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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바람 Aug 12. 2023

내가 이상한 건가?

그래도 주변에 있을 사람은 있겠지 뭐

 운명을 믿는가. 정말 많이 들어본 진부한 문장이다. 결론만 말하자면 난 운명을 믿는다. 그저 스쳐갔던 인연도 만약 만나게 될 사람이라면 내게 돌아온다. '저희 어디서 본적 있지 않아요?'이런 문장도 그런 상황에서 나온 말이겠지.


인간관계에서도 운명은 존재한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친해질 수 없고 도저히 연이 닿지 않는 사람이 있는 반면 신경 쓰지 않았던 인연이 정말 질길 만큼 내게 붙는 경우도 있다. 좀 먼 과거지만 고등학생 때로 돌아가보자면 방과 후 스포츠 클럽으로 여자축구부를 했었다. 1년 정도 같이 점심시간에 축구를 했고, 중학생 남자애들이랑 연습경기도 해봤다. 시에서 하는 시합도 나가보고 거기서 성적을 거둬 '나이키 풋볼리그'에도 참여했다. 나름의 추억이 생겼다. 고2 때 공부도 물론 하긴 했지만 남자애들처럼 점심시간되면 우르르 나가서 축구했던 그런 기억. 그렇게 축구가 끝나면 급식실 이모한테 싹싹하게 굴며 밥 많이 주세요 했었다. 아무튼, 그렇게 고3이 되고 함께 축구를 했던 고1동생 들과 멀어졌다. 그 친구들은 축구부를 계속 유지하겠다며, 다시 신입생들을 모집했고 나는 입시운동이며 수능을 준비하느라 바빴다. 그렇게 졸업할 시기가 다가왔는데, 애들이 나를 보며 울었다. "언니 가지 말고 한 학년 더하고 와요" 1년간 고생했던 게 스쳐가면서 아찔하긴 했지만, 어떤 마음에서 하는 말인지 알기에 내게 그런 정을 가지고 있었다는 거에 한 동안 마음이 따뜻했다. 이후 동네에서 종종 마주치곤 했는데, 그러면 괜스레 생색내며 음료나 케이크 같은 것들을 사주곤 했다. 이 또한 인연이겠지. 그리고 또 한 인연이 더 있었다. 학원에 같이 다녔던 동생이었는데, 조용히 내게 와서 졸업축하한다며 선물을 주고 갔다. 평소에 내가 챙겨주지도 못했는데. 그것도 너무 고마웠다.


  


 아는 선배도 그랬다. 내게 맨날 전화하고, 맨날 얼굴 보자고 했다. 나중에 얘기해 보니 나랑 친해지고 싶었다고 한다. 당시 CC였는데, 사귀던 남자친구가 그 사람을 되게 싫어했다. 하나, 그 사람도 자신만의 고충이 있었고, 내가 그걸 이해할 수 있는 사람으로 보였다나 뭐라나. 나는 사람과 싸우는 걸 정말 싫어하는데 이 사람과는 주기적으로 한 번씩 뒤지게 싸운다. 그러고 꼭 화해한다. "00아 나 너 없이는 못 살 거 같아"하고 울면서 전화 온 적도 있으니 말이다. 물론 이성적인 감정은 저어어얼대 아니고 그냥 우정이다. 애증 섞인 우정. 지금도 몇 달 전 일로 싸워 연락을 잘하지 않고 있는데, 인연이고 또 내가 필요한 순간이 오면 다시 화해하겠지 하는 그런 초연한 마음이다.


 요즘엔 내가 문제 삼는 일들이 참 많고, 이상한 사람도 많이 꼬인다. 인간관계 부분에서도, 최근의 노사관계에서도 내가 이상한 사람이 되어있다. 연애 부분에서도 그렇다. 내가 최근에 사귄 남자친구들을 몇 나열하자면, 정말 내게 좋다고, 내가 보고 싶은 뮤지컬 티켓까지 구해다 주더니 14시간, 18시간 잠수는 기본이라 그냥 헤어지자고 카톡을 보냈다. 그 카톡마저 읽지 않았다. 그다음 사람은 서로 마음을 확인하고 연애를 시작했는데, 내가 그 사람을 좋아하는 마음을 감당 못하겠다 하고 헤어졌다. 또 다음사람은 내가 정말 인생에서 만난 사람 중에 가장 이상형이라고 엄청 대시를 하길래 사귀었는데, 알고 보니 3년 사귄 여자친구와 동거 중이었다. 이쯤 되면 내가 이상한 건가? 내가 뭔가 잘못이 있는 건가 생각이 든다. 최근 일했던 곳에서도 '넌 이상한 사람이야', '내가 한 번도 본적 없는 사람이야', '너도 솔직히 정상적인 범주에 드는 사람은 아니야' 이런 이야기를 들어왔으니. 내가 다 잘못한 것 같고, 내가 정말 괴짜인가 그런 마음이 들었다.


그런 생각이 계속 이어지다. 예전에 같이 운동했던 수지 언니가 생각났다. 내가 솔로몬이라고 부르는 언니다. 그 언니는 다양한 사람도 만나보고, 힘든 경험도 많이 했다. 그러다 보니 통찰력이 대단하다. 몇 년 전 또 내가 이상한 사람에게 이상한 일을 겪었을 때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00아, 어느 순간 네 주변에 사람이 한 명도 없고, 모두가 네 편이 아닐 수도 있을 거야. 내가 잘못된 건가? 내가 이상한 앤가? 그런 생각이 들 수도 있어. 근데 그건 네가 잘못된 게 아니야. 절대 네가 잘못된 게 아니니까 그런 순간을 이겨내야 해. 그럼 또 괜찮아져" 그땐 그냥저냥 흘려들었던 말인데, 몇 년이 지난 지금도 힘든 순간마다 그 말이 문뜩문뜩 떠오른다. '맞아 나는 잘못된 게 아니야' 그렇게 생각하게 된다. 수지언니에겐 늘 고맙다. 아마 또 언니가 이런 말을 했었어하면 "내가 그런 말을 너한테 했다고?" 하며 명랑하게 깔깔 웃겠지. 언니의 그런 모습이 참 좋다. 힘든 순간에도 늘 밝다. 그 에너지로 다 이겨낸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되려고 늘 노력한다.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그래 인생 재밌지 시트콤에서도 이만큼 역경 주면 작가는 욕먹겠어"이런 생각을 한다. 물론 정말 힘든 일이 있으면 울기도 하고, 다 너무 힘들어하고 주변인에게 기대기도 하겠지. 그러나 나는 다 이겨낼 수 있으니까, 다 이겨내서 나중에는 그런 일이 있었지 하고 웃으며 말할 수 있으니까.


 해결하는 과정조차 즐기며 늘 웃어보려 한다. 주변인은 내게 어떻게 그런 일을 겪고도 그렇게 웃을 수 있어라고 말한다. 그럼 뭐 어쩌겠어, 해결해야지 이렇게 말한다. 난 긍정적인 마인드로 웃으려 늘 노력하는 사람이니 말이다. 그런 생각을 가져서 그런지 정말 끊기지 않는 질긴 인연을 가진 친구들도 많고, 운 좋게도 그런 친구들이 참 좋은 사람들이다. 내게 어떤 일이 있든 응원하고, 보듬어 주니 말이다. 그래 내가 조금 이상해도 주변에 남는 사람은 결국 남게 되겠지. 그런 사람들이 나와 평생을 가는 사람들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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