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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미 찌개인가 조림인가

by 도희

하늘이 끄물끄물한 게 비님이 오실 것 같다. 지난겨울부터 가뭄이 심해 비가 몹시 기다려진다. 하루에도 몇 번씩 산불 조심 캠페인 차가 방송을 하고 다닌다. 충남을 비롯해 전국각지에서 연일 산불이 발생하고 있다니 여간 걱정스럽지 않다. 우리 마을은 아직 상수도가 들어오지 않는다. 가뭄이 계속되면 지하수가 고갈될까 걱정이다. 신축 주택단지라 아직은 괜찮지만 우리 동네 안쪽의 마을은 가뭄으로 물차가 다녀간 적도 있다. 이런 때에 비 소식은 여간 반가운 게 아니다.

이틀 동안 비 예보가 있으니 산책도 못 가고 갇혀 있을 반려견 두강이를 위해 마당에서 공 던지기를 했다. 만주벌판을 내달리는 독립군의 말처럼 뛰어다니는 두강의 왕발아래 이제 막 푸릇푸릇 돋아나는 잔디들이 다칠까 봐 걱정이다. 질리지도 않는지 인형이나 공을 멀리 던져 주면 물어 와서 다시 던져 달라고 조른다. 잡초를 뽑거나 다른 일을 하고 있으면 심심하다는 듯 옆에 와서 낑낑대며 졸라대는 폼이 어린애 같다. 던지고 받고 뛰어다니고 한참을 놀다 보니 어느새 저녁 식사 준비할 시간이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어제 남겨 둔 머위나물 된장무침이랑 엉게 순, 깻잎 조림, 꽈리고추 조림, 쥐포 채 볶음 외에도 밑반찬이 있다. 미역국과 함께 차리면 그럭저럭 한 끼는 되겠다 싶어 냉장고 문을 닫고 보니 마음이 불편하다. 허리를 삐끗하고도 끙끙대며 마당 일을 마친 남편에게 두 끼 먹는데 식은 반찬으로만 주려니 악처가 되는 것 같다. 흠흠. 뒤적뒤적. 어제 마트에서 사 온 가자미가 김치 냉장고 속에서 가자미 찬가를 부르고 있다.

오랜만에 가자미조림. 좋지.


나는 가자미나 도다리, 조기 같은 흰살생선이 좋은데 곁님은 두툼한 살점이 씹히는 고등어를 좋아한다. 쌈을 즐겨 먹는 그는 고등어구이나 조림도 상추에 고등어살과 쌈장을 듬뿍 올려 볼이 미어터지게 한입 가득 먹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다 보니 고등어를 자주 사게 된다. 하지만 어제만은 양보 없이 조림을 염두에 두고 가자미를 샀다.


지난가을에 저장해 둔 무가 아직도 몇 개 남았다. 둘둘 감싼 신문지를 풀어 보니 정말 생생하다. 껍질을 벗겨 한 조각 먹어 보니 아삭아삭한 식감에 시원하고 물이 많은데 단맛까지 있다. 웬만한 배보다 낫다. 뭐지, 이 예감은. 무가 노래한다.

‘오늘 밤 주인공은 나야 나’


가자미조림을 위해 부재료를 준비하고 막상 끓이려다 보니 국물을 어느 정도로 해야 하나 갈등이 생긴다. 편하게 먹으려고 준비한 카레나 짜장에도 굳이 국을 찾는 예의 없는 그를 위할 것인지, 국보다 짭조름하고 간간한 밥반찬용 조림을 선호하는 내 취향으로 할 것인지 살짝 고민 흉내만 낸다. ‘중용의 도’가 있지 아니한가.


찌개인 듯 조림인 아니 조림인 듯 찌개인가. 아무튼 레시피랄 것도 없다. 재료도 집에 있는 걸로 대충 고른다.

가장 기본은 무, 양파, 대파. 그 외에 청량고추나 홍고추, 꽈리고추가 있으면 좋고 없어도 약간 섭섭할 뿐이다. 냄비 바닥에 두툼하게 썬 무를 깔고 양파를 올린다. 오늘 밤 주인공은 가자미가 아니라 자기라고 부르짖던 무를 듬뿍 올린다. 가자미가 세 마리니 각자 한 마리씩. 남은 한 마리는 가위바위보로 결정하고 진 사람은 가자미 냄새 맡은 무라도 많이 먹어야 덜 서운할 테지. 어슷하게 칼집을 넣은 가자미 세 마리를 올리고 그 위에 양념장을 바른다. 양념장은 고춧가루 3, 진간장 3, 국간장 3, 참치액 3, 마늘 2, 설탕 1을 넣는다. 여기에 다시마 물 500ml(종이컵으로 2컵 반) 강불에 끓이다 중 약불로 10분 이상 졸여 대파와 칼칼한 맛을 더해 줄 청양고추 넣어 한소끔 끓이면 끝이다. 참 쉽쥬.

간을 보니 아무래도 오늘은 밥을 넉넉히 담아야 할 것 같다.

매콤한 맛을 중화시켜 줄 거리를 찾다 어제 뜯어 놓은 쑥이 생각났다. 쑥전 하나를 부치기로 한다. 이번에도 초초 간단. 부침가루에 쑥 한 줌 씻어 넣고 계란 하나 톡 하면 끝이다. 바삭하게 튀기면 훨씬 맛나겠지만 건강과 가정 경제를 위해서 전으로 한다. 표 안 나게 끄트머리 한쪽 떼어먹어보니 쑥향이 기름의 고소함을 만나 입안에서 회포를 푼다.

무의 달큼한 맛이 어우러져 찌개인 듯 조림인 국물 맛이 끝내 준다. 오늘의 주인공 무를 등용한 것은 탁월한 선택이다. 냉장고 속 남은 반찬으로 차릴뻔한 밥상이 가자미 요리와 쑥전으로 화려하게 변신했다. 밥 먹다 말고 그가 갑자기 키득거린다. 그의 고향은 부산이다. 초등학교 4학년때인가. 집과 학교를 오가는 골목길에 철조망으로 된 담장이 있었고

그 위에 줄지어 납새미를 말리고 있더란다. 납새미는 가자미의 경상도 사투리다. 지금도 경상도 바닷가 지역에서는 가자미를 널어 말리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손바닥만 한 작은놈들을 꾸덕꾸덕하게 말려서 구워 먹거나 조림으로 먹는다.


평소엔 그냥 지나쳤지만 그날은 도저히 참을 수 없더란다. 그와 꾸러기 친구들은 의뭉스러운 눈빛을 교환하고 각자 납새미 한 마리씩을 잽싸게 가져와서 연탄불에 구워 먹었단다. 그을음을 입가에 묻혀 가며 먹었는데 그게 또 그렇게 맛있더란다. 이 이야기는 절대 쓰지 말라고 당부했지만 뭐 부끄러움은 당신 몫이니까.

사진출처 : 다음 이미지

창밖에 빗방울 소리가 부딪친다.

오늘만큼은 봄비처럼 예쁘게 소리 없이 왔다 가지 말았으면 한다. 밤새 산불도 진화되고 가뭄도 해갈되게 여름 장대비처럼 시원스레 쏟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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