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그렇듯 ‘오늘 저녁은 또 뭘 준비하나’ 고민하게 된다. 냉장고 안을 한참 쳐다보다 ‘그래, 오늘은 너로 정했어’ 당첨된 놈은 두부와 텃밭에서 따온 싱싱한 가지다.
평소 고추장찌개를 그다지 좋아하진 않지만 오늘은 비가 온다.
비 오는 날은 반주가 당기는 법이지.
초보 농사꾼인 남편은 요즘 한창 텃밭 농사에 관한 유튜브에 빠져 있다. 가지 순 치기, 고추 가꾸는 법 등 간밤에 공부한 내용대로 아침마다 가지, 호박의 상태를 살피고. 혹여 오이가 잘 자라지 못할까 봐 애정을 쏟는다. 가지와 호박은 텃밭이 아닌 빈터의 (남의 땅) 땅을 일구어 심었다. 삽이 들어가지도 않는 척박한 땅이었지만 피, 땀, 눈물까지는 아니지만 어쨌든 남편의 노력으로 잘 자라주고 있다. 가지는 4포기밖에 안 심었는데도 너무 많이 열려 가지가지 요리로 변신하는 중이다. 오이는 얼마나 잘 키웠는지 거짓말 좀 보태면 야구방망이만 하다. 오이는 남편의 정성만으론 살 수 없다며 박카스도 먹고 자란다. 덕분에 나까지 텃밭에서 수확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된장찌개를 끓이다가도 방아잎이랑 청양고추를 금방 따 올 수 있다. 효자 작물 부추는 일주일 지나면 다시
‘나 드세요’ 하고 자라준다. 부추를 잘라 오이와 함께 김치도 담고. 방아잎과 청양고추를 넣어 부침개를 해 먹어도 좋다.
작년 가을. 늦게서야 마당을 정리하고 작은 텃밭을 마련했다. 상추, 시금치, 부추, 한쪽엔 배추와 무씨를 뿌렸다. 텃밭을 시작하기 전에 땅을 고르고 충분히 거름을 했어야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준비 없이 시작한 터라 겨우 몇 닢의 상추를 제외하곤 수확은 보잘것없었다. 배추와 무는 어느 정도 자랐지만 먹기에는 다소 부족하여 ‘관상용’으로 두었다.
누구든 텃밭인 줄 알라고.......
어느 날 반려견 두강이 밭에 들어가 땅을 파헤치고 있었다. “야, 너 뭐해” 이미 늦었다. 녀석은 이미 뒤돌아서서 뺏길세라 흙 묻은 무 뿌리를 와그작 와그작 씹고 있었다. 배추와 무는 관상용도 되지 못하고 차례대로 두강의 입안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다행히 게을러서 그냥 둔 시금치와 대파, 부추는 자기들끼리 의지하며 추운 겨울을 넘기고 기특하게도 봄날의 밥상을 안겨 주었다.
텃밭 일구기는 이웃과 소통하게 해 준다. 초보 농부는 궁금한 점이 많고 텃밭을 해본 경험이 있거나 농사를 짓는 분들은 그 답을 준다. 우리 집 옆에는 아랫집에서 고구마 모종, 대파 등을 재배하는 비닐하우스가 있다. 아랫집 이웃들이 비닐하우스 작물을 돌보러 올라와 우리 텃밭을 볼 때마다 “아이고, 어쩌면 밭을 이리 예쁘게 가꾸노. 손바닥만 하지만 있을 건 다 있네.”, “ 깻잎 순은 윗순만 남기고 다 따줘야 돼.” “ 아이고 우야꼬, 상추 밑동을 저리 두면 안된다.” 등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우리는 이웃에게 현실적 도움을 받고, 텃밭에서 자란 작물을 나눈다. 텃밭을 사이에 두고 서로의 가족 안부를 묻기도하고 저녁식사 약속을 하기도 한다.
고소한 손두부를 두툼하게 썰어 양파와 청양고추를 넣고 칼칼하게 끓인 두부 짜글이는 밥반찬은 물론 술안주로 제격이다. 두부 짜글이는 두부찌개와 달리 국물이 적고 양념이 진하다. 남은 양념에 밥이나 면 사리를 비벼 먹을까 고민하고 있으면 귓가에 악마의 속삭임이 들린다.
‘ 먹어. 먹어 이게 엑기스야. 이걸 남기다니. 음식 남기면 벌 받아~~’
남편은 비교적 가리는 것 없이 잘 먹지만 유독 가지는 물컹거리는 식감이 별로라고 좋아하지 않는다. 근데 본인이 직접 키운 싱싱한 가지로 나물과 전을 해주니 맛있다며 잘 먹는다. 칭찬은 필수다. “ 이게 다 당신 덕분이야.” 덤으로 텃밭의 오이와 고추까지 입맛을 거든다.
창밖으로 비가 내린다.
나의 정성과 남편의 노력이 만든 소박한 밥상을 마주하며 오늘도 반주 한잔과 함께 소소한 행복을 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