가까워서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경우도 잦았고요. 훈련 이후의 시간을 같이 보내며 식사도 자주 하니깐 부쩍 친해졌다고 합니다. 동료들 역시 박지성과 에브라를 향해 별명을 지어줄 정도였죠.
외국인 친구를 사귄다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걱정이 언어의 장벽일 텐데요. 이역만리 떨어진 곳에서 자신과 마음이 맞는 친구를 만나기도 어려운 데다가 의사소통 역시 벅차기 때문이죠. 하지만 적어도 둘에게 그런 걱정은 기우였습니다. 대한민국 출신의 박지성과 프랑스에서 온 에브라는 서로의 언어를 몰랐으나 친해졌으니까요. 박지성의 표현을 빌리자면 축구라는 공통의 언어가 있었고, 영국에서 뛰는 만큼 아마 중간중간에 영어도 사용했겠죠?
에브라에 이어 친해진 동료가 있는데 바로 테베즈입니다. 2007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합류했죠. 아르헨티나 출신인 그는 스페인어를 능숙하게 구사할 줄 알았는데 마침 에브라도 스페인어가 가능했습니다. 둘이 먼저 친해졌고, 테베즈의 매력에 빠진 에브라가 박지성에게도 소개해주며 자연스럽게 셋이 어울리는 그림이 완성됐죠. 주변에서도 흔히 일어날 법한 경우인데요. 스타플레이어들의 우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라는 테두리 안에서 셋의 우정이 쭉 이어졌으면 좋았겠지만, 프로의 세계는 냉정한 법이었습니다. 실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고, 이해관계까지 맞아야 하니까요. 제일 먼저 팀을 떠난 선수는 테베즈였습니다. 하필 소속팀의 라이벌로 떠오른 맨체스터 시티가 행선지였죠. 박지성 역시 에브라와 함께 테베즈를 굉장히 그리워했고요. 다음 주자는 박지성이었습니다. 7년 동안 희로애락을 함께 했지만, 2012년 QPR로의 이적을 감행했거든요.
7년간 몸담은 팀을 떠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박지성에게는 특히나 그랬습니다. 절친 에브라의 존재가 주요했죠. 이야기를 꺼내기가 정말 어려웠으며 굉장히 미안한 마음이었다고 합니다. 예상대로 에브라는 힘든 시간을 보냈는데요. 이제 누구랑 워밍업을 하냐면서 박지성을 그리워했습니다. 그래도 프로답게 안녕을 빌어주는 것도 잊지 않았죠.
에브라와 박지성의 우정은 서로 떨어져 있을 때 더 빛났습니다. 고질적인 무릎 부상으로 인해 비교적 일찍 축구화를 벗은 박지성은 은퇴 이후 결혼식을 올렸는데요. 에브라 역시 결혼식에 참석해 자리를 빛내주었죠. 2018년 박지성이 모친상을 당했을 때도 에브라는 귀국해 애도를 표했고요. 자신의 SNS에 한식을 맛있게 해주던 박지성의 어머니를 추모했습니다. 영어나 프랑스어가 아닌 어색한 문장의 한글이었으나 그래서 더욱 감동적이었죠. 박지성이 이사장으로 있는 JS파운데이션 행사에도 일정만 맞으면 어김없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에브라 역시 박지성을 향한 마음이 남달랐는데요. 향후 자신에게 아이가 생긴다면 대부의 역할로 단연 박지성을 꼽았습니다. 언론에서 비치는 수줍은 모습과는 다르게 친해지면 굉장히 놀라운 사람이라면서 말이죠. 서로 축구화를 벗은 지금은 훨씬 자유롭게 런던에서 교류도 가지며 우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동료 이상의 존재이자 눈빛만 봐도 알 수 있는 인생 최고의 친구라며 서로를 치켜세웠고요.
대표적으로 히딩크 감독과 에브라를 소개하긴 했지만, 박지성은 소속팀에서나 국가대표팀에서 빠지면 허전한 윤활유 같은 역할을 했습니다. 특히 국가대표팀에서는 주장 완장을 차고 든든한 리더십까지 보여주었고요. 그렇다고 딱딱하거나 무서운 선배는 아니었습니다. 세계 최고 클럽의 일원임에도 먼저 동료들에게 다가가고, 운동장에서는 누구보다 많이 뛰며 몸소 본보기를 발휘했죠. 후배들 역시 대선배의 모습을 보고 헌신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결과는 2002년 한일 월드컵과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충분히 증명되었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